한국의 주력 수출 기지인 인천항 부두에서 트럭이 컨테이너를 옮기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한국의 주력 수출 기지인 인천항 부두에서 트럭이 컨테이너를 옮기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7월 12일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에서 2.9%로 하향 조정했다. 정부(기획재정부)가 여전히 3% 성장을 예상하고 있는 와중에 경제 정책의 다른 축인 한국은행이 2%대로 성장률 전망을 낮춰잡은 것이다.

한국은행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주요국 간의 무역전쟁이 처음에는 확산되지 않을 것으로 봤는데, 지금은 나날이 확대되고 있고 향방을 가늠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무역전쟁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우리 경제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 경제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수출 업무를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백운규 장관은 7월 6일 ‘미·중 무역분쟁 관련 실물경제 점검회의’에서 “단기적으로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낙관적인 전망은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관세 부과 범위를 당초 500억달러 규모에서 2500억달러 수준으로 다섯 배나 확대했기 때문이다. 무역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양상을 띠자 정부는 뒤늦게 대응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싸우는데 왜 한국이 새우 신세가 된 걸까. 그건 한국의 수출 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총수출액은 5738억달러(약 646조원) 정도였다. 이 가운데 중국으로의 수출액이 1421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24.8%를 차지했다.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액 가운데 주목해야 할 건 중간재(부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부품을 수출하면 중국에 있는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 다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수출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한 중간재는 1121억달러(약 126조1000억원)어치였다. 수출액의 78.9%를 중간재가 차지했다. 대중국 수출액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만에 이어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 중국 제조업이 타격을 입으면 그 피해는 한국 중간재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정환우 코트라 중국사업단 조사담당관은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 중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향하는 물량 비율이 5%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홍콩을 통해 수출하는 물량까지 더하면 7~10%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이 중국의 첨단 제조업을 정밀 조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주력 수출 업종인 전기·전자 산업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중국산 수입품 중에는 메모리 반도체 모듈이 포함돼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관세를 올리면 가격 경쟁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한 메모리 반도체는 463억달러에 달했다. 중국 전체 메모리 반도체 수입액의 50% 이상을 한국이 차지했다.


한국 수출액 41조원 감소할 수도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연구기관마다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무역전쟁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따라 한국 경제에 끼칠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전쟁이 확전일로로 치달으면 어떻게 될까.

무역협회는 두 나라가 전면전을 벌이면 한국의 수출이 최대 6.4% 감소해 피해액이 367억달러(약 41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분쟁이 유럽연합 등으로 확산되면 세계 무역량이 6% 정도 감소하면서 한국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미국이 중국산 제품의 수입을 10%만 줄여도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19.9% 감소하고 피해액은 28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미·중 무역전쟁이 조기에 일단락되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이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한국의 수출 피해액은 2억달러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미국이 관세 부과 규모를 다섯 배로 키우면서 이런 낙관적인 분석은 설 자리를 잃었다.

더 큰 문제는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제가 성장을 멈추면 한국 경제도 큰 타격을 받는다. 당장의 관세 부과보다 중국 경제 성장 둔화가 한국에는 더 심각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중국산업연구부장은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생기는 영향이 직접적인 영향보다 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MMF에 몰리는 돈…무역전쟁에 갈 곳 잃어

‘혹한기(酷寒期)’.

고액 자산가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은행의 한 프라이빗뱅커(PB)가 최근 재테크 시장의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꺼낸 말이다. 이 PB는 “올해 1분기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 개선 등 긍정적인 요인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미·중 무역전쟁이 거세지면서 주식시장에서 좋은 소식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머니마켓펀드(MMF) 붐이다. MMF는 펀드의 한 종류인데 저위험 채권 등에 주로 투자하는 상품이다. 연평균 수익률이 1%를 밑돌 정도로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언제든 원할 때 넣었다 뺄 수 있어서 주식시장이 좋지 않을 때 대기성 자금이 몰리곤 한다.

펀드평가 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6월 말 기준으로 MMF 순자산이 94조3604억원을 기록했다. 연초 이후에만 21조4216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MMF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0.78%인데, 국내 주식형 펀드(-8.63%)와 해외 주식형 펀드(-3.85%)는 모두 손실을 내고 있다. 많은 투자자가 일단은 소나기를 피하는 심정으로 MMF에 돈을 넣어놓고 관망하고 있다.

그래도 무언가 투자할 만한 상품을 찾는다면 달러 자산이나 미국 주식이 그나마 안정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무역전쟁이 거세지면 안전자산인 미 달러화의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 달러화 강세기에 투자할 만한 상품으로는 ‘달러 정기예금’이나 국내 기업이 발행하는 ‘달러 표시 채권’이 있다.

미국 주식의 경우 실적 좋은 정보기술(IT) 업종 위주로 가려 투자하는 게 좋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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