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덕 고려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인정신병원 가족·부부치료클리닉
박성덕 고려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인정신병원 가족·부부치료클리닉

7월 31일 서울 도곡동에 있는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의 박성덕 소장과의 만남은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이뤄졌다. 정서 중심의 부부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박 소장에게 부부관계를 상담받겠다는 의뢰자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문지방을 넘지 말라’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부부관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에서 ‘연리지(連理枝)’란, 다른 나뭇가지(枝)의 결(理)이 연결(連)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박 소장은 “육아·가사 분담이나 재정 문제 등 맞벌이 부부의 다양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의 애착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맞벌이 부부가 힘든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가정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대가족은 한 울타리에 여러 세대가 지내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가장 중요했다. 본인의 역할은 윗사람과의 관계에서 규정됐다. 누구의 남편보다는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내보다는 누구의 며느리로 불리는 식이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도 누구의 아들·딸이 아니라 누구의 손주가 태어난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살다 보니 부부의 개념이 약했다. 부모님께 아들·며느리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내를 안아주면 팔불출이고, 자녀를 사랑해도 버릇 나빠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핵가족은 부부 중심으로 대가족을 흩어놓은 것이다. 그간 중요하지 않았던 부부가 중심이 된 것이다. 복작복작 여러 세대가 살던 데서 부부를 흩어놓으면 잘살 줄 알았는데 웬걸 이혼이 급증했다. 부부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 채 빠른 속도로 핵가족으로 변한 탓이다.”

부부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본질은 외로울 때 위로받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애착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부부가 싸우면 분노 조절법을 가르쳤다. 그런데 화를 내는 이유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없어서, 즉 서로 애착을 갖지 못해서라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부부관계의 애착을 회복하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는 각자 직장에서 일하랴, 들어와서 애 보랴 애착관계를 갖기 어렵다.
“역으로 인간의 애착 욕구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장 활성화된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 가장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둘 다 지쳐 있다는 것이다. 서로 위로를 해줘야 하는데 위로할 사람이 없다. 이렇다 보니 맞벌이 부부들은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여러 갈등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완전히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텐데 각자 알아서 풀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 아닐까.
“직업이 같고 다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맞벌이 부부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다. 회사 다니면서 힘들고, 커리어 욕심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못 돌보고 있다는 죄책감도 크다. 이럴 때 부부가 서로 정서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힘들다. 배우자가 회사에서 어떤 문제를 겪었을 때 이에 대한 아픈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힘을 받아서 다시 일터로 나가 일할 수 있다. 최근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부관계가 좋은 사람이 직장에서의 생산성도 15~20% 향상된다고 한다. 부부관계가 안정돼야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대기업에서 부부갈등 상담실을 운영하는 건 이 때문이다.”

아이가 있는 경우 아이에게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부부관계가 소홀해질 수 있다.
“어린아이의 우선순위는 부모다. 부모에게 사랑받으면 후순위인 친구들과 잘 지낸다. 부모와의 관계가 망가진 경우 다른 사람들과 잘 싸우는 경향이 있다. 부부의 우선순위는 서로가 돼야 한다. 부부가 서로를 우선순위로 바로 세우면, 후순위인 시부모, 장인·장모를 사랑하기 쉬워진다. 후순위인 자식 역시 사랑하기 쉽다.

상담하러 온 맞벌이 부부 중 시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주고 있는 사례가 있었다. 남편이 왜 본인 부모만 고생해야 하냐면서 장모도 육아에 기여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목포에 있는 장모가 주말에 아이를 보러 서울까지 오는 막장 상태로 치달았다. 두 사람의 우선순위가 서로가 아니다 보니 부부싸움이 집안 갈등으로 커진 문제였다. 고부 갈등은 효도로 풀면 안 된다. 부부관계가 회복돼야 풀린다. 그러면 ‘누구의 희생’이라는 생각이 ‘고마움’으로 바뀐다.”

부부가 관계 회복이 필요한지, 자가 점검해볼 방법이 있나.
“문제 부부는 흔히 세 가지 형태의 대화 방식을 보인다. 먼저 공격형이다. 서로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찾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잘못했다’라고 비난하면 1초도 안 돼 ‘너는?’이라고 공격한다. 공격·회피형도 있다. 주로 여자가 공격하고, 남자는 도망치는 형태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게 남성은 이성적이어서 피하고 여성은 감성적이어서 화낸다고들 한다. 이건 이성·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화내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회피·회피형이다. 쇼윈도 부부가 이렇다. 일에 지치고 힘드니까 아예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상담 사례를 보면 안방에 누워 있는 남편이 밖에서 움직이는 아내의 동선을 다 느낄 정도로 예민해진다. 화장실 들어가는 게 느껴지면 빨리 나가서 물을 꺼내오는 식이다. 지금 이런 형태로 배우자와 대화하고 있다면,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대화가 고쳐지지 않으면 어떤 주제가 나와도 똑같은 대화 패턴에 갇히게 된다.”

애착을 회복할 수 있는 대화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가장 쉬운 방법은 ‘반영(reflection)’이다. 거울을 떠올려보자. 거울은 얼굴 상태를 그대로 비출 뿐, 어떤 토도 달지 않는다. 거울을 보는 사람이 알아서 화장을 고치고 머리를 다시 만진다. 만약 거울이 이래라저래라 지적한다면 짜증 나서 거울을 깨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반영은 상대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대로 비춰주는 것이다. 아내가 ‘동창회에 갔다가 영숙이가 비꼬는 통에 속상했어’라고 했다. 남편은 ‘그럼 가지 마’라고 할 게 아니라 ‘아, 당신 오늘 동창회 갔다가 영숙이 때문에 속상했구나’라고 해주면 된다. 이런 대화법은 아이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아이가 ‘아빠가 약속 안 지켜서 짜증 났다’고 말했다면, ‘아빠가 약속 안 지켜서 짜증이 났구나’라고 해주면 된다.

두 번째는 서로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감정은 가장 이성적인 결과다. 남편이 외면하는데 ‘나는 괜찮다’고 하는 게 오히려 비이성적인 것이다. 거꾸로 ‘남편하고 사이가 나빠서 죽고 싶다’는 감정 상태는 매우 이성적인 상태다. 이런 감정 표현을 하는 데 꽤 많은 남편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잘못됐다고 얘기한다. 상대가 내 감정을 이해해주지 못하면 당사자는 정말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 감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렇구나’ ‘그렇게 힘들구나’ 하고 인정해줘라. 인정만으로도 해당 감정을 교정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누군가로부터 이해받으면 지금 하고 있는 극단적인 생각보다 나은 행동을 하게 된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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