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서울 상암동 OGN의 주경기장 e스타디움에서 열린 한화생명과 MVP의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서머 시즌 경기 모습. 무대 중앙에 방송사의 옵저빙 화면이 띄워져 있다. 왼쪽 위편에는 세 명의 게임 캐스터들이 실시간으로 주요 장면을 해설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8월 2일 서울 상암동 OGN의 주경기장 e스타디움에서 열린 한화생명과 MVP의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서머 시즌 경기 모습. 무대 중앙에 방송사의 옵저빙 화면이 띄워져 있다. 왼쪽 위편에는 세 명의 게임 캐스터들이 실시간으로 주요 장면을 해설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상윤, 상윤, 어머님 아버님 물개 박수우우. MVP가 뒤쪽으로 빠지면서 상윤(이) 역습해서 헤집고 다녔어요. 한화생명이 잘했지만, MVP가 자멸했다고 봐요.”

8월 2일 서울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 게임방송 ‘OGN’의 주경기장인 e스타디움은 게임 캐스터들의 격앙된 목소리에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라이엇게임즈의 PC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한국 지역 대회인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2018)’ 서머 시즌 한화생명과 MVP가 맞붙은 이날 경기에서 한화생명의 권상윤 선수가 선택한 캐릭터 ‘진’이 화력을 퍼부으며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500여명으로 가득찬 관객석에서도 ‘오오오오’ 하거나 손뼉을 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리그오브레전드는 한국 게이머들이 전 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e스포츠 종목 중 하나다. 이 때문에 한국 팀끼리 겨루는 LCK는 리그오브레전드의 메이저리그(세계 최고 수준의 미 프로야구)로 불리며 한국 e스포츠 팬뿐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는다. 무대 왼편으로 세 명의 한국 캐스터들이 중계를 하는 동안 오른편에서 영어로 동시 중계를 하는 캐스터 둘이 배치돼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 리그오브레전드가 ‘스타크래프트(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PC 온라인게임)’를 누르고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는 OGN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스타크래프트 리그인 ‘스타리그’를 10년 넘게 운영하며 스타크래프트의 글로벌 흥행을 주도한 일등공신인 OGN에 대한 블리자드의 견제가 본격화된 것이 원인이었다. 블리자드는 표면적으로 리그 제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지만, 2011년 출시한 ‘스타크래프트2’의 세계 최초 리그인 ‘GSL 오픈시즌’을 직접 주관하고, 중계권 역시 OGN이 아닌 비교적 신생 미디어라고 할 수 있는 ‘곰TV’에 팔았다. 이에 따라 OGN 입장에서는 스타크래프트를 대체할 만한 종목 발굴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때 OGN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리그오브레전드란 게임이었다. OGN의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게임업계 관계자는 “스타크래프트가 아무리 인기 종목이긴 했지만, 나온 지 10년 정도가 흐른 시점이었기 때문에 유저 수가 감소하며 인기가 사그라드는 상황이었고, 마침 리그오브레전드가 시장가치가 있어 차기 주력종목으로 발굴해 리그 중계를 한 것이었는데 이게 ‘대박’이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2013년부터 CJ와 SK텔레콤 등 대기업 구단들이 리그오브레전드 팀을 본격 창단했다. 그해 리그오브레전드의 월드컵 격인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League of Legend의 영문약칭 LoL과 월드컵을 합쳐 일명 ‘롤드컵’이라 불림)’에서 이상혁 선수가 소속돼 있는 SK텔레콤이 우승하면서 OGN이 중계하는 LCK 역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대회로 거듭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한국 e스포츠의 중심축이 스타크래프트에서 리그오브레전드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OGN의 역사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케이블채널 ‘투니버스’의 한 PD는 젊은 사람들이 당구장에 안 가고 PC방에 모여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고 노는 걸 눈여겨봤다. 이를 대회식으로 열어 방송에 내보내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 1999년 세계 최초의 e스포츠리그로 불리는 ‘KPGL배 하이텔 게임넷 리그’였다. 이 리그가 화제가 되면서 2000년 7월 아예 별도의 게임 전문 방송국인 ‘온게임넷(현 OGN)’을 개국하게 된다. 이후 OGN은 ‘스타리그’를 운영하면서 한국 e스포츠 시장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로 자리잡았다. 스타리그를 통해 임요환 같은 프로게이머들이 생겼고, 이들을 모아 운영하는 프로게임단이 우후죽순 생겼다. 2004년 OGN이 부산 광안리에서 개최한 스타리그 결승전에는 무려 10만명의 팬들이 몰렸다. OGN 초창기 멤버였던 김진환 OGN 편성마케팅팀 팀장은 “5000명 정도 관객이 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사람들이 끝도 없이 밀고 들어왔다”며 “국내 e스포츠 시장에서의 양적 확대를 보여준 역사적 사건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실제 ‘광안리 10만 대첩’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올해 5월 세계 최초로 한국에 설립된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초창기 e스포츠 역사의 주요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OGN이 ‘보는 게임’ 시장을 열 수 있었던 것은 기술적으로 전통 스포츠 뺨치는 연출을 시도해 온 공(功)이 크다. e스포츠 업계에서는 그중에서도 ‘옵저빙(observing)’이 차별화된 포인트라고 입을 모은다. 옵저빙은 쉽게 말해 카메라가 게임 속으로 들어가 줌인(zoom-in)하기도, 줌아웃(zoom-out)하기도 하면서 관객들이 꼭 봐야 하는 주요 장면을 선택해 보여주는 것이다. 리그오브레전드만 해도 다섯명의 선수가 한 팀이 돼서 겨루는 경기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만 10명에 달한다. 방송사가 이 중 우선순위를 판단해 특정 선수의 화면을 띄우거나 전체 게임의 맥락을 보고 좀 더 넓은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plus point

재주는 국내 방송국이 부리고
돈은 해외 게임 개발사가 번다?

e스포츠 역사에 기여한 oGN의 공이 기록돼 있는 e스포츠 명예의 전당.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e스포츠 역사에 기여한 OGN의 공이 기록돼 있는 e스포츠 명예의 전당.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스타크래프트와 리그오브레전드를 세계적으로 흥행시킨 데는 OGN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OGN은 게임을 도구로 대회를 주도적으로 기획해 콘텐츠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수익구조와 팬덤(fandom·특정 대상에 몰입하고 열광함)을 만들어 왔다.

OGN은 자체제작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보니 콘텐츠를 사오는 비용(중계권료)이 제로였고, 대회 개최에 따른 입장료, 국내외 콘텐츠 유통 수익, 광고 수익, 스폰서 수익 등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게임)을 통해 방송사가 부가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e스포츠 산업이 막 태동했던 초창기만 해도 적극적인 권리 행사를 하는 게임사들이 없었다. 방송사들이 주최하는 게임 대회가 전통 스포츠처럼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인식이 미비했던 탓이었다. e스포츠 업계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게임사들은 방송국들이 주최하는 대회를 게임을 홍보할 수 있는 일종의 ‘마케팅 수단’ 정도로 봤다”고 말했다.

게임사들이 e스포츠를 ‘원 소스 멀티 유스(OSMU·한 가지 콘텐츠로 여러 사업을 벌이는 것)’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2012~2013년쯤이라고 e스포츠 업계는 보고 있다. 이때부터 게임사들은 방송사와 대회를 공동 주최하는 식으로 관련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고, 2015~2016년부터는 일부 게임사를 중심으로 아예 단독으로 대회를 주최해 중계권을 방송사에 파는 식으로 리그 주도권을 가져갔다. 이렇게 되면 방송사 입장에서는 콘텐츠를 사오는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게 될 뿐 아니라 대회 개최를 통해 올릴 수 있었던 각종 부가 수익을 고스란히 게임사로 넘기게 될 수밖에 없다.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은 “게임 개발사가 리그를 수직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e스포츠를 문화와 스포츠로 확장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며 “게임이 인기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한 각 주체들의 권리를 인정하면서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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