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온라인 서비스 ‘이마트몰’의 김포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모(38) 배송기사는 올해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40도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폭염 때문에 온라인으로 장을 보는 고객들이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김씨 역시 땀이 마를 새 없이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평소 김씨가 처리해왔던 배달건수는 하루 35건 안팎. 그러나 폭염주의보가 본격적으로 발령된 7월 말부터 그의 배달건수는 40건 이상으로 뛰었다. 가공식품이나 생활용품에 비해 신선식품, 냉장·냉동식품 주문량이 크게 늘어난 점 또한 김씨가 땀을 배로 흘리게 만든 요인이다. 신선도 사수에 만전을 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가 흘린 땀만큼 이마트몰 역시 성장했다. 이마트몰의 2분기 매출은 296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1% 성장했다.

이마트몰은 날씨가 더워질수록 온라인 쇼핑이 증가할 것을 예상, 지난 5월부터 새벽배송을 시작한 데 이어 반찬을 배달해주는 ‘쓱찬 서비스’ 등을 선보이며 폭염이라는 재난을 기회로 만들었다.

그러나 폭염에 처참하게 패한 업계도 있다. 농업이 대표적이다. 배추의 경우 비가 안 온 데다 고온이 지속되면서 썩거나 녹아내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현재 배추 도매가는 예년보다 70% 가까이 오른 5571원을 기록하면서 김장철을 앞두고 밥상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정학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환경·자원연구센터장은 “과거 폭염이 이렇게 심했던 적이 없어 이에 대비하는 농업 관련 연구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몰을 웃게 하고 농민들을 울게 만들었던 올해 여름이 끝을 보이고 있다. 온갖 기록을 갈아치운 역사적인 여름이었다. 평균 기온이 33도 이상일 때를 ‘폭염’이라고 하는데, 올해의 전국 평균 폭염 일수는 8월 26일 기준 31.3일로 전국 평균값 산출이 가능한 1973년 이후 1위를 기록했다. 한 달에 달하는 기간 동안 전국이 끓어올랐다. 밤 사이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일 때를 지칭하는 열대야 일수도 지금까지 17.1일로 나타나 1월 1일~8월 26일 기간 기준으로 역대 1위다.

문제는 이 같은 폭염이 이상기후가 아닌 ‘일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연구과장은 ‘CMIP5 모델에 나타난 동아시아 여름몬순의 모의 성능평가와 미래변화’ 논문을 통해 “2030년대가 되면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수준과는 다른 차원의 여름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존 6~9월에 걸쳐 나타났던 여름이 5~9월로 길어지고, 온도 역시 걷잡을 수 없이 급등해 지금의 폭염 기준인 33도는 보통의 더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올해 여름이 끝나가는 9월, ‘이코노미조선’이 다시 한번 ‘폭염’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마트몰과 배추밭 농민처럼 폭염이 일상이 되는 미래는 누군가에겐 기회가, 누군가에겐 위기가 될 수 있다.


편리하면서도 친환경적인 생리컵. 폭염이 닥치면서 패드형 생리대에서 생리컵으로 바꾸는 여성들이 늘고있다.
편리하면서도 친환경적인 생리컵. 폭염이 닥치면서 패드형 생리대에서 생리컵으로 바꾸는 여성들이 늘고있다.

8월말에도 여름옷 생산, 패션업계 혼란

폭염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각성시킨다. 이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사용했던 물건들도, 체감온도가 올라가면 불쾌지수도 함께 올라 예민함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여성 생리대의 대체용품 ‘생리컵’은 이러한 폭염의 특성에 힘입어 국내에서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한국 여성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패드형 생리대의 경우 여름엔 땀이 많이 차는 데다 피부와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많은 여성들이 불편함을 호소해 왔다. 그러나 생리컵은 종(鐘) 모양 형태로 여성의 질 안에 넣어 혈을 받아내는 것으로, 패드형 생리대에 비해 편리하고 깔끔하게 이용할 수 있다. 생리컵업체 룬랩의 황룡 대표는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날씨가 더워지면서 패드형 생리대의 불편함 때문에 생리컵에 입문하는 분들이 전보다 확실히 늘었다”고 전했다.

폭염이 각종 폐기물과 이산화탄소 등으로 인해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인 지구온난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생리컵은 패드형 생리대보다 훨씬 유리하다. 패드형 생리대는 플라스틱 소재의 얇은 막들이 겹쳐진 방수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분해되려면 100년 이상 걸린다. 게다가 일회용품인 탓에 대부분 여성이 한 달에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100개 이상씩 사용한다. 반면 생리컵은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훨씬 친환경적이다. 황 대표는 “해외의 경우 환경보호 측면에서 생리컵을 많이 사용한다”며 “한국은 아직 개인적 불편함 때문에 생리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 폭염 등이 더욱 심각해지면 환경보호 차원에서 생리컵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패션업계는 이번 폭염으로 타임라인이 확 바뀌었다. 여름이 예년보다 일찍 시작한 데다, 폭염기간이 길게 지속되면서 여름 옷의 수요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류제조업체 맥스의 박요한 대표는 “원래대로라면 5월부터 8월 초까지만 여름옷을 만들고, 그 이후부터는 바로 가을옷 제작에 돌입한다”며 “그러나 이번 여름의 경우 너무 뜨거운 데다 비까지 많이 오는 바람에 아직도 여름옷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야 디자이너들이 주문하는 대로 만들면 되지만, 디자이너들은 지금도 여름옷을 리오더(재주문)해야 할지, 가을옷을 준비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이번처럼 더운 여름을 겪어본 적이 없다 보니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패션업계 중에서 미래 폭염 시대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감을 잡은 분야도 있다. 바로 속옷업계다. 이곳에서는 소재의 발전이 향후 성패를 가를 예정이다. 올해처럼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의 경우 기능성 소재로 된 속옷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유니클로에서 판매하는 기능성 이너웨어 ‘에어리즘’의 경우 올해 온라인몰에서 품절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유니클로 에어리즘은 소재 자체가 얇아 와이셔츠 안에 입어도 티나지 않고, 땀 흡수 능력도 뛰어나 남성 직장인들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이외에도 남성 기능성 속옷브랜드 ‘라쉬반’의 지난 6~7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가까이 상승했다.

맥주업계는 올해 폭염에서 살아남는 데는 실패했지만,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다. 여름은 맥주업계의 최대 성수기지만, 올해처럼 지나치게 더울 때는 오히려 맥주업계에 ‘악재’다. 맥주업계는 낮 최고기온이 30도 정도일 경우엔 맥주 매출이 늘어나지만, 그 이상 기온이 올라가면 술 마시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매출이 하락한다고 보고있다. 오비맥주 측이 “폭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매출이 크게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오비맥주의 글로벌 본사인 AB인베브는 폭염이 일상화되는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단순히 소비가 줄어드는 정도지만, 앞으로 기후변화가 본격화되면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주원료인 물과 보리 등의 수급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AB인베브는 단계적으로 2025년까지 모든 생산 제품에 쓰이는 용기와 포장재 재활용률을 100%까지 높이고,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환경분야의 유망기업을 발굴·지원하는 ‘100+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도입, 전 세계의 과학자, 기술자, 기업가를 참여시켜 2025년까지 100개 이상의 환경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싱가포르의 거리. 건물 1층에 그늘을 만들어 행인들이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
싱가포르의 거리. 건물 1층에 그늘을 만들어 행인들이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

냉방 지원 등 ‘폭염 복지’개념 등장

폭염은 산업 지형도뿐만 아니라 국민 일상도 새롭게 바꿀 전망이다. 당장 올해부터 나타난 변화를 살펴보면, 어린 아이와 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들이 두드러졌다. 아이들의 경우 학교 개학 시기가 미뤄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8월 14일 서울 시내 전체 초·중·고등학교 특수학교 등 총 1365개교에 공문을 보내 개학 연기나 단축수업, 휴업 등을 통해 학사일정을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폭염이 극심해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 건강상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폭염으로 개학 연기를 권고한 것은 서울시에서는 첫 사례”라고 말했다.

‘폭염 복지’라는 개념도 올해 등장했다. ‘지옥고’라 불리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물론 쪽방촌 등 열악한 주거시설에 냉방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올해 한국은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해주는 선에 그쳤지만, 앞으로 기후변화가 더욱 극심해지면 보다 적극적인 복지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본의 경우 생활보호급여를 받고 있는 가구 중 집에 에어컨이 없고 가구원 중 고령자나 장애인, 어린이 등이 있는 경우 에어컨 설치비용을 최대 5만엔(약 50만원)씩 지원하는 중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전기 걱정 말고 열사병 걸리지 않는 데 만전을 기하라”며 에어컨 사용을 독려하는 팸플릿을 배포하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미래 도시 모습도 바뀔 수 있다. 1년 내내 덥고 습한 열대해양성 기후를 가진 싱가포르의 경우 건물을 지을 때 1층 전면은 안쪽으로 살짝 집어넣고, 2층은 원래대로 짓는다. 이렇게 되면 2층 부분이 1층의 지붕 역할을 해 길을 걸어다니는 시민들이 그늘로 걸어다닐 수 있다. 싱가포르의 지하보도가 잘 연결돼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외에도 미국 캘리포니아 등은 아스팔트를 검은색이 아닌 밝은 색으로 바꿔 칠하고 있다. 검은색보다 밝은색이 햇빛을 덜 흡수하기 때문에 보다 덜 뜨거워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오성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아직 정부 차원의 도시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기후변화가 점차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환경을 고려한 도시계획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며 “도로포장부터 건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도시설계 전반적 부분이 기후변화에 맞춰 조화롭게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봄·가을 사라지는 한반도
‘40도 더위’ 아열대 한국이 온다

이윤정 기자

역대 가장 더웠던 2018년 여름.
역대 가장 더웠던 2018년 여름.

올해 폭염의 주요 원인은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평소보다 강하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습하고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기를 머금고 있다 보니 무게가 무겁고, 이 때문에 대기의 중·하층부에 주로 형성된다. 문제는 티베트 고기압이 평소보다 일찍 찾아왔다는 것이다. 티베트 고기압은 사막지대에서 형성돼 뜨겁고 건조하다. 게다가 북태평양 고기압보다는 가볍다 보니 대기의 하층부부터 상층부까지 두껍게 형성된다. 한국 하늘에 뜨겁고 두꺼운 이불 두 개를 겹쳐 덮어놓은 것과 같다. 게다가 장마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계속되면서 햇빛이 뜨겁게 내리쬔 점도 올여름 온도를 끌어올린 원인이다.

다만 이 같은 설명은 올해 폭염을 ‘현상적’으로 분석한 것이고, 폭염의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지구온난화다. 민승기 포항공과대학 환경공학부 교수는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는 상황과 더위가 겹치다 보니 기존 최고기록을 깨는 극심한 폭염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가 심화됐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극심한 폭염이 찾아오는 확률은 10배의 차이를 보인다. 그는 “2013년 여름도 굉장히 더웠는데(전국 평균 폭염일수 역대 4위), 이 2013년만큼의 더위가 찾아올 확률을 계산해보니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을 때는 200년에 한번 찾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반면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가 증가하면 20년에 한번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뜨거운 여름을 맞게 될까. 기상청은 온실가스 배출 정도에 따라 시나리오를 나눠 한국의 미래 기후변화 정도를 예측했다. 그 결과 온실가스가 줄어들지 않고 현재 추세대로 배출되는 최악의 시나리오(RCP 8.5)에서 한국의 폭염일수는 21세기 후반(2071~2100년) 평균 40.4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폭염일수는 평년(1981~2010년까지 평균) 10.1일에 불과하다. 80여년만 지나도 폭염기간이 지금보다 4배 길어지는 것이다. 변영화 과장은 “과거 100여년간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올해는 빈번하게 나타났다”며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최고기온의 ‘최고치’가 더욱 자주 경신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의 길이 또한 늘어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973~1993년 20년간 여름 지속일수는 길어야 107일(1983년)에 불과했다. 66일(1976년) 만에 끝나버린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2000년(99일)을 끝으로 두 자릿수 여름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서명석 한국기후학회장은 “우리는 이미 여름이 길어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봄꽃들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는데, 온도 변화에 민감한 식생들의 활동시기가 봄에는 빨라지고 가을에 늦어지는 점은 한국의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한국에서 봄과 가을이 사라질 수도 있다. 아직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이지만, 여름과 겨울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아열대기후로 바뀌는 것이다. 안중배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이미 남부지방 일부는 아열대기후”라며 “온실가스 배출 정도에 따라 여러 시나리오가 있지만, 어떤 시나리오든 2050~2060년 정도가 되면 고산지대를 제외한 한국 대부분이 아열대기후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2100년대에 들어서면 북한 포함 한반도 전체가 아열대기후를 보일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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