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통기성을 높인 고기능성 신소재 남성 속옷이 큰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소재의 남성 속옷이 진열돼 있다. 사진 블룸버그
올 여름 통기성을 높인 고기능성 신소재 남성 속옷이 큰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소재의 남성 속옷이 진열돼 있다. 사진 블룸버그

건설사에 다니는 직장인 이용한(35)씨는 지난달 제조 유통 일괄형(SPA) 브랜드 매장에서 고기능성 남성용 속옷 세트를 구입했다. 통기성을 높여 빠르게 건조되는 신소재를 적용해 입었을 때 면 속옷보다 훨씬 시원하다는 점원의 설명에 고민 없이 속옷세트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는 “올여름 공사 현장 감독을 나갈 때마다 속옷까지 축축하게 젖어 너무 힘들었다”며 “옷가게에 오면 여름 속옷부터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혼인 이씨가 속옷을 직접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워킹맘인 김애란(38)씨는 퇴근길 스마트폰 배달 앱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울토마토를 주문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무더위 탓에 수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생필품 외에 신선식품도 온라인몰을 이용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장바구니에는 과일 외에 새우볶음밥·컵비빔밥·김치찌개 등 가정간편식(HMR) 제품도 함께 담겼다. 그는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불 없이 요리하는 제품이 제일 큰 관심사”라고 설명했다.

재해 수준의 폭염으로 유통 업계에서는 여름 성수기가 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무더위에 사람들이 외출 자체를 꺼리다 보니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여름 특수의 상징으로 꼽히는 생맥주 매출도 위축됐다. 무더위로 길거리 소비는 줄었지만, 폭염으로 특수를 누린 의외의 제품과 서비스가 있다.

무더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에어컨이 가동 중인 실내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에어컨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안구건조증과 알레르기성 비염이다. 안구건조증은 눈이 시리고 이물감 등을 느끼는 눈질환이고 알레르기성비염은 콧속 점막이 붓고 가려운 코질환이다.

일반적으로 여름은 관련 증상이 완화되는 계절이다. 체온이 높아져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 실내 습도가 높아 눈과 코의 점막 보습이 잘된다. 하지만 올해는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로 에어컨 등 냉방기구 사용이 늘면서 안구건조증과 비염 환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냉방기구는 실내 습도를 낮춰 눈 점막과 콧속 점막을 건조하게 만든다. 한 달이 넘게 지속된 열대야와 냉방기구 사용에 따른 실내외 온도 차로 면역력도 떨어졌다. 에어컨 필터에 쌓인 먼지는 약한 피부조직에 염증을 유발한다.

눈·코 질환이 늘면서 치료제 제조사들은 특수를 누렸다. 일반의약품을 포함한 국내 인공눈물 시장은 지난해 2000억원을 돌파했다. 안구건조증 치료제를 만드는 대웅제약, 한올바이오파마, 휴온스 등 제약사들의 주가는 지난해와 비교해 10% 이상 오른 상태다. 알레르기성 비염 복합 치료제 ‘몬테루카스트’의 임상결과가 얼마 전 국제 학술지에 등재된 한미약품 주가는 지난 6월 39만9000원에서 8월 29일 48만3000원으로 21% 급등했다.

에어컨 사용의 부작용은 신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차에서 에어컨을 사용하고 잘 말리지 않으면 필터에 곰팡이가 생기면서 불쾌한 냄새를 내뿜는다. 이 때문에 여름에는 차량용 방향제가 잘 팔린다. 자동차용품 업체인 불스원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2017년 6~8월) 자사의 방향제 판매량이 봄(3~5월)과 비교해 119%가량 폭등했다.

최근 차량용 방향제의 화학적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에어컨의 습기를 제거해 곰팡이 발생을 막는 차량용 제습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자동차용품 업체인 아이트로닉스는 올해 6월 차량용 에어컨 제습기인 ‘애프터블로우’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설치비를 포함하면 15만원이 넘는, 비교적 고가에도 불구하고 출시 2달여 만에 10만 대가 팔려나갔다.


무더위에 불 안 쓰는 간편식 매출 늘어

올여름 고기능성 신소재 남성 속옷이 많이 팔린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여름철 남성 속옷은 ‘면’이라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이것이 깨진 것이다. 속옷 업체인 ‘좋은 사람들’은 올여름 고기능성 상품군의 판매율이 브랜드별로 최대 40% 증가했다고 밝혔다. 남성 기능성 속옷 브랜드인 ‘라쉬반’은 6~7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7.8% 늘었다고 전했다. 라쉬반 드로즈는 남성의 신체 앞부분을 따로 떼 내어 입체적으로 봉제, 통기성을 극대화한 것을 특징으로 내세운 브랜드다.

올해 인기를 끈 남성 속옷들은 인견, 에어로쿨 등 땀을 빨리 흡수하고 빠르게 건조되는 신소재 원단으로 제작된 것이 주를 이룬다. 이창용 남영비비안 상품기획팀 차장은 “폭염이 지속되다 보니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도 인견과 에어로쿨 소재를 혼방하거나 대나무섬유와 인견 원사를 혼방한 소재 등 시원한 소재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 그래도 더운데 집에서 가스레인지 켜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가정간편식 시장도 큰 폭으로 성장했다. CJ제일제당의 고메와 비비고의 국·탕·찌개류 등 가정간편식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가량 늘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7월 한 달 컵비빔밥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7.7% 급증했다. 가정간편식 시장이 커지면서 라면 시장은 위축됐다. 신라면을 주력으로 하는 농심은 올 2분기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내면서 주가가 52주 신저가를 기록 중이다.

무더위에는 집 앞 수퍼마켓에 가는 것도 고생이다. 이마트는 올여름 이 같은 니즈를 반영한 신선식품 온라인 배달 서비스로 승부수를 걸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이마트의 온라인 서비스인 이마트몰의 2분기 매출은 296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1% 급증했다. 이마트몰은 지난 5월 새벽 배송을 시작한 데 이어 반찬을 배달해주는 ‘쓱찬 서비스’를 선보였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럽의 폭염을 생각한다면, 폭염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트렌드가 될 수도 있다”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이번 폭염을 혁신 성장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나예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상이변이 되풀이되면 그것이 기후가 된다고 한다”며 “이상기후가 만들어내는 산업 지형 변화에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lus point

“열사병 예방에 좋다” 日서 매실장아찌 인기

일본식 매실장아찌인 ‘우메보시’. 사진 조선일보 DB
일본식 매실장아찌인 ‘우메보시’. 사진 조선일보 DB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올여름 일본에서는 폭염에 따른 열사병 예방 식품으로 ‘우메보시(매실장아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우메보시는 매실을 소금에 절인 일본 전통 저장식품으로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수분과 염분을 보충하기에 좋은 반찬이다.

올여름 우메보시 특수는 ‘고시엔(고교야구 전국대회)’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올해 100회를 맞은 고시엔에서 야구선수들이 연습 중간 탈진을 막기 위해 우메보시를 먹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례적인 열풍에 매실 산지인 일본 와카야마현의 매실 가공 공장은 풀가동하고 있다. 이 공장의 올여름 매실 일평균 생산량은 8t에 이른다. 밀려드는 주문을 맞추기 위해 공장 가동 시간을 오전 9시에서 오후 8시까지에서, 오전 9시에서 오후 9시로 1시간 연장했고, 직원들은 휴일을 반납했다.

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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