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경제학 박사, 호주 농업자원경제연구소(ABARE) 선임연구원
임재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경제학 박사, 호주 농업자원경제연구소(ABARE) 선임연구원

폭염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은 결국 에너지 관리뿐이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기후변화정책연구본부장은 “한국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대부분이 화석연료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다”며 “에너지 소비 관리가 온실가스 배출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에너지 소비 효율성은 다소 낮은 편인데, 이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르지 않는 가격 구조와 한국전력의 전기 시장 독점 등 경직적 시장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임 본부장은 2000년부터 국가 에너지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해왔다. ‘2차 에너지 기본계획’ ‘7차 전력 수급 기본계획’ 등 굵직한 정책은 물론,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 전망치 대비 37% 감축하기로 한 ‘온실가스 자발적 설정 감축 목표(INDC)’ 설정의 실질적 책임자였다. 현재 2040년까지의 에너지 전환 종합 비전이 담기는 ‘3차 에너지 기본계획’의 총괄 간사를 맡고 있다. 8월 23일 서울 광화문의 한 비즈니스센터에서 임 본부장을 만났다.


폭염을 겪으면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더 많은 사람이 인지하게 됐다.
“기후변화는 지금 당장 뭘 한다고 효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 장기적으로 대응할 문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의 핵심은 경제활동을 그대로 하면서도 에너지는 덜 쓰게 하는 정책이다. 화석연료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에너지의 효율성을 향상해야 하고 에너지 수요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핵심 수단은 결국 가격이다. 전기는 공공재가 아니다. 쓰는 만큼 돈을 내는 구조가 당연한데, 한국은 그 구조로 돌아가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많이 쓰면 많이 내는 구조여야 하지만, 한국은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기요금은 적게 내고 싶어 하는 이율배반적 행동을 보인다.”

전기 가격 체계는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현재 한국의 전기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용도별로 정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굉장히 경직돼 있다. 낮은 수준의 가격으로 계속 쓸 수 있다 보니 개인은 물론 대형 건물, 산업계 등 모두가 전기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저렴하고 경직적인 가격 구조는 온실가스 감축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가격 정책은 장기 에너지 기본계획의 핵심 이슈 중 하나다. 온실가스 대응 비용, 환경 비용 등 여러 비용을 반영해 국민이 내는 요금이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돼야 한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이와 함께 수요가 적은 시간에 사용하면 저렴한 금액으로, 수요가 많은 시간에 사용하면 다소 비싼 금액으로 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계시별 요금제(계절·시간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요금제)’가 정착돼야 한다. 지금도 부분적으로는 실시하고 있지만,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 의식도 ‘전기를 많이 쓰면 돈도 많이 내야 한다’는 쪽으로 변할 것이다.”

가격 체계 말고도 에너지 이용의 효율성을 끌어올릴 방법이 있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 에너지 전문기구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효율 향상에 의해 에너지를 감축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어디에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지’를 찾아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해외에서는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가 활성화돼 있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를 ‘수요관리사업자’라고 한다.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노하우도 알려주는 것이다. 에너지 절감 실적은 서비스 이용자와 사업자가 나눠 갖는다.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게 하려면 시장이 개방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전기 시장은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다. 전기 시장은 발전소에서 고압의 전기를 변전소까지 보내는 송전, 변전소에서 각 가정까지 전기를 보내는 배전, 두 가지로 나뉜다. 배전 분야만 부분적으로 개방해도 이 같은 서비스가 가능하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 일자리와 비즈니스까지 창출할 수 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에너지 빅데이터 활성화 정책의 하나로 도입한 ‘그린버튼’이 대표적이다. 그린버튼은 전력 정보를 하나의 형식으로 표준화해 개인이나 가정이 자신의 전력 사용량 등을 실시간으로 내려받거나, 이를 제삼자 서비스 업체와 공유할 수 있도록 정부 주도하에 구축한 프로그램이다. 사업자는 그린버튼을 통해 맞춤형 전력 사용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주는 그린버튼을 통해 15짜리 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되는 효과를 거뒀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은 한전의 전기 시장 독점도 문제지만, 에너지 사용량을 초 단위로 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온실가스를 덜 내뿜는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전체 20%로 확대하는 등 강력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더욱 늘리는 것은 맞는 방향이고, 그에 대한 정책이 강화돼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신재생에너지의 중요성과 친환경에너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대한 국민의 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의식한다는 것은 결국 에너지를 사용할 때 합리적 수준의 가격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중에서도 태양광·풍력의 비중을 높이려고 한다.
“현재 신재생에너지원 중에서는 가연성 폐기물의 비중이 가장 크지만, 폐기물은 한계가 있다. 신재생에너지마다 목표치를 할당하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 폐기물을 수입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얘기하는 진짜 신재생에너지가 아닌 거다. 반면 현재 태양광과 풍력발전량은 다소 많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국의 지리적·기술적 여건을 고려하면 향후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빠르게 보급될 가능성이 크다. 태양광과 풍력에 집중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흐름이다. 다만 태양광과 풍력 기술 수준을 지금보다 더욱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에 태풍(제19호 솔릭)이 굉장히 강력할 것으로 예측됐는데, 강력한 태풍이 오면 태양광 패널의 상당 부분이 강풍에 날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안전성 등을 향상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 국가 온실가스를 배출 전망치 대비 37%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개인적으로 37% 목표치가 다소 높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국제사회에 공표한 만큼 더 이상 목표 수준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하다. 우리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애초 25.7%는 국내에서, 11.3%는 해외에서 소화하기로 했다가 올해 국내 감축분을 32.5%까지 늘렸다. 이는 아무래도 산업계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는 점차 강화될 수밖에 없다. 지구 온난화가 더욱 심각해지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제품에 대해서도 무역 규제가 생길 수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기업은 단순히 부담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모멘텀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미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 기업도 나서야 할 때다. 다만 기업이 힘쓰는 만큼 정부도 기업 부담을 경감시켜 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윤정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