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도 금융 공기업 수장 자리는 여전히 ‘낙하산’ 차지다. 특히 ‘친문(친문재인) 낙하산 인사’를 뜻하는 ‘캠코더’ 출신 인사가 대부분이다. ‘캠코더’는 ‘대선캠프’ ‘코드인사’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라는 뜻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되풀이됐던 낙하산 인사가 최근 들어 달라진 게 있다면 친여 성향의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진출했다는 점이다. 이들 중 일부는 전문성을 갖춘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정권 창출에 기여한 것에 대한 보은 인사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전문성 없이 문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금융 공기업 임원 등에 내려꽂힌 인사라는 얘기다.


정권 때마다 코드 인사 논란

7월 초 산업은행 사외이사로 선임된 김남준 이사는 지난해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에서 ‘반특권·검찰개혁추진단장’으로 활동했고,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있었다. 앞서 사외이사로 선임된 양채열 전남대 교수도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올 1월 임명된 이정환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은 19·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부산에 출마했고 지난해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이동윤 상임감사와 조민주 비상임이사는 이 사장과 함께 부산시선대위에서 각각 대외협력단장과 공동본부장으로 일했다. 사장을 견제해야 하는 상임감사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용순 한국수출입은행 감사는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경호처 경호본부장 출신이다. 수출입은행의 고유 업무는 물론이고 경영진의 비리를 감시해야 할 감사 직무와도 무관하다. 곽성열 한국조폐공사 비상임이사도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 대전시당 유세지원본부 공동단장이었다.

민간 금융회사도 친여 인사를 속속 영입하고 있다. KB부동산신탁은 올 1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며 2012년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던 김정민 전 KB부동산신탁 사장을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올 3월 KB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선임된 선우석호 홍익대 교수는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과 경기고 동문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공식 지지한 김정훈 민주금융발전네트워크 전문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낙하산 인사는 보수,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에서 되풀이돼 왔다. 그때마다 판박이 같은 비판도 늘 제기됐다. 낙하산 인사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수행하도록 하고, 관치 금융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특히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정부 고위직과 여당 성향의 정치인이 금융권의 주요 자리를 독식한 게 사실이다. 옛 재무부 차관급이라면 ‘공기업 사장 3년+금융회사 사장 3년+금융회사 고문 3년’ 등 은퇴 후 9년은 ‘노후 보장’이 됐다는 얘기가 금융계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이들은 금융회사에 있으면서 정부 당국의 감독을 무력화하는 데 일조했다. 퇴직하는 경제 관료 중 서열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해 내부 조율을 거치기 때문에 ‘끼리끼리’ 해먹는다는 말도 돌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 인사’ 논란도 심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전 KDB금융그룹 회장 등 ‘4대 천왕’이 득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에는 서강대 출신의 금융인 모임인 ‘서금회’가 주목받았다.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등이 대표적인 인사다. 그만큼 낙하산 인사를 뿌리 뽑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문제는 현 정부 낙하산 인사의 경우 전문성과 독립성이 다른 어느 정부에서보다 더 떨어진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나 여당이 주요 임명직 자리에 ‘자기 사람’을 임명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정권이 개입해 인사를 했어도 전문성이 충분히 검증되고, 해당 조직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문제 되지 않는다. 외부 인사가 들어오더라도 전문성이 확실하고, 인사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성에 앞서 논공행상 차원에서 요직에 발탁했다면 말이 달라진다. 특히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의 경우는 더 중요하다. 한국예탁결제원이 100% 출자 자회사인 KS드림 대표로 선임한 김남수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다. 그는 2006년 정부의 ‘공직자 골프 금지령’이 발표되고 불과 수일 만에 대기업 임원과 골프를 친 사실이 문제 돼 비서관에서 물러난 전력이 있다. 지난해 경제부총리 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을 제외하면 예탁결제원은 물론 금융이나 자본시장에서 일한 경험이 전무하고 직무 관련성도 없다.


전문성 검증하고 견제장치 만들어야

한국증권금융의 김대식 상근감사는 보험사의 소송담당 사내변호사, 대한전선 법무실장 경력이 전부다.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 활동과 경희대 출신인 것이 작용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국증권금융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증권을 담보로 금융투자업자에게 자금을 대출해주거나 투자자예탁금을 맡아 운용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특히 전문성 없는 정치인들이 금융 공기업과 민간회사의 수장 자리와 사외이사 등을 ‘나눠 먹기’ 하다 보니 금융산업이 계속해서 후퇴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금융 부문은 타 분야보다 전문성이 더 요구된다. 금융 공기업은 물론 민간 금융회사도 국내외 경제 정책과 연계된 업무가 많고, 복잡하므로 외부에서 온 낙하산 인사가 이를 파악하다 보면 임기가 끝난다. 무엇보다 금융이 선진화되면서 전문성이 없으면 아무나 앉아선 안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전문성을 고려해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비난이 거센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지금 정부는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정권 창출에 공헌한 인사에게 자리를 챙겨주는 데 급급하다”며 “기관마다 공모 절차가 있지만 청와대 눈치 보느라 유명무실하다. 능력 없는 인사를 솎아낼 견제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문성 없는 인사를 하고도 문제가 생기면 누구도 책임 지지 않는다”며 “차라리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를 법으로 정해놓고, 이후 책임도 지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서는 전직 관료들이 4차산업혁명 시대 금융산업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제 관료가 회사 입장을 정부에 대변해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금융 현장에 제대로 적응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산업은행처럼 공공기관장이 정부의 철학과 방향을 공유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래도 전문성을 확보한 인사를 수장으로 선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전문성은 그 분야의 학식을 갖추고 경력을 쌓았거나, 그 분야가 아니라면 연관 분야에서 거둔 성과로 검증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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