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치 다카히데 와세다대 경제학과, 노무라증권 금융경제연구소 경제조사부장,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
기우치 다카히데
와세다대 경제학과, 노무라증권 금융경제연구소 경제조사부장,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

“관료정치에서 탈피하겠다.”

2009년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민주당 대표가 정권을 잡았을 때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말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총리실보다 경제 관료의 힘이 더 셌다. ‘국익보다는 부처 이익’을 내세운 관료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국민적 위기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9년, 일본에서는 관료가 정권에 알아서 기는 ‘손타쿠(忖度)’가 횡행하고 있다.

“대통령도 모피아는 못 이긴다.” 2008년 노무현 정부 후기 모피아 경계론을 설파하던 한 시민단체장의 말이다. 모피아는 재무부(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재무부 출신이 산하기관을 장악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댄 표현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관료는 청와대 입김을 피해 ‘복지안동(伏地眼動)’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묘하게 닮아가고 있다. 기우치 다카히데(木内登英)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에서는 2014년 총리실이 내각 인사권을 쥔 후로, 정권의 마음에 들기 위해 관료가 알아서 납작 엎드리고 있다”며 “공무원 인사 전권을 쥔 내각 인사국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베 내각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실업률이 떨어지는 등 ‘아베노믹스’가 성공하고 있다”면서도 “기업 혁신과 정부의 구조 개혁 측면에서는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기우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12년부터 5년간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냈다.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에 해당한다.


최근 일본에서 아베 내각의 방만 재정이 문제 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재정 건전화를 직언하는 재무성 관료는 없는 것 같다.
“오는 2019년 10월 소비세율이 인상된다. 이미 예정돼 있는 정책이지만, 아베 정권이 재정 확장 노선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베 정권은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경기 악화의 대책으로 감세와 예산 지출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그 결과, 소비세율 인상의 재정 적자 삭감 효과가 줄어들 것이 우려된다. 재무성 관료는 재정 적자를 줄이기를 원하지만, 아베 정권하에서는 관료의 인사권이 관저(총리 측)에 달려 있어 정권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다. 또 재무 관료의 비리가 잇따르자 정부에 대한 재무 관료의 발언권은 더 줄어드는 모양새다.”

모리토모 학원을 둘러싼 공문서 위조 등의 사건 말인가.
“공문서 위조 외에도 사무차관의 여기자 성추행 의혹 사건 등으로 재무성 이미지가 상당히 저하되고 있다. 2019년도 예산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0조엔을 넘을 전망이다. 하지만 재무성의 위상이 떨어져서 내각의 세출 확대에 제동을 걸 수도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경제 관료의 발언권이 약해지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2014년 내각 인사국이 설치된 후 총리실이 관료의 인사를 결정하는 체제가 됐다. 이 때문에 정권의 마음에 드는 관료가 출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정권에 납작 엎드리는 이른바 ‘손타쿠’가 횡행하고 있다. 손타쿠는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으로 권력자가 먼저 지시하지 않아도 공무원이 알아서 권력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그 이전에는 관료의 인사는 관료가 결정하는 체제였고, 어느 파벌에 속하는가에 따라 출세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너졌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 관료는‘청와대에 아무리 말해도 반영되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호소한다.
“일본에서는 관료 중에서 선출직인 총리 보좌관이 매우 큰 힘을 쥐고 있어 종종 문제가 된다. 총리 보좌관은 총리의 후광을 업고 관료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내각 인사국을 개혁하여, 관료의 인사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4년 5월 신설된 내각 인사국은 각 성청(省庁·한국의 정부부처)의 부장, 심의관급 이상 600여 명의 인사를 관할하는 조직이다. 국가 공무원 인사관리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공무원 임명까지 총리와 관방 장관이 협의를 한다.) 그렇게 되면 관료가 내각에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겠지만, 현재 아베 정권 아래서는 실현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특히 아베 정권은 산업·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경제산업성(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재정 등을 담당하는 재무성이 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관료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방법은 없을까.
“과거 가스미가세키(霞が関·도쿄에서 일본 행정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관료의 힘이 지나치게 강한 점이 문제가 됐었다. 각 부처가 국익이 아니라 부처나 파벌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때문에 선거로 뽑힌 국민 대표가 정부와 내각, 부처를 제대로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이 때문에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민주당 정권에서 관료에 의존하지 않고 정책을 입안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후 아베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관저가 관료 인사권을 장악하게 됐다. 이번에는 관료가 지나치게 정부에 바짝 엎드려 올바른 의견도 말하려 하지 않게 됐다. 최근 몇 년간 일본의 관료와 정권과 관계를 지켜본 결과, 그 둘의 관계는 중간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9월 선거를 앞두고 아베 총리 지지율은 상승세다.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대안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소극적인 지지라는 뜻이다. 아베 총리가 과거 5년 8개월간에 걸쳐 추진하고 있는 경제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는 성공하고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재선하면 아베노믹스는 계속될 것이다. 다만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재정 확장의 경향은 더 강해질 것이다.”

아베 내각하에서 일본 경제가 좋아진 것은 사실 아닌가.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임기 중에 GDP(국내총생산)가 얼마나 증가했고, 유효구인배율(有効求人倍率)이 얼마나 늘었는지 강조하며, 이를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분명히 실업 걱정을 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반대로 경기가 좋아졌다고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의 경제 지표가 개선된 것은 금융 재정 정책이 효과를 냈다기보다 세계 경제 회복에 도움을 받은 측면이 강했다고 본다. 나아가 경제 환경이 개선됐다는 것도 수요 증가를 의미할 뿐이다. 일본 경제의 잠재력이 강해졌고 경제의 공급 측이 개선됐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한국은 17년 만에 최고 실업률을 기록했다.
“개인이 느끼는 경제적인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실업 걱정이 없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 생활 수준이 제대로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중요하다. 국가의 생산성 상승률이 높아져, 실질 임금 상승률이 함께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필요하다. 그래야 일본 경제의 잠재력이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생산성 상승률과 잠재 성장률을 높이려면 기업 혁신과 정부 구조 개혁이 필수다. 이 점에서 아베 정권하에서 GDP가 얼마나 늘어났는지가 아니라 구조 개혁을 통해 일본 경제의 잠재력을 얼마나 키웠는지를 봐야 한다. 아베 정부하에서 많은 구조 개혁 계획이 나왔지만 일일 메뉴처럼 매년 주제가 바뀌었고, 이 때문에 기업은 변화를 충분히 느끼지 못했고, 일본 경제 잠재력 향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주제에 더 차분히 대처하는 자세를 가져야 실효성이 높아지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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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구인배율 구직자 대비 구인 수요를 나타낸다. 수치가 높을수록 구인난이 심한 것, 즉 기업의 채용 수요가 늘었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7월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은 1.63으로 1974년 이후 4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63이라는 수치는 구직자 한 사람당 1.63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김명지 기자, 이정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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