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 중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작품 앞에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사진 트위터 캡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 중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작품 앞에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사진 트위터 캡처

‘신라 천년 고도’ 경주의 ‘황리단길’은 불과 2~3년 전만 해도 경주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였다. 그런데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처럼(황리단길은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란 뜻의 별칭이다) 이국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경주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됐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된 젊은 관광객들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앞다퉈 황리단길 태그(#)를 단 인증샷을 올린 것이 인기몰이에 단단히 한몫했다.

스마트폰 기반의 SNS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황리단길처럼 단기간에 특정 지역이 ‘환골탈태’ 수준의 변신을 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부나 기업 주도의 대형 프로젝트가 아닌 다음에는 그럴 수 없었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카페나 식당은 인테리어나 메뉴가 경쟁력이 있어도 오래 지나지 않아 문을 닫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SNS, 그중에서도 특히 인스타그램 같은 사진 공유에 특화된 앱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딴곳에 있는 맛집·멋집도 일단 영향력 있는 인스타그래머(인스타그램 사용자)에게 포착되면 팔로어 인맥을 타고 삽시간에 관련 정보가 퍼져나간다. 그렇게 해서 전국구 명소의 반열에 오르면 주변에 또 다른 맛집·멋집들이 하나둘 자리 잡으면서 주변 환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황리단길이 바로 이런 경우다. 지난 여름 황리단길을 찾았을 때 인근 주택가 곳곳에서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개조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 6월, 월간 사용자 10억 명을 넘어선 인스타그램은 이제 관광 산업의 지형도를 바꿔놓고 있다. 같은 값이면 ‘사진발’ 잘 받는 관광지가 인기도 많다.

오랫동안 잊히다시피 했던 장소가 ‘인스타 명소’로 주목받으면서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 ‘죽성성당’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진 부산 기장군 죽성마을의 ‘죽성드림세트장’이 대표적인 예다. 죽성성당의 인기는 인스타그램 효과를 빼면 설명하기 어렵다.

SBS 미니시리즈 드라마 ‘드림’ 촬영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시청률이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드림’은 인기 가수 손담비의 연기 데뷔작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평균 시청률 4.9%를 기록하며 그해 방송된 드라마 중 최저 시청률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드라마는 잊혔지만 세트장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인증샷 명소’로 부활했다. 인스타그램이 부활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관련 해시태그가 5만 건 넘게 검색된다. 일출·일몰·야경 등 언제 찾아도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세트장은 현재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두 팔 벌린 예수상이 바다 건너 영도를 바라보고 서 있는 부산 우암동 동항성당의 예수상도 ‘부산의 리우데자네이루’로 불리며 인스타 명소로 떠올랐다.

인스타그램 열풍으로 호텔과 유통 업계에도 개성 있는 숙박과 쇼핑 공간을 연출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지난 4월 홍대입구역 인근에 문을 연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호텔은 국내외 예술가 4명이 참여한 독특한 객실 디자인으로, 1월에 오픈한 강릉 골든 튤립 스카이베이 경포 호텔은 수영장과 바다가 이어지는 듯한 인피니티풀 전망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졌다.

올해 초 이마트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문을 연 만물상 잡화점 ‘삐에로 쑈핑’은 ‘정돈보다 혼돈, 상품보다 스토리, 쇼핑보다 재미’라는 기존 상식을 뒤집는 매장 운영과 독특한 안내 문구로 주목받으며 인스타그램 누적 게시물이 1만 건을 훌쩍 넘어섰다.

인스타그램에서 여행 분야를 총괄하는 테리 케인은 걸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은 이제 인스타그램을 통해 새로운 (여행) 콘텐츠를 검색한다”며 “인스타그램이 사람들이 여행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이 여행 산업에 긍정적인 변화만 가져온 건 아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등 세계적인 전시관들은 작품 앞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인증 샷을 찍는 사람들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빈번해진 풍경이지만, 인스타그램 등장 이후 정도가 심해졌다.


‘인스타 명소’로 유명한 죽성드림세트장의 모습. 사진 트위터 캡처
‘인스타 명소’로 유명한 죽성드림세트장의 모습. 사진 트위터 캡처

셀카족 이기심에 무너진 관람예절

관람 예절도 셀카족(族)의 이기심에 무너지고 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전시실에 들어가면 작품을 등지고 저마다 ‘셀카’를 찍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관람객을 늘리기 위해 세계 유명 미술관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전시실 내에서 사진 촬영을 허용한 것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인스타그램은 세계적인 문제가 되는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의 주범으로도 지탄받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태국 푸껫 등 세계적인 관광지에는 성수기마다 일시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 현지 주민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관광객들은 집으로 가라”는 구호까지 외치며 시위하는 등 ‘관광 혐오증(Tourism Phobia)’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필리핀 보라카이 등 동남아시아의 유명 휴양지들은 관광객의 환경 파괴로 올해 들어 줄줄이 시한부 폐업에 들어갔다.

태국 정부는 할리우드 영화 ‘더 비치’의 촬영 장소로 유명한 피피섬의 마야 해변을 지난 6월부터 오는 10월까지 4개월간 폐쇄 조치했다.

푸껫에서 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이 지역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순백의 해변으로 ‘자연이 만들어 낸 낙원’으로 불린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산호초가 파괴되고 상당수의 해양 생물이 자취를 감췄다.

매년 200만 명 이상이 찾는 필리핀의 보라카이는 폐쇄 후 6개월간의 복원 기간을 거쳐 오는 10월 26일 재개장한다. 폐쇄 기간에 필리핀 정부는 난개발된 리조트 철거, 리조트 하수 시설 완비, 도로 확장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라카이 섬의 환경 복원을 위해 힘쓴다.

관광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모토로 하는 미국 여행사 리스폰시블트래블의 저스틴 프랜시스 대표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과거에는 새로운 경험이 여행의 주목적이었는데, 이젠 사진과 SNS를 통해 각자를 홍보하기 위한 활동으로 변질됐다”고 개탄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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