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경제학 박사, 도쿄대 명예교수, 일본 내각부 경제사회종합연구소장, 일본 총리 고문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경제학 박사, 도쿄대 명예교수, 일본 내각부 경제사회종합연구소장, 일본 총리 고문

일본 도쿄에 머무는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첫 마디는 “일본어도 가능한지”였다. 여든두 살 노교수에게 “영어로 하자”고 답하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분하고 조용했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학자다운 꼿꼿함이 묻어났다.

하마다 교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이론적 지주로 불린다. 2012년 12월 아베 총리가 재취임한 후 ‘리플레이션’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고, 이후 총리실 고문(내각관방 참여)을 맡아 아베노믹스 추진을 도왔다. 리플레이션이란 아베노믹스의 핵심정책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을 정도로 통화를 팽창시켜 경기 회복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마다 교수는 일본 경제의 회복 동력을 아베노믹스에서 찾았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내용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모르는 것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답했다. 기사를 통해 주목을 받아보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는 듯했다.


일본 경제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나.
“상당히 좋은 모양새다. 실업률은 사상 최저치에 근접해 있고, 일자리 수는 아베 총리 취임 전보다 250만개 늘어났다. 적극적인 돈 풀기가 성공적인 경기부양으로 이어졌으며, 이로 인해 실적이 좋아진 기업들이 고용을 늘린 데 따른 것이다. 시장경제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두 축은 고용과 소비다. 물가상승률은 아직 일본은행(BOJ) 목표치(2%)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물가상승은 완전고용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실업률은 지난 5월 2.2%로 25년 7개월 새 최저치를 기록한 뒤 6월에 2.4%, 7월에는 2.5%로 소폭 상승했다가 8월 들어 2.4%로 다시 낮아졌다.

일본 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가는 원동력은.
“무엇보다 아베노믹스 효과가 컸다. 앞서 언급한 성과들은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기에 접어든 이후 아베 총리 이외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것들이다. 아베노믹스가 특별한 것은 이전 정부에서 ‘소용없는 일’로 여겼던 통화정책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도 원화절상을 막고 필요할 경우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통화정책과 환율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괜찮을까.
“미국 금리 인상은 축복일 수 있다. 통화가치 절하로 수출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 가치 절하가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 부작용이 커지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1960년대에는 공공 분야 투자의 ‘낙수효과’로 일본 경제가 급성장했다.
“그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당시에는 노동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었고,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도 증가하면서 생산성이 큰 폭으로 향상됐다. 기술력이 낮았던 일본 기업들은 서구 기업의 첨단 기술을 모방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하나같이 현재 상황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기술 발전을 원한다면 이제는 중앙과 지방 정부의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아베노믹스에 대해 아쉬운 점은 없었나.
“2014년 소비세율 인상(5→8%)이 없었다면 아베노믹스의 효과는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2019년으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8→10%)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2014년과 비교해 경기가 눈에 띄게 호전됐고 앞으로도 성장을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의 앞날에 어떤 변수들이 있을까.
“일본의 국민소득(NI)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일본 땅에서 뭔가 더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다. 하지만 고령화에 따른 젊은 노동력 감소는 장기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인공지능(AI)이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앞으로 50년 후에도 젊은층의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과도기적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급여가 오르고 업무 환경이 나아진다고 좋아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의 200%가 넘는 부채도 위험요인 아닌가.
“부채에는 좋은 부채(good debt)와 나쁜 부채(bad debt)가 있다. 저축된 자금을 빌려 창업하는 등 건전한 경제 활동을 위한 부채라면 늘어도 괜찮다. 일본 경제의 거품 문제가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저축률이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고 하지만 비중이 커지고 있는 노년층은 여전히 소비에 인색하다. 소비가 충분히 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로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은.
“그 점에서 일본은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배워야 한다.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외국인은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특별한 전문 기술이 없는 이들의 이주는 신중히 검토해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과거에 (오바마 행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트럼프 당선을 도운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일본의 기업 문화도 달라져야 하지 않나.
“그렇다. 일본 직장에서는 ‘충성심’이 중요하다. 직원은 상사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문화가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수직적인 기업 문화는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고 생산성도 떨어뜨린다. 젊은층, 특히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경험해본 청년들이 일본 경제에 더 많이 유입돼야 한다. 이들이 중장년층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올해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10주년이다. 또 다른 금융위기의 가능성은.
“가까운 시일 안에 금융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주장들은 한 측면만을 부각한 일방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언제 어떤 부분이 뇌관이 돼 위기가 다시 찾아올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일단 지난번 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 경제는 더없이 좋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불필요한 금융 규제를 철폐한 게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경제가 좋다고 하지만 미국 주식 시장의 활황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트럼프 정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자들이 (재선에 도움을 주고자) 주식시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잘나가던 미국 뉴욕증시는 하마다 교수 인터뷰 이틀 뒤인 10일(현지시각) 미 국채금리 급등에 따른 부담과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실적악화 우려로 폭락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혹시라도 (중국 제품 등에 대한) 관세 부과를 통해 미국인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잘못 생각한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정책을 앞세워 강한 이미지를 어필하는 데는 정치적인 계산이 있겠지만 말이다.”

미국은 2500억달러의 중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했으며, 중국은 미국의 1100억달러의 상품에 관세를 매겼다. 미국이 추가로 2670억달러의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은 중국의 모든 제품에 관세를 매기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9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경우 미국과 중국의 내년 GDP가 각각 0.9%, 1.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둘 사이에서 운신의 폭을 넓힐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일본 경제의 미래를 위해 아베 총리가 트럼프와 시진핑은 물론 남북한의 정상들과도 소통을 잘하길 기대한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통한 경제적 효과는.
“도쿄올림픽이 일본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기업의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는 등 경기 부흥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일본 건설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 만큼 건설 업계의 수주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

미즈호 금융그룹은 올해 초 보고서에서 도쿄올림픽의 경제효과가 30조2000억엔(약 30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대회운영 등으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효과가 1조8000억엔, 도시 인프라 정비, 관광객 증가 등으로 인한 부수효과가 28조4000억엔이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이 일본이 전후 패전국가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회가 됐다면, 2020년 도쿄올림픽은 일본을 ‘제2의 도약’으로 이끌어줄 전환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한국 경제를 위한 조언 부탁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 성장에 필요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교육 말고는 답이 없다. 일본과 중국도 비슷하지만,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적이다.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방향이 문제다. 한국인 친구 중에 자녀 교육 때문에 부부가 떨어져 살아본 경우가 많다. 엄마가 자녀를 데리고 미국에 나가 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 건 나쁠 게 없지만, 단순히 학위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분야를 막론하고 지식을 암기하는 건 AI를 따라갈 수 없다. 바꿔 말하면, 학위가 훌륭한 창업자로의 성장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 암기와 산술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리더십과 혁신역량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교육의 커리큘럼도 달라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의 기술적인 DNA는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온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인 고유의 역동성과 창의력을 잘 살려 나갈 수 있길 바란다.”


plus point

[Interview]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아베노믹스는 기업 환경 개선 위한 정책”

이용성 차장

성태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 금융경제팀 부연구위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성태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 금융경제팀 부연구위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하마다 고이치는 일본이 장기불황에서 빠져나오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주류 경제학계에서 신망받는 위치에 있었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도 탄탄했기 때문에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인 금융완화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얻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18일 개최되는 ‘이코노미조선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의 대담자로 나서는 성태윤(48) 연세대 교수는 논문이나 칼럼을 통해 현실 이슈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행동파 경제학자’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경제팀 연구위원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거쳤다. 그는 일본의 고용 여건이 좋아진 게 ‘인구가 줄어서’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인구 감소는 경기 침체기에도 진행됐다”며 “정책(아베노믹스) 성공과 그에 따른 경제 구조의 변화가 요인이었다”고 주장했다.


대담 파트너인 하마다 교수를 평하면.
“아베노믹스를 설계해 일본이 20년 장기불황에서 빠져나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책화한 건 아베 총리지만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아베노믹스의 성공 요인은 뭘까.
“아베노믹스는 정교한 정책적 프레임을 바탕으로 설계됐다. 단순한 엔저․저금리 정책이 아닌 기업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장기 불황의 여파로 해외로 본거지를 옮긴 일본 기업들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엔저를 유도해 수출경쟁력을 회복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실적이 개선되면서 임금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임금을 올려 경제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우리 정부 정책과 딴판이다.
“임금을 올린다고 경제 상황이 좋아지거나,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되는 게 아니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실적이 좋아지면 임금은 따라 오르게 돼있다. 그게 지속 가능한 개선 방향이다.”

일본이 법인세를 낮춘 것도 기업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일본은 아베 총리 집권 이후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30%에서 세 차례에 걸쳐 지난해 23.4%로 낮췄다. 반면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소비세율은 2014년 5%에서 8%로 인상했다. 소비세 인상은 아베 내각의 인기에 도움이 될 리가 없는 정책이었지만, 법인세 인하는 경기 회복을 위해 절실하다는 판단으로 밀어붙였고, 결국 성과로 이어졌다.”

최근 들어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호전되고 있다.
“중국도 우리와 비슷하게 일본에 대한 반감이 크다. 하지만 미국의 보호주의 움직임 속에 세계 경제가 블록화되면서 중국과 일본의 협력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과 중국에서 공부하는 일본인 유학생 수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인적 교류 증진으로 두 나라의 기업 간 교류도 늘어날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우리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대학생들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일본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우리 세대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적어도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일본에서는 취업하지 않겠다’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가 좋아지면서 학생들이 일본을 보는 눈도 달라진 것 같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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