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 찾은 서울 중구 동대문 패션타운 ‘두타몰’. 사진 이윤정 기자
10월 18일 찾은 서울 중구 동대문 패션타운 ‘두타몰’. 사진 이윤정 기자

10월 18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 패션 1번지’ 동대문 패션타운 ‘두타몰’을 찾았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여행 중인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손에 바리바리 쇼핑백을 든 관광객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날 동대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이려나(29)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평소 케이팝(K-POP·한국 대중가요)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중국에서도 한국 스타일로 만든 옷만 찾아입는 편이라 여행 온 김에 품질 좋은 ‘진짜 한국 옷’을 사려고 왔다. 그런데 와서 보니 중국에서 구매하는 것과 품질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며 실망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대구에서 섬유기업을 운영하는 A대표 역시 이씨의 말을 뒷받침한다. A대표는 “지금 동대문에 납품되는 원단 중 약 70%가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 봉제도 대부분 중국 등에서 이뤄진다. 중국산 비율은 계속 상승 중이고, 앞으로 100%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에서 방탄소년단(BTS), 엑소(EXO) 등 한국 아이돌과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 의류 제품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섬유산업의 생산량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통계청 ‘광업제조업조사’에 따르면, 고용 인원 10인 이상 한국 섬유기업이 생산해내는 섬유는 2016년 약 41조원으로, 5년 전인 2011년 약 47조원에 비해 13%(약 6조원)가량 줄었다.

대규모로 생산할 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날로 높아지는 인건비 부담 등으로 인해 모두 중국, 베트남 등 저임금 국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 약 2조5300억원을 기록한 국내 최대 섬유패션기업 ‘휠라코리아’의 경우 내수용 제품은 부산에서 생산하지만, 나머지 전 세계로 유통되는 해외용 제품은 중국에서 제작한다. 국내 최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인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 베트남, 엘살바도르 등에 공장을 두고 제품을 생산 중이다.

한국 섬유산업의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대규모로 투자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모두 빠져나간 상황에서 영세 업체들은 살 길을 찾아야 하지만, 급변하는 미래에 대한 준비는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특히 인적 자원 의존도가 높은 섬유산업 특성상 임금 상승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십 년 전부터 나왔지만, 여전히 섬유기업들은 이를 상쇄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에 투자할 자금 부족을 이유로 시대 변화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의 ‘전국 섬유업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응답 업체의 91%가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컴퓨팅,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나마 검토 중이라는 답변은 6.1%에 그쳤다. 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도 수익성 향상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답변이 84.4%에 달했고,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 역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82.4%에 달했다.

현장에서는 영세 업체가 대부분인 만큼 정부 지원이 절실하지만, 정부의 지원 규모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스마트공장 보급‧확산 사업’이다. 스마트공장이란 제품 기획·설계, 제조·공정, 유통·판매 등 생산 전 과정을 정보기술(IT)로 통합해 최소 비용과 시간으로 고객 맞춤형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말한다. 현재 중기부는 스마트공장을 아직 구축하지 않은 기업을 대상으로 솔루션과 연동 설비 구축을 위해 기업당 최대 5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5000만원으로 ‘어림도 없다’는 반응이다. 대구에서 섬유 기업을 운영하는 B대표는 “스마트공장을 지으려면 설비를 모두 새로 바꿔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수십억원대의 자금이 필요하다”며 “돈 5000만원만 주고 스마트공장을 지으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현장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정부 지원엔 한계가 있는 만큼,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창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연구개발본부장은 “전통 섬유기업의 경우 기술 수준이 다소 낮은 것으로 분류되는 만큼 정부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원하고 있지만, 현재와 같이 수많은 영세 기업이 있는 상황에서 이들 모두를 지원할 수는 없다”며 “게다가 생산 공정의 어느 정도를 스마트공장으로 전환할지는 분야마다 다를 수 있고, 이는 결국 기업이 상황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만큼 투자도 기업의 몫”이라고 말했다.


과열 경쟁으로 제품 차별화 못해

기술 수준에서 다소 뒤처진다 해도 이를 보완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옷을 구매할 때 품질이 어느 정도 충족된다면 디자인 등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제품을 선택한다. 소비자의 감성을 충족시키는 역할은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는 완성품 기업, 즉 브랜드의 몫이다. 그러나 한국 브랜드는 아직 이 같은 측면에서 글로벌 경쟁자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박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류에 대한 감성을 충족시키는 것은 브랜드 몫이고, 이 같은 경쟁력은 단기간에 구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패션산업에 주력하는,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없다는 점을 감성 충전이 되지 않는 요인으로 꼽는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최근 “한국 패션 소비 시장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 아닌 불안한 호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비전문가에 의한 패션 핵심 역량의 부실화’를 꼽았다. 윤한영 한국패션산업연구원 패션사업본부장 역시 “1960년대 섬유기업으로 출발한 효성의 경우 현재 섬유 한 분야만이 아니라 전동기, 변압기 등으로 분야가 넓어진 데다 자본력도 글로벌 패션 기업에 비하면 부족하다”며 “제일모직도 삼성그룹에 속해 있긴 하지만, 역시 삼성그룹의 주력 분야가 패션이 아닌 만큼 역량이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섬유 기업들의 과열 경쟁 역시 제품의 개성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김창규 본부장은 “소재와 디자인 측면에서 개성 있고 차별화된 제품을 설계해야 하는데, 최근 워낙 기업 상황이 어려워 수주하는 일감이 적다 보니 독특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며 “최대한 많은 클라이언트, 즉 불특정 다수에게 공급할 수 있는 범용적인 제품을 만들다 보니 결국 제품 차별화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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