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 산업연구원 섬유패션산업 연구위원
박훈
산업연구원 섬유패션산업 연구위원

섬유산업은 한국의 대표적인 사양산업으로 꼽히지만, 여전히 수많은 기업이 이 분야에 매달려 살아남기 위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 1990년대 약 7만여개에 달했던 전국 섬유산업은 줄어들었다 해도 여전히 4만여개다. 국내에서 우리끼리 치고받는 사이, 중국·베트남 등 섬유산업 후발주자들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세계 섬유시장을 휘어잡았고, 이전과 같은 일반 의류를 만드는 한국 섬유기업은 갈 곳을 잃었다.

박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종사인원 규모와 매출 규모 등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인 영세 섬유기업이 너무 많다”며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서 박 연구위원이 말하는 구조조정이란, 모두 기업을 접고 떠나란 소리가 아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 분야는 접고, 제품 차별화가 가능한 업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 연구위원은 한국 섬유패션산업 관련 발전전략, 연구·개발(R&D) 지원 전략, 지역 특화산업 육성전략 등의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10월 12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이코노미조선’ 사무실에서 박 연구위원을 인터뷰했다.


한국 섬유산업은 ‘사양산업’으로 꼽힌다.
“먼저 섬유산업을 두고 ‘사양산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다. 사양산업이라고 말하려면 소비자 수요가 없거나 해당 산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섬유패션산업의 경우 라이프사이클이 변화하면서 점차 품종이 다양화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패션 유행에 가장 민감한 국가 중 하나다. 즉 수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넘쳐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생산 기업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걱정이다. 섬유산업 사업체 수는 2016년 기준 제조업 전체의 11.5%(4만7889개)에 달하고, 종사자 수도 7.7%(30만3889명)를 차지한다. 망해가는 산업이라면 이 많은 기업이 여기 매달려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왜 섬유패션산업이 계속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가.
“섬유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낮은 산업이다. 저임금 인력과 기계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신흥국이 가장 먼저 섬유산업에 뛰어드는 것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섬유산업도 과거 고성장 시대에 급속도로 성장하며 일본으로부터 주도권을 뺏어왔었고, 이제는 우리보다 성장세가 높은 중국과 인도 등에 이를 빼앗긴 것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섬유산업을 ‘뺏겼다’고 하지 않는다. ‘물려줬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위기론은 저렴한 의류를 만드는 기존 섬유산업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들이 만드는 옷은 중국 등과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즉 한국 옷을 원하는 곳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질 좋고 비싼 제품들은 경기 영향을 적게 받지만, 중저가 제품은 경기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섬유 기업이 많이 모여있는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공장 가동률이 50~60%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모든 섬유기업 상황이 다 안 좋은 것은 아니다. 이들 중에서도 미래에 대해 깨어있는 곳은 R&D는 물론이고 설비 투자, 인력 개발도 열심이다. 그러나 이렇게 잘되고 있는 곳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잘 안 되는 곳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니 ‘섬유산업이 죽어간다’는 인식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섬유산업의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섬유산업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을 통해 한계기업은 퇴출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금은 섬유기업이 너무 많고, 특히 경쟁력 없는 영세업체 비중이 너무 높다. 현재 고용인원 10인 미만 기업이 전체의 90%에 달하는데, 수년간 고용인원도, 매출도 제자리 걸음인 기업이라면 구조조정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부의 복지성 정책 때문에 이들이 계속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이는 시장 교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계기업 퇴출이라면, 아예 폐업해야 한다는 것인가.
“여기서 구조조정이란, 모두 기업을 접고 떠나란 소리가 아니다. 가능하다면 수익성 높고 경쟁력 있는 분야로 업종을 전환하라는 것이다. 첨단 소재라고 해도 같은 섬유라면 기존 의류용 섬유 만드는 것과 원리는 똑같다. 강도, 내열성(耐熱性), 탄성이 뛰어나 방화복, 방탄복 등에 쓰이는 ‘아라미드’의 경우, 기존 옷을 지을 때 쓰는 실과 똑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를 이용해 옷을 만드는 기계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조금 더 공부하고 투자하려는 의지만 있어도 업종 전환이 가능하다. 정부는 R&D와 기획 역량이 있는 기업, 또는 신제품 개발을 추진하지만 일시적인 자금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이 같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지원해야 한다.”

기업들은 기술을 개발해도 한국 내에는 수요가 없다며 정부가 앞장서서 신섬유 수요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점에선 기업과 정부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 먼저 기업의 경우, 소비처도 없는데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잘못됐다. 판로도 없는데 왜 돈을 들여 기술을 개발하나. 힘들게 개발한 기술이 사장되는 지름길이다. 정부는 지금 있는 섬유 관련 규제 단속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일정 규모 이상 인원이 이용하는 건물 등 공공시설의 경우 난연성(불에 잘 타지 않는) 건축 자재를 사용하게 돼 있다. 처음엔 다들 규정을 지키지만, 자재 수명이 다해도 비싼 가격 때문에 교체하지 않는다. 이 같은 규제만 제대로 지켜져도 관련 섬유 소비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다. 신산업이 생길 땐 규제 완화 목소리가 높지만, 반대로 규제를 강화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한국 섬유산업은 기업마다 규모가 너무 작다 보니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많지 않다. 해결 방법은.
“한국 섬유산업은 각 과정이 모두 분업화 돼 있고, 이 같은 구조는 모든 생산 공정이 국내에서 원스톱으로 이뤄져 국내외 주문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협업이 잘될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각 공정 간 협업이 잘 안 되고 있다. 기업이 너무 많고 서로 이윤 확대를 추구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한국 섬유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 역시 기술수준을 높이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러다 보니 기술수준은 제자리걸음인데 생산 기지만 해외로 넘어갔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협업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쉽지 않다. 전국 봉제기업이 모여있는 곳에 ‘봉제협동조합’을 조성한 적이 있다. 봉제기업들의 고질적인 수급 미스매치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여기서 수급 미스매치란, 봉제기업의 생산 규모가 너무 작아 대량 주문 수주를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을 형성하면 수급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A기업이 티셔츠 1만 장을 주문하면, 1000장 생산 규모를 가진 섬유업체 10개가 모여있는 협동조합에서 함께 처리하는 식이다.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면 함께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봉제협동조합은 친목 모임으로 전락했다. 처음 의도했던 것이 실패한다고 해서 포기해선 안 된다. 섬유기업은 혼자 있으면 한계기업이지만, 뭉치면 한계기업이 아닌 수요가 충분한 성장산업이 될 수 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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