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본사가 있는 스페인과 인접국에서 생산하는 전략을 쓴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물량이 전체의 60%다. 사진은 자라의 매장 전경. 사진 블룸버그
자라는 본사가 있는 스페인과 인접국에서 생산하는 전략을 쓴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물량이 전체의 60%다. 사진은 자라의 매장 전경. 사진 블룸버그

자라의 옷 한 벌이 기획 단계를 거쳐 매장에 진열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단 25일. 구상부터 디자인, 생산, 물류까지 옷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을 단축한 덕분에 지난해 자라는 디자인 4만 건을 제품화했다. 자라의 생산 방식은 그동안 제조·직매형 의류(SPA) 업계를 포함한 많은 관련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혀왔다.

그런데 최근 자라보다 더 빠르게 의류를 생산해 매장에 진열하는 회사들이 있다. 영국의 여성의류 전문 브랜드 ‘미스가이디드’는 1주일, ‘부후닷컴’은 2주 만에 이 모든 과정을 끝낸다. ‘니어쇼어링(nearshoring·인접국 생산)’과 ‘자동화’. 최근 해외 섬유패션업계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를 잡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니어쇼어링과 자동화를 통해 의류 가치 사슬을 끌어올린 기업이 미래 의류 업계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섬유패션업계는 경제 침체와 치열해진 경쟁 여파로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 시장이 커지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진 데다, 유행의 주도권이 기업에서 소비자로 옮겨간 영향이 크다. 실제로 SPA 업계의 대표 주자인 자라와 H&M의 실적은 좋지 않다. 2008년 24%에 육박했던 H&M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0%까지 곤두박질쳤다.

맥킨지는 “소규모·애자일(agile·민첩한) 생산에 대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커지고 있다”면서 “(신상품을 생산하는) 속도와 시즌별 소비자의 반응 수집은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맥킨지가 미국의 의류 회사 임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 글로벌 의류 업체 임원 80% 정도가 이 두 가지를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고 했다.

자라는 자국에서 생산하는 ‘온쇼어링’과 인접국을 활용하는 니어쇼어링 전략을 동시에 쓴다. 스페인과 인접국인 모로코 등지에서 생산하는 물량이 전체의 60%에 달한다.

스페인에 있는 자라 본사의 디자인하우스에는 600명에 달하는 디자이너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매일 세계 각지의 매장 매니저, 바이어들과 통화해 고객의 반응과 시장 유행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받는다. 이는 곧바로 디자인 스케치에 반영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피드백을 받는다. 패턴을 재단, 가봉해 샘플이 완성되면 이 디자인의 디지털 설계도가 본사 건너편 공장 컴퓨터로 전송돼 생산이 시작된다. 여기까지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는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옷 조각’들은 또 다른 근처 공장으로 실려가 가봉 작업을 거친다. 3주 내에 코트 완제품에 다림질, 라벨 붙이기, 검수, 가격표 작업까지 추가된다. 그다음, 비닐 포장된 옷들은 스페인 북부에 있는 유통센터로 옮겨져 박스 포장까지 완료된다. 바르셀로나 공항을 출발한 옷 박스는 제품 기획 25일째가 되는 날 뉴욕 매장에 도착해 아침 10시 오픈에 맞춰 진열된다.

일찌감치 이런 ‘단기’ 생산 전략을 도입해 성공한 자라도 최근에는 이 시간을 더 단축할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스가이디드, 부후닷컴과 같은 온라인 전용 ‘울트라 쇼어링’ 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자라·H&M 등 기술력 향상에 박차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자라의 혁신 부서는 페이팔 자회사 ‘제트로어’와 협업해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재고 문제 개선에 집중한다. 로이터는 “(온라인 판매를 전용으로 하는) 경쟁사들이 갖고 있지 않은 매장을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위치 정보를 활용한 고객 분석과 초음파를 활용한 경로 분석, 가상 고객센터 서비스 등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펠리페 카로 UCLA 교수는 “의류 생산 과정을 단축하려면 현지 생산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성’도 최근 섬유패션업계가 염두에 두는 요소다. 기술 발전과 SPA 산업 확산으로 옷값이 떨어진 덕분에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구입하게 됐지만 그만큼 버려지는 옷도 많아졌다. 실제로 패스트컴퍼니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미국에서 버려진 의류가 700만~1400만t에 달한다. 경쟁 격화에 따른 재고는 기업의 몫이다. 지난해 H&M의 재고는 우리 돈으로 43조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최근 H&M은 지속 가능한 소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스마트 스티치(Smart Stitch)’라고 이름 붙은 특수한 실은 섭씨 130도 이상이 되면 저절로 녹아 지퍼와 단추가 분리된다. 남은 실은 재활용할 수 있다. ‘크롭퍼포터(Crop-A-Porter)’로 불리는 옷감은 농작물 폐기물로 만든다. 농부들이 파인애플이나 바나나 등을 수확하고 남은 폐기물이 그대로 섬유로 재활용돼 농부들의 새 수입원으로 변신할 수 있다.

‘포브스’는 “유행을 선도하는 기업을 제외한 다른 기업들은 막대한 재고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 데다, 대량 생산에 따른 소비 사이클에 갇혀 환경 비용도 증가한다”면서 “일정 수준 이상 품질의 의류나 재활용·재사용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숙제”라고 전했다.

4차 산업혁명에 발 빠르게 대응해 자동화를 완성한 기업도 있다. 아디다스와 아르마니, 리복 등에 제품을 공급하는 중국 최대 의류 제조 업체 티안유안(天原)은 작년 미국 아칸소주에 2000만달러를 투자해 ‘로봇이 옷을 만드는’ 공장을 만들었다. 조지아텍이 개발한 사람 대신 옷을 만드는 로봇인 ‘소봇(Sewbot)’ 330대를 도입했다. 의류 공정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노련한 기술자의 손길이 필요했던 재봉 단계를 로봇을 통해 완전 자동화시켰다.

이 공장의 로봇들은 22초마다 티셔츠를 한 장씩 생산한다. 연 생산량이 2300만 장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로봇으로 인건비를 ‘제로’로 줄인 덕에 ‘메이드인 USA(Made in USA)’ 티셔츠 원가가 장당 33센트에 불과하다. 의류 자동화 로봇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관세 추가 악재에 고전하는 세계의 패션섬유기업들에 새로운 돌파구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섬유패션기업들은 명품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거대한 자본력을 등에 업고 인수·합병(M&A)을 통해 먹성을 과시한다. 푸싱(复星)그룹은 올 초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명품 브랜드 ‘랑방’을 인수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여성복 브랜드 ‘산드로’ ‘마쥬’ 등을 만드는 프랑스의 패션 기업 SMCP도 2년 전 중국 최대 섬유 기업인 산둥루이에 인수됐다. 최근 산둥루이는 가죽 제품으로 유명한 스위스 명품 브랜드 ‘발리’도 인수했다.


plus point

오르테가, 야나이 다다시…섬유·패션 기업의 巨富들

송현 기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오르테가 자라 창업주와 그의 딸 마르타, 페르손 H&M 회장,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 사진 블룸버그, 조선일보DB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오르테가 자라 창업주와 그의 딸 마르타, 페르손 H&M 회장,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 사진 블룸버그, 조선일보DB

인디텍스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82)는 ‘포브스’ 선정 세계 갑부 순위 상위권에 항상 이름을 올린다. 10월 17일 기준 그의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은 633억달러(약 71조원)로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 2018’ 6위를 기록했다.

자라를 포함한 인디텍스 브랜드가 빠르게 성장하며 주식 가치가 크게 상승한 덕분에 2016년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지분율은 59%다. 그의 뒤를 이을 강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세 딸 중 막내인 마르타 오르테가(34)다. 현재 자라 여성복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스페인의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오르테가는 13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의류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7세엔 전 부인 로살리아와 목욕가운·속옷 등을 파는 옷가게를 시작했고, 이 사업 번창으로 39세가 되던 해 지금의 ‘자라’ 1호점을 열었다.

세계적인 거부로 자주 주목받는 인물이지만 사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언론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전형적인 ‘은둔형 CEO’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 국왕의 초청을 거절하는가 하면 2011년 경영권을 전문 CEO에게 물려주는 자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를 인터뷰한 기자가 단 3명에 불과하다는 점도 이런 성향을 잘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외신은 오르테가를 ‘가진 부(富)에 비해’ 소탈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평소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수퍼카 대신 아우디 ‘A8 세단’인 데다, 매일 같은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해결할 정도다. 전용기를 갖고 있지만 휴가를 거의 쓰지 않는 ‘워커홀릭’인 탓에 잘 이용하지 않는다. 2011년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매일 본사에 나타나 디자이너, 바이어들과 어울려 30분씩 자리를 지킨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야나이 다다시(69) 유니클로 회장도 있다. 순자산 195억달러(약 22조원)로 ‘포브스’ 부자 순위 55위다. 1972년 아버지에게 양복점을 물려받아 50년 가까이 옷에만 매달린 결과 거대한 패션 왕국의 주인이 됐다. 일본에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과 수년째 재계 순위 1~2위를 다툰다.

스테판 페르손(71) 헤네스앤드모리츠(H&M) 회장의 순자산은 168억달러(약 19조원)로 ‘포브스’ 세계 갑부 순위 73위다. 얼링 페르손의 아들로 회사를 물려받은 그는 회사를 창업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H&M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2년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을 당시 135개에 불과했던 매장이 그의 공격적인 확장책에 힘입어 현재 4841개(그룹 기준)까지 늘었다.

한국에도 의류업 거부들이 있다. 영원무역의 성기학(71) 회장, 한세예스24홀딩스 김동녕(73) 회장, 세아상역 김웅기(67) 회장 등이다. 다만 한국 의류 기업은 자체 브랜드보다 OEM(주문자생산방식)에 집중했던 탓에 글로벌 의류 기업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오르테가 같은 세계적 거부는 없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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