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프레드 베도른(Manfred Wehdorn) 빈공대 건축학과 교수 미술사 보존연구소장
만프레드 베도른(Manfred Wehdorn)
빈공대 건축학과 교수 미술사 보존연구소장

10월 10일 오스트리아 빈시(市) 도심에 있는 베도른건축사무소에서 ‘가소메터 시티’에 대한 첫 아이디어를 낸 건축가 만프레드 베도른 소장을 만났다. 베도른 소장은 1969년 빈공대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73년 건축사무소를 열었다. 빈공대 건축학과 교수로 30여 년간 재임한 뒤 2012년 퇴임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전문가로 꼽힌다. 빈의 성·궁전뿐 아니라 주거시설·빌라 등의 다양한 재생 작업을 도맡아왔다. 현재는 터키 이스탄불의 파트너와 손잡고 터키 흑해 연안 시놉 지역의 교도소를 재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며 회의실로 들어온 그는 성큼성큼 걸어들어와 손을 내밀었다. 베도른 소장은 간단한 인사를 마치자마자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가 ‘가소메터 시티’에 대한 프레젠테이션(PT)을 시작했다. 1899년 처음 만들어진 가스저장소가 어떻게 100년도 더 지난 21세기에 주상복합시설로 재탄생해 빈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었는지를 드라마틱하게 설명했다. 가소메터 시티 프로젝트가 중간에 무산될 뻔했다는 얘기를 할 땐 심각했고,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채택됐을 당시를 설명할 땐 아이 같은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베도른 소장은 “가소메터 시티는 빈의 주거난을 해결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했다는 점에서 내가 진행했던 수많은 도시재생 프로젝트 중 가장 의미 있고 성공적인 사례”라며 “한국도 건물·공간이 가진 의미와 역사성에 스토리를 부여하고 창의적인 건축적 시도를 한다면 충분히 도시재생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 때 들었던 ‘가소메터 시티 프로젝트가 무산될 뻔했던 이야기’로 질문을 시작했다.


어떻게 무산될 뻔했나.
“빈 시 당국이 가스저장소를 보존하기로 한 후 막상 논의를 시작했는데, 재생 방안을 찾는 작업이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당시엔 산업유산을 박물관이나 전시장 같은 문화시설로 재생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4만㎡ 면적에 드넓게 펼쳐진 가스저장소를 한 가지 기능의 문화시설로만 활용하기가 아쉬웠다. 장기적인 쓰임새를 찾지 못한다면 보존하기로 결정한 시 관계자들이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시 당국은 가스저장소가 재생될 것이라고 보고 빈의 지하철 3호선 ‘가소메터역’까지 개통하기로 한 상태였다. 획기적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때 어떤 아이디어를 냈나.
“빈 시 당국은 건축가, 주민, 문화재 담당자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을 모아놓고 가능성을 검토했다. 나는 가스저장소가 가동을 멈춘 1984년부터 이곳에 어떤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면 좋을지 고민해 왔었다. 모두가 아이디어에 목말라 있을 때, 내가 ‘가스저장소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주거를 중심으로 한 주상복합시설로 만들자’는 마스터 플랜을 냈다. 시 당국이 타당성을 검토한 끝에 받아들였다. 마스터플랜을 기반으로 국제현상설계 공모가 열렸고, 나를 포함한 4명의 건축가가 가스저장소 각 동의 설계를 맡았다.”

당시 그 아이디어가 어떤 평가를 받았나.
“시 관계자나 시민들도 처음엔 ‘그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가스저장소의 활용방안뿐 아니라 설계의 건축적 방법론까지 연구해왔었다. 빈 역시 유럽의 다른 수도와 마찬가지로 주거공간 부족이 심각하다. 때문에 가스저장소를 주거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환영을 받았다. 거기에 나를 포함한 전문가 그룹의 연구가 뒷받침되면서 가소메터 시티로 현실화된 것이다.”

가소메터 시티가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
“가소메터 시티가 운영되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비행기에서 누가 날 툭툭 치더니 ‘만프레드 베도른 교수님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맞다’고 대답했더니 그가 자신을 소개하며 ‘나는 가소메터 시티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인데, 이곳에 사는 게 정말 행복하다’며 ‘이런 곳을 지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가소메터 시티를 설계할 때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이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의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가소메터 시티 주거공간의 월세는 주변보다 저렴하게 책정됐다. 아파트 임대가 시작됐을 때 세입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 지역의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가소메터 시티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건물 저층에 위치한 상가에 입점하는 업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 당국이 정책을 통해 상가 입점을 지원하고 가소메터 시티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해 수요가 생기자 상가가 차츰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언론 비너차이퉁(Wiener Zeitung)에 따르면 2015년 가소메터 시티 상가 전체 매출은 3260만유로(약 423억원)에 달했고, 이듬해에는 8% 증가했다. 현재 1만3000명이 매일 가소메터 시티 앞을 지난다. 가소메터 시티가 하나의 작은 도시 역할을 하자 인근에 아파트와 상가, 문화시설이 줄지어 들어섰다. 빈시 산하의 시영(市營)아파트관리기관(Wiener Wohnen) 본사도 가소메터 시티 맞은편으로 이전했다. 저소득층과 노동자들의 도시였던 짐머링 지역이 가소메터 시티를 통해 완전히 탈바꿈한 셈이다.

한국의 도시재생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역사와 스토리를 좋아한다. 장소가 지닌 의미와 역사성이 없는 어떤 공간에 멋들어진 건물이 들어선다고 사람이 몰릴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독특한 사연이 담겨 있는 공간에 흥미를 느낀다. 우리는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는 가스저장소를 보존하면서 그 안에 담긴 이야기까지도 후대에 전해지길 바랐다. 한국의 건축가라면 한국의 곳곳에 담긴 역사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를 고민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창의적인 시도를 하라. 그러면 의도치 않아도 그 건물이나 공간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웃음).”


plus point

[Interview] 베르너 아우어 본펀드 도시재생 총괄
“빈 도시재생은 기존 거주민 삶의 질 높이는 데 집중”

빈의 도시재생 관련 예산은 ‘본펀드’에서 나온다. 본펀드는 1984년 설립된 빈 최대의 주택기금이다. 빈 연방주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주거시설 관련 도시재생 사업 등 주택 부문의 국가 위탁 업무를 수행한다. 연간 집행하는 기금액은 5억3300만유로(약 6900억원)에 달한다.

본펀드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베르너 아우어 총괄은 “빈 인구는 지난해에만 2만7000명이 늘었다”며 “빈 인구 증가로 발생한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주거 공간을 늘리고 기존 거주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월세 부담 없이 살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의 도시재생 사업은 일자리 창출과 같은 경제적 효과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빈의 방향성은 조금 달랐다.

아우어 총괄은 “빈을 비롯한 오스트리아의 여러 도시들은 경제적 효과를 위해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기보다는 기존 거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그는 “자칫 경제적 효과에 집중하다 보면 본래 도시재생의 가치를 잃을 수 있다”며 “도시재생의 핵심은 기존 거주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범위에서 도시환경·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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