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펜시티 항구 전경. 사진 우측에 과거 커피 창고를 리모델링·증축한 복합공연시설 엘프필하모니가 보인다.
하펜시티 항구 전경. 사진 우측에 과거 커피 창고를 리모델링·증축한 복합공연시설 엘프필하모니가 보인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북서쪽으로 300㎞ 떨어진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 시청사에서 2㎞ 거리의 구항만 지역에서는 유럽 최대 도심 재개발 사업인 ‘하펜시티 프로젝트’가 17년째 계속되고 있다.

부두와 창고가 있던 낡은 항구인 하펜시티(Hafencity)를 주거·문화·상업 등이 어우러지는 최첨단 복합도시로 탈바꿈시키는 157만㎡ 규모 대형 프로젝트다. 2025~2030년 하펜시티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함부르크 도심은 지금보다 40% 이상 커진다.

2001년 첫 삽을 뜬 하펜시티 프로젝트는 7000가구를 위한 거주지와 상업시설, 문화공간, 교육시설이 들어서는 것이 골자다. 지금까지 57개 사업이 완료됐고, 53개는 계획 수립 중이다. 완료 시점 기준 민간자본 85억유로와 공공자본 24억유로, 총 109억유로(14조원)가 투입될 예정이다.

개발 17년째에 접어든 하펜시티의 모습은 크게 변했다. 사람들이 ‘떠나는 항구’에서 ‘모이는 항구’로 변하고 있다. 현재 3275명의 시민이 거주하고 회사 730여 곳이 둥지를 틀었다. 완성되면 1만4000명이 거주하고 4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개발이 진행될수록 하펜시티가 속한 함부르크를 방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함부르크 방문객의 숙박일 증가율(2007년 대비)은 86%로, 같은 기간의 수도 베를린(80%)을 넘어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하펜시티가 함부르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했다.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도심재생 사례로 통하는 하펜시티 개발의 특징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1│지름길 버리고 택한 ‘아주 느린’ 재생

하펜시티 개발은 현재진행형이다. 최장 2030년에야 완료된다. 1980년대 초반 전문가와 시민이 모여 방향을 본격 논의한 것부터 따지면, 50년간에 걸친 초장기 프로젝트다. 대규모 자본을 유치해 규제를 풀어 초고층 상업시설과 아파트를 짓고 조기에 개발을 끝내는 ‘한국식’ 개발 상식과 아주 다르다.

하펜시티는 사실 항구도시로서 최적의 지리 조건을 갖췄다. 북해와 가까이 있으면서 엘베강 하구를 끼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이다. 이런 영향으로 과거부터 유럽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최대 교역항으로 이름이 높았고, 지금도 동유럽으로 향하는 물건들을 내리고 싣는 관문으로 통한다. 짧은 시간안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항구로 개발됐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는 게 도시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하지만 하펜시티 프로젝트 책임자들은 지름길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장소를 만든다’는 신념을 따랐다. 이를 위해 철저한 조사 과정을 거쳤다. 건축 프로젝트에 앞서 으레 진행되는 예비 조사가 아니라 항만이 가진 ‘역사성’과 ‘지역성’을 살리기 위한 고민에 빠졌다. 관계자들이 오랜 연구와 논의 끝에 내놓은 최종 계획은 ‘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개조해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방치된 보일러실을 홍보센터로, 창고를 ‘국제해양박물관’과 ‘과학센터’로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하펜시티의 상징이 됐다.


2│기존 건물 위에 새 건물을 얹는 시도

하펜시티를 둘러싼 엘베강변으로 가면 웅장한 콘서트홀 ‘엘프필하모니(ElbPhilharmonie)’가 위용을 드러낸다. 거대한 건물의 상층부는 물결치는 파도 실루엣을 본땄고, 주변은 모두 유리로 둘러싸여있다. 멀리서 보면 왕관 모양이 연상된다.

13년 동안 8억4900만유로(약 1조1100억원)를 쏟아부어 지난해 1월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됐다. 도시 경관을 바꿔놓으며 랜드마크로 부상한 이 건물은 ‘엘피’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도시재생을 할 때는 기존의 건물 겉모습은 최대한 유지하면서 내부를 새로 꾸미는 경우가 많다. 앞서 완공된 국제해양박물관과 정보센터가 그렇다. 하지만 엘프필하모니는 새로운 시도를 더했다. 버려진 커피 창고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유지한 채 새로운 건물을 ‘얹은’ 파격적인 실험을 한 것이다.

수조원의 천문학적인 돈과 엄청난 기간이 투입된 프로젝트였던 만큼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 비용이 당초 예산의 10배를 초과했고, 완공도 계획보다 7년이나 늦어졌다. 이는 각종 분쟁과 소송으로 이어졌다. 프로젝트에 돌입한 후 몇 년이 되지 않아 책임 지고 있던 부동산 개발업자가 사임했고, 2011년에는 의회의 조사 요구에 따라 건설이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엘프필하모니를 만든 것은 함부르크시와 시민, 관련자들의 책임감과 지지였다. 함부르크 시민들은 7700만유로(당초 예산)짜리 ‘이상적인’ 건축 프로젝트에 찬성표를 던졌다. 함부르크시는 책임자 사퇴 이후 이 프로젝트를 그대로 인수했다. 개인 기부가들도 시가 투입한 비용 7억8900만유로에 6000만유로를 더 얹어줬다.


plus point

스웨덴 말뫼의 부활

말뫼 서부해안에 중정형 구조로 배치돼 있는 주거단지. 건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수자원도 제공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낸다.
말뫼 서부해안에 중정형 구조로 배치돼 있는 주거단지. 건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수자원도 제공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낸다.

2002년 9월 스웨덴 말뫼의 랜드마크였던 138m 높이의 코쿰스(Kockums) 조선소 크레인이 한국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렸다. 스웨덴에서는 이를 두고 ‘말뫼의 눈물’이라고 했다. 조선 산업의 쇠퇴를 상징하는 옛 코쿰소 조선소 부지는 점점 오염돼 쓰레기 매립지로 황폐해졌다.

그랬던 조선소 부지가 지금은 신재생에너지, 정보기술(IT), 바이오 같은 첨단산업의 기지로 부활했다. 새로운 일자리만 6만여 개 넘게 생겼다. 1990년대 20만 명에 그쳤던 인구는 올해 34만 명으로 늘었다. 말뫼는 경제협력기구(OECD) 기준 혁신 도시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2016년 기준).

‘말뫼의 부활’은 지역에서 생산된 신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한다는 점에서 더 주목받는다. 옥상에 설치된 태양열 판은 열 공급을 위한 에너지를 생성하고, 해상풍력과 조력발전시설이 전기를 공급하는 식이다. 이곳을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주택들 앞으로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통 한옥과 같은 ‘ㄷ’ 자 형태의 중정형 구조로 건물과 자연이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주거단지를 만들었다. 그 앞으로는 도시 중앙을 관통하는 커다란 수로가 지난다. 바다와 운하에서 끌어들인 물을 정화해 주거지로 물을 공급한다.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잘 조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폐조선소 자리였던 이곳 부지에는 현재 2000여 명의 거주자가 살고 있다. 또 매년 1000명 이상의 전문가 그룹이 ‘지속 가능한 도시’ 콘셉트를 배우기 위해 말뫼를 찾는다. 이곳의 성공은 인근 지구의 재개발로 연결돼 지역사회 전체의 주거, 상업, 교육, 서비스, 공원, 복지시설 개선으로 이어졌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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