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후 영국 런던정경대 지리학과 도시연구 선임연구원, 건축가, JHK 도시건축정책연구소장
김정후
영국 런던정경대 지리학과 도시연구 선임연구원, 건축가, JHK 도시건축정책연구소장

유럽의 도시재생은 느리다. 소규모 주택단지 재생사업의 대상지역을 선정할 때도 조사기간만 3~4년을 할애한다. 도시재생 사업에 앞서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정책이 도시재생 사업을 안내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침반이 정확할수록 오류와 시행착오로 인한 손실이 줄어드는 것은 자명하다. 또 수많은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도출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그 과정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정후 한양대 도시대학원 특임교수는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해당사자들의 이해와 참여가 높아진다면 해당 도시재생 사업은 성공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며 “유럽뿐 아니라 한국 역시 당연히 그렇게 도시재생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 건축가로 활동했던 김 교수는 2003년 영국으로 유학 간 이후 런던정경대에서 ‘도시재생’에 대한 연구로 도시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도시정책을 강의하던 김 교수는 2012년 4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초청을 받고 서울에 와 서울시의 도시정책에 대해 자문했다. 그는 이후에도 전국 주요 지방자치단체와 연구기관에서 도시·건축과 관련해 250여 차례 강연했다.

대중과의 소통이 도시와 건축의 수준을 높인다고 믿는 김 교수는 2013년 펴낸 책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를 통해 오스트리아 빈의 도시재생 성공사례인 ‘가소메터 시티’를 비롯해 독일 항구의 도시재생 사례인 ‘하펜시티’ 등을 한국 독자에게 알렸다. 그는 책에서 “효과적인 도시재생을 위해 버려진 산업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런던에 JHK 도시건축정책연구소를 설립해 영국·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 등 유럽의 도시 전문가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도시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런던에 있는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도시재생에 산업유산을 재활용해야 하는 이유는.
“도시재생은 지역의 쇠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그 대상은 도시 가운데에서도 주로 산업화를 이룬 도시다. 산업화를 성취한 도시들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이미 많은 건물과 시설을 지었는데 쇠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존 건물·시설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기능을 다한 산업유산에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해 우리 시대에 필요한 용도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야말로, 21세기가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해법이다.”

유럽이 다른 지역보다 산업유산 재활용을 앞서 실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도시를 대하는 관점이다. 도시는 각기 다른 시대에 건립된 다양한 건물의 총합이다. 앞 시대 건물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는 역사를 대하는 자세의 문제다. 과거 건물을 단순히 낡고 오래된 흉물로 간주할 것인가, 아니면 기억과 흔적이 담긴 역사이자 자산으로 볼 것인가다. 유럽에는 공장·창고처럼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건물일지라도 충분히 보존하고 계승할 만한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이러한 접근은 도시를 ‘진화’의 대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무리 최첨단 기술과 재료를 사용한 건물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진부한 것이 되기 쉽다. 그렇더라도 해당 건물은 여전히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도시를 진화의 대상으로 파악한다면, 기존 건물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 기능을 부여해 재활용하려는, 지혜로운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성공적인 도시재생이란 무엇인가.
“‘보존’과 ‘개발’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도시재생에서 보존과 개발을 양극단에 놓고, ‘이제는 개발의 시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흔히 본다. 이것은 잘못된 논리다. 쇠퇴한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보존도 필요하고 개발도 필요하다. ‘어떤 정책과 판단기준을 만들어 보존과 개발의 조화를 추구할 수 있는가’가 도시의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가 도시재생 성공사례로 언급한 도시들이 정책과 방법론을 수립하는 데만 짧게는 4~5년, 길게는 10년 이상 매진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성공의 핵심이 보존과 개발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정책과 방법론에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에서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친환경적인 도시재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이 배울 점은 무엇인가.
“산업유산 재활용에 대한 가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는 이유가 바로 ‘친환경성’ 때문이다. 산업용으로 만들어진 건물과 시설은 적게는 수백 평에서, 넓게는 수십만 평의 부지를 차지한다. 이러한 산업유산을 철거하지 않고, 최소한의 변형을 통해 재활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높은 수준의 친환경을 실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단지 형태로 구축된 대규모 산업시설은 문을 닫고 가동을 멈춘 순간부터 주변 일대가 광범위하게 오염되기 쉽다. 따라서 규모가 큰 산업유산의 재활용은 친환경적인 측면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독일의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이 좋은 예다. 20세기 동안 뒤스부르크는 티센 제철소를 중심으로 한 제철산업을 통해 독일 경제발전에 크게 공헌했지만, 동시에 환경을 엄청나게 파괴했다. 그러나 시당국이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을 시작으로 일관된 친환경 정책을 시행했고, 이후 뒤스부르크는 유럽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친환경 도시로 부상했다.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도시의 부정적 이미지, 나아가 사회·경제적 체질까지 바꿀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한국에도 산업유산, 개발이 필요한 도시가 많다. 유럽 도시재생 사례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한국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에 많은 산업단지, 항만, 공장이 건립됐다. 유럽 등 선진국 사례를 미루어 볼 때, 조만간 전국에 산재한 산업용 건물과 시설이 (경제단계의 변화, 설비 노후화 등으로 인해) 단계적으로 기능을 못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제조업 관련 산업유산을 창조산업, 문화·예술산업, 첨단산업 등을 위해 재활용하는 정책과 방법론 개발에 나서야 한다. 그러면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산업유산을 재활용한 도시재생에서 유럽을 능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도시재생 사업의 추진과정 측면에서 한국과 유럽을 비교한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정책’이 다르다. 유럽은 도시재생 정책을 세우는 데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이는 반면, 한국은 너무 빨리 정책이 나오고, 너무 빨리 시행된다. 정책은 사업을 시행하는 가이드라인이다.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를 위한 안내서란 뜻이다. 가이드라인이 더 정교할수록,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는 주체들을 더 정확하게 안내할 수 있다. 영국 중앙정부나 런던시가 수립한 도시재생 관련 정책은 분야별로 수백에서 수천 페이지 분량이며, 시의성에 맞게 몇 년 단위로 계속 수정·보완된다. 정교한 정책을 바탕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시행하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수준 높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

이번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이 성공하려면.
“도시재생 사업에서 정량적 기준을 정한 것부터가 이미 절반의 실패를 안고 출발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앞으로 5년간 도시재생 사업을 하겠다고 지정한 곳이 500곳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필요한 지역이 50곳인지, 500곳인지, 5000곳인지 전혀 연구된 바가 없다. 따라서 정부가 정한 500곳에 대한 판단 기준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 한국의 도시재생 사업이 성공하려면 도시재생 사업이 필요한 쇠퇴지역을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 지역적 안배는 절대 안 된다. 재생을 희망하는 지역끼리의 완전 경쟁을 통해 대상지를 선정해야 한다. 또 민간기업의 참여 기회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기획·평가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단기적 성과는 얻을 수 있지만,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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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유산 인간의 생계 활동에서 생겨난 유·무형의 자산. 발전소, 조선소, 제철소부터 병원, 도서관까지 포함된다. 산업과 연관된 건물·시설을 ‘문화재’ 개념으로 보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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