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도시’로 불렸던 디트로이트가 도시재생 사업으로 부활하고 있다. 일리치 그룹이 6억2800만 달러를 투자한 아이스하키·농구경기장인 ‘리틀시저스아레나’의 공사 현장. 아레나는 지난해 10월 공사를 마친 후 개장했다. 사진 블룸버그
‘유령도시’로 불렸던 디트로이트가 도시재생 사업으로 부활하고 있다. 일리치 그룹이 6억2800만 달러를 투자한 아이스하키·농구경기장인 ‘리틀시저스아레나’의 공사 현장. 아레나는 지난해 10월 공사를 마친 후 개장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미시간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테크센터 앞. 검은색 반바지를 입은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핫도그를 파는 푸드트럭으로 왁자지껄 몰려간다. 눈부신 햇살 아래 검은색 민소매 티셔츠에 선글라스를 낀 여성은 금발인 딸 아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관광객 십여 명을 태운 초록색 지붕의 시티투어버스가 건널목을 건넌다.

버스 소음이 사라지니 힙합 음악과 함께 드릴로 바닥을 뚫는 둔탁한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린다. 시선을 돌리니 2량짜리 지상철이 지상 5m 눈높이에 지나간다. 콘크리트 빔 뒤로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거대한 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노란색 안전가림막과 회색 철골 사이로 주황색 덤프트럭 두 대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 유튜버가 올해 9월 디트로이트 우드워드 애비뉴를 다니며 자전거 캠으로 찍은 동영상이다.

2013년 18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부채를 갚지 못해 파산한 디트로이트가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되살아나고 있다. 화면 속 공사 현장은 현지 부동산 개발 기업인 ‘베드록(Bedrock)’이 우드워드 애비뉴에 높이 243m의 랜드마크 빌딩을 짓는 ‘허드슨 사이트’ 부지다. 베드록은 1998년 허드슨 백화점 철거 이후 지하 주차장으로 방치됐던 이곳을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들여 2020년까지 고급 백화점과 아파트, 호텔 등 복합시설로 개발한다.

디트로이트는 현재 신도시 건설 현장을 방불케 한다. 웨인주립대학 등 대학가가 몰려있는 미드타운에는 학생을 위한 소형 임대주택 건설이 한창이다. 디트로이트 다운타운 서쪽 105년 된 미시간중앙역은 포드자동차가 전기·자율주행 연구센터로 재개발할 계획이고, 1970년대를 풍미한 모타운(Motown) 레코드사를 기리기 위해 1985년 개장한 모타운 역사 박물관은 5000만달러(약 569억원)를 들여 확장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연면적 6만㎡(약 2만6000평)의 아이스하키·농구 경기장 ‘리틀 시저스 아레나’가 공사를 마치고 개장했고, 지상철 Q라인도 운행을 시작했다.

디트로이트를 되살린 도시재생 사업은 현지 부동산 모기지 전문회사 퀴큰론즈(Quicken loans)와 글로벌 투자사 JP모건 등 민간 금융사가 주도했다. JP모건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1억5000만달러(약 1600억원)를 투입했다. 퀴큰론즈는 2011년 설립한 부동산개발 업체인 베드록을 통해 부동산에만 56억달러(약 6000억원)를 쏟아부었다. 디트로이트 출신인 댄 길버트 퀴큰론즈 창업자 겸 회장은 지난 2010년 본사를 아예 디트로이트 시청 부근으로 옮겼다.

자율주행차 등 미래 자동차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기술 기업도 돌아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디트로이트에서 차로 1시간 이상 떨어진 사우스필드에 있던 테크센터를 디트로이트 중심부에 있는 원캠퍼스 건물로 이전했다. 구글은 도심에 대규모의 신규 사무실을 구하고 있다. 미래기술 관련뿐 아니라 전통적인 자동차 생산·부품 부문도 활력이 돌아오고 있다. ‘포천’ 선정 500대 기업이자 자동차 부품회사인 아디엔트(Adient)는 디트로이트 마르케빌딩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포드는 디트로이트 외곽 공장에 220명의 직원을 충원했다.


도시재생으로 스타트업 유인하는 시카고

디트로이트와 함께 쇠락한 공업도시 취급을 받았던 시카고도 ‘도시재생’을 통해 살아나고 있다. 시카고에서 현재 진행되는 대표적인 도시 개발 사업으로는 ‘프로젝트 78(The 78)’이 꼽힌다. 미 중서부 최대 부동산개발회사인 미드웨스트가 올해 5월 발표한 ‘프로젝트 78’은 시카고 도심과 차이나타운 사이에 방치됐던 시카고 수변 유휴지 25만㎡(약 7만 5899평)를 고층 빌딩과 고급 주택가로 탈바꿈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도시재생이라고 해서 서울 뉴타운처럼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예상하면 오산이다. 전체 부지의 18%에 해당하는 4만 4500㎡(약 1만3400평)는 공원과 박물관 등 공공시설로 계획됐고, 부지를 가로지르는 루스벨트가에 시카고 지하철 레드라인 연장선이 들어선다. 이곳에 투입되는 자금만 총 50억달러(약 5조7000억원)에 이른다.

시카고 시정부는 도시재생을 통해 유망 기술(Tech) 기업을 끌어들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프로젝트 78’ 부지는 아마존 제2 본사의 유력 후보지로 꼽히는 곳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아마존 제2 본사를 유치하기 위한 대도시 간 경쟁이 치열하다. 시카고 언론은 시정부가 대규모 개발사업을 미리 공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업계는 아마존 본사 유치가 불발되더라도 프로젝트78이 완공되면 최소 1만 개 이상의 고급기술 관련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10년 사이에 시카고에는 핀테크, 소프트웨어, 물류, 헬스케어 서비스 등 B2B 부문에 특화된 스타트업들이 대거 둥지를 틀었다. 2010년 시카고에서 창업한 보험 업무 관련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스냅시트(Snapsheet)는 2018년 현재 전체 직원 500명, 미 전역 37개 주에 지사를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비행기 무선 통신 연결 기술 스타트업인 ‘고고(Gogo)’는 2015년 텍사스에서 시카고로 본사를 이전했다. 대형 IT 기업들도 시카고에 저변을 넓히고 있다. 18년 전 직원 3명의 작은 영업소로 시작했던 구글 시카고 지사는 현재 직원 1000명의 대규모 부서로 확대됐다. 구글 외에도 페이스북, 링크드인, 우버, 옐프, 마이크로소프트 등 많은 기술 기업들이 시카고에 지사를 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람 이마뉴엘 시카고 시장이 주도한 적극적인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 한몫했다. 이마뉴엘 시장은 2014년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유치를 목적으로 하는 기술 기업 대상 홍보 조직 ‘시카고 넥스트’를 만들었으며,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교육을 강화하는 등 스타트업 육성과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plus point

미국식 도시재생 핵심은 민간 투자 지원 정책

람 이마뉴엘 시카고 시장이 맥도날드 시카고 본사 오프닝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람 이마뉴엘 시카고 시장이 맥도날드 시카고 본사 오프닝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식 도시재생 사업은 유럽보다 추진력이 강하다. 우선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 중심이기 때문에 사업추진의 동기부여가 확실하다. 주·시정부는 기업이 적정한 수익을 내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물밑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수익과 사회적 배분의 황금비율을 찾는 것은 물론 정부 몫이다.

미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심 유휴지 개발의 경제적 효과가 주목을 받았다. 이 때문에 주·시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민간 지원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미국은 부동산 개발에 대한 환경 규제가 까다롭지 않고, 민간 요구에 따라 관련 규제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기 때문에 지역별 맞춤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런 방식의 도심재생이 추진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다.

공장 폐수에 따른 환경 오염 등으로 못 쓰게 된 토지의 가치를 살리려는 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에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각 분야 전문가로 이뤄진 개발팀을 구성해 이런 시도를 돕는다. 미 연방정책보험공사(FDIC)와 같은 공공 금융기관 전문가와 유휴지의 환경문제를 개선할 정책 담당자, 민간의 부동산 중개인, 개발업자가 한 팀을 짤 수 있도록 정부가 ‘코디네이션’을 하는 것이다. 용적률·건폐율과 같은 도심 밀도 규제를 부지별로 구분하기 때문에, 개발사업으로 주변 땅값이 오르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김명지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