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찾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244번지 일대. 노후 주택이 골목을 따라 줄지어 있다. 사진 이윤정 기자
10월 25일 찾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244번지 일대. 노후 주택이 골목을 따라 줄지어 있다. 사진 이윤정 기자

10월 25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244번지 일대. 성인 여성이 두 팔을 양쪽으로 쫙 벌리면 길목 전체를 거뜬히 막아설 수 있을 만큼 좁은 비탈길이 거미줄처럼 온 동네에 퍼져 있었다. 골목을 따라 2~3층 높이의 저층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모두 지어진 지 수십 년은 돼 보였다. 이제는 서울 도심에서 찾아보기 힘든, 도둑 방지용 쇠꼬챙이가 녹슨 몸으로 담벼락을 힘겹게 붙잡고 있었다. 244번지 근처에 위치한 A부동산 관계자는 “이 길에 있는 집들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라며 “근처 상도초등학교 앞쪽엔 도시가스가 안 들어올 정도로 쓰러지기 직전인 집들이 널렸다”고 말했다.

이곳은 서울시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지난해 10월 ‘서울형 자율주택정비사업’ 대상지로 선정한 곳이다. 도서관, 어린이집 등 편의시설을 아파트단지 수준으로 도보 10분 거리에 조성하고, 주택도 새로 짓기로 했다. 그러나 새로 공급되는 주택은 단 40가구. 사업 대상지가 상도동 244번지가 위치한 상도4동(75만㎡)의 0.002%인 1351㎡(약 408평) 규모에 불과한 탓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은 사업 효과에 반신반의하는 모양새다. 상도동에서 약 10년간 거주했다는 주민 김모씨는 “헌 집을 계속 두는 것보단 낫기야 하겠지만, 40가구 정도로 과연 동네 전체가 좋아질지는 잘 모르겠다”며 “(보상을 받게 될) 땅 주인들이 제일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50조원을 들여 전국 500곳에서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상도동처럼 서울시 등 일부 대도시 주도로 추진되던 도시재생 사업을 전국 단위로 확산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관련 기관은 전담 인력을 400명 가까이 배치하는 등 사업 확장 대비에 나섰고, 연간 1500억원 수준에 그쳤던 관련 예산도 매년 10조원 규모로 크게 늘렸다. 그러나 한국 도시재생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예산 나눠 먹기’ 또는 ‘일회성 마을 정비’ 등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1│주민 참여 부족

전문가들이 한국 도시재생의 향방을 우려하는 원인 중 첫 번째는 해당 사업지에 거주하는 주민과 사업 시행 기관 간 소통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상도동 사례처럼 마을을 재정비하는 소규모 도시재생일수록 기존 주민의 니즈에 맞춰 사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리적 시설의 개선과 공급이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겠지만, 기존 주거지의 구조와 지역 정체성이 파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의 생활 기반도 개선되지 않아 결국 외지인에게 자리를 내주는 ‘둥지 내몰림’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도시재생 사업에서 ‘주민 참여’는 형식상 단계가 돼 버린 지 오래다. 상도동 사례만 봐도 그렇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대부분은 “우리 동네에서 그런 사업이 진행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 주민 공청회, 간담회 등을 실시하고 있긴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참여하기 어려운 낮 시간대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데다 홍보가 부족해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왕건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시재생 선진국을 보면, 저녁에 직장에서 돌아온 뒤 주민들이 커뮤니티센터 등에서 만나 활발하게 도시재생 사업에 대해 토론한다”며 “반면 한국은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교육이 돼 있지 않고, 참여 문화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현장의 모습엔 차이가 있다”며 “주민 참여형 도시재생 사업이 시행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지방 집중, 시혜성 사업으로 변질

도시재생 사업을 ‘효율성’이 아닌 ‘복지성’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비용 대비 개발 효과가 가장 큰 서울을 도시재생 사업에서 대부분 제외하고, 부동산 시장이 ‘붕괴’에 가까울 정도로 무너지고 있는 지방만 주로 선정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8월 31일 정부는 전국 99곳을 ‘2018년 도시재생 뉴딜 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이 중에서 서울은 부동산 수요가 적고 사업 규모가 작아 집값 급등을 부추길 가능성이 낮은 7곳(중랑구 묵2동·서대문구 천연동·강북구 수유1동·은평구 불광2동·관악구 난곡동·동대문구 제기동·금천구 독산1동)이 선정됐다. 이들 지역에서 실시되는 사업은 CCTV·무인택배함 등 생활밀착형 소규모 편의시설이 설치되거나, 저층 단독주택 지역의 도로와 주택 등을 정비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부동산 과열 조짐 현상이 보이면 중단된다.

반면 강원도 태백시의 경우 올해 대상지 99곳 중 3곳에 불과한 ‘경제 기반형(도시재생 사업 유형 중 가장 대규모로 이뤄지는 사업 유형)’ 사업 가운데 한 곳을 따냈다. 정부는 이곳에 총 2273억원을 투입해 폐광 시설을 광산테마파크 등으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1997년부터 2016년까지 19년간 강원도 폐광지에 투자된 개발 사업비가 총 2조7049억원에 달했는데, 같은 기간 폐광지 인구는 18만 명에서 14만 명으로 줄었다. 한국 도시재생 사업이 ‘시혜성’ 사업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3│민간 자본 참여 저조

정부가 도시재생 사업 대상지를 선정할 때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다 보니 민간 자본 참여율도 저조한 상황이다. 올해 선정된 전국 99곳 대상지 중 민간에서 신청·제안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각 지역 도시공사 등 공공기관이 신청한 15곳을 제외하면 각 지자체가 사업 신청부터 완공까지 전 과정을 주관하고 있다. 투입되는 사업비 역시 마찬가지다. 총 7조9111억원의 사업비 중 민간에서 투자하는 돈은 1조8773억원으로 전체 사업비의 23.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국토부와 지자체 등 공공 분야가 부담한다.

노용관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한국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공공복리 증진을 위한 정부의 무수익 시혜성 사업 성격을 띠고 있어 민간이 사업 주체가 되기 곤란한 구조”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환경 개량을 위한 단순 시공에는 참여할 수 있겠지만, 사업 주체로서 투자하는 것은 수익 회수가 불가능해 추진이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왕건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도시재생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민간 기업이 많지만, 아직 수익성 등이 담보되지 않아 일단 관망하는 상태”라며 “정부는 도시재생 사업의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들어와 수익성 제고를 위해 협상할 수 있도록 여지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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