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신 서울대 경제학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이사,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부행장,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 현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
정유신
서울대 경제학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이사,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부행장,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 현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

금융위원회 산하 한국핀테크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는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학장의 이력은 특이하다. 1985년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에서 기업금융(IB)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이후 그는 신한금융투자 부사장,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증권 대표,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부행장을 역임했다.

2011년에는 중소·벤처기업 투자 촉진을 위해 모태펀드 운용 등을 담당하는 한국벤처투자 대표를 맡기도 했다. 기존 금융권을 두루 경험한 그는 2015년 4월부터 한국핀테크지원센터장을 맡아 ‘핀테크(FinTech·금융과 정보기술의 융합)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금융 혁신의 시대, 정부·금융기관·핀테크 업체 등 다양한 주체의 상황을 이해하고 해법을 모색할 인물로 그가 적임자였다.

10월 29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실에서 만난 정 센터장은 “금융과 정보기술의 융합은 피할 수 없는 트렌드이고 금융기관도 변화하고 있다”면서 “금융기관은 정보기술을 활용해 선진 금융 시스템을 동남아시아에 적극적으로 수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간 은행이 프라이빗뱅커(PB)에 일임하던 자산관리 등 비금융 서비스도 정보기술을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직접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15년 4월부터 한국핀테크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때와 비교하면 금융 부문이 얼마나 변화했나.

“3년 반 정도가 흘렀는데, 그사이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4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금융 개혁을 들면서 금융과 정보기술을 융합한 ‘핀테크’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 심지어 정부 내부 관계자 사이에서도 ‘1년만 지나면 없어질 이야기’라고 했었다. 이명박 정부가 신성장 동력으로 추진해 반짝 떴다가 사라진 ‘녹색 금융(당시 이 대통령이 내세웠던 저탄소 녹색 성장 관련 사업에 자금을 대는 금융 서비스)’의 전철을 밟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1~2년이 지나도 핀테크 기업은 사라지지 않았다. 금융과 정보기술의 결합은 피할 수 없는 미래 트렌드라는 점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요즘은 가장 보수적이라 불리는 은행원들도 그만두고 나와 핀테크 사업을 같이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올해 6월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핀테크 데모데이’에서 한국의 우수 핀테크 기업들이 중국 기관, 기업들과의 네트워크 및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사업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핀테크지원센터
올해 6월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핀테크 데모데이’에서 한국의 우수 핀테크 기업들이 중국 기관, 기업들과의 네트워크 및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사업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핀테크지원센터

글로벌 금융 시장의 현황은 어떤가.
“국내 핀테크 업체들의 투자 유치 설명회를 해외에서 13~14차례 진행했다. 그러면서 금융 시스템이 크게 낙후된 개발도상국,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금융 혁신에 대한 니즈가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우리처럼 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고 고금리 사채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통해 대출, 송금 등 금융 서비스를 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중국은 스마트폰을 통해 낙후된 금융 환경을 급격히 반전시킨 매우 훌륭한 사례다. 금융 혁신 서비스 성장 속도로만 보면 이미 미국을 앞섰다. 미국은 신용카드에 기반해 ‘현금 없는 사회’를 이미 구현한 상황이어서 핀테크로 급격히 발전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신용카드를 뛰어넘어 곧바로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채택해 핀테크로 전환이 빨랐다.”

한국의 비바리퍼블리카가 간편송금 앱 ‘토스’로 늦게나마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회사)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미국에서 핀테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8년이 흘렀다. 미국은 금융 부문 유니콘만 200개쯤 된다. 한국에서 이제 막 유니콘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차세대 페이팔(미국에서 만들어진 간편결제 시스템의 원조)’로 불리는 토스는 페이팔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아 투자받는 등 일찌감치 미국 실리콘밸리 투자자들과 연결됐다. 이처럼 금융이 글로벌로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바로 매출이 나지 않더라도 기술 가능성을 인정받아 투자받을 수 있고, 이 자금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할 수 있다.”

한국 핀테크 시장이 더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기존 금융권의 시스템이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기술 시대 이전에 구축해 놓은 금융권 시스템이 훌륭하다고 해봐야 소용없다. 관건은 새로운 기술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다양한 기술이 쏟아지고 있다. 모든 것을 통째로 바꾸는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의사 결정을 조율해야 하고, 국회를 거치는 법 개정도 거쳐야 한다. 정부와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일이다. 또 금융기관이 상당한 돈을 투입해 구축한 전산 시스템이 기술 변화의 상황에서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이미 투입한 고정 비용 때문에 시스템에 다시 투자하거나 제도를 바꾸는 데 저항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들이 자충수에 빠졌다고 보는가.
“금융 혁신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은 기존 금융권도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은행이 많이 변했다. 최근에 은행장들이 핀테크를 배우겠다고 열심히 해외 출장을 나가고 있다. 또 금융 시스템의 수출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예전만 해도 금융은 내수라고 생각했지, 수출할 수 있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한국의 선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많은 만큼 한국 금융이 살길은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지난해 10월부터 디지털 대출 플랫폼인 ‘마커스(Marcus)’를 출시해 온라인 대출 서비스 업체인 ‘렌딩클럽’과 경쟁하고 있다. 환경이 변화했을 때 사고를 유연하게 바꿔 기회를 찾은 사례다.”

구체적으로 지금 가장 필요한 금융 혁신은 무엇인가.
“금융기관이라고 해서 본업인 금융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기술 회사와 제휴하든 자회사를 세우든 다양한 방법을 고려해서 한꺼번에 소비자 니즈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전에 금융사들은 자산 관리 등 본업 외의 것들은 PB에 일임했다. AI 등 정보기술을 활용하면 금융사들도 얼마든지 이런 서비스를 본업과 함께 제공할 수 있다. 새로운 사업 모델을 발굴하거나 기존 시장을 더 확장해볼 수도 있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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