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센터에서 열린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 2018’ 현장. 왼쪽부터 저스틴 데니슨 삼성전자 미국법인 상무,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 접히는 디스플레이 ‘인피니티 플렉스 디스플레이. 사진 삼성전자
11월 7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센터에서 열린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 2018’ 현장. 왼쪽부터 저스틴 데니슨 삼성전자 미국법인 상무,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 접히는 디스플레이 ‘인피니티 플렉스 디스플레이. 사진 삼성전자

“폴더블(foldable·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 실물이 궁금하셨을 겁니다. 더 궁금해하지 마십시오. 바로 여기 있습니다.”

11월 7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 2018(Samsung Developer Conference 2018)’ 행사장. 저스틴 데니슨(Justin Denison) 삼성전자 미국법인 상무가 감색 양복 안주머니에서 검은색 전자기기를 꺼내 치켜들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길쭉한 모양의 디스플레이가 드러났다. 전 세계 개발자·취재진 등 5000명의 관중이 숨을 죽였다. 데니슨 상무는 “디스플레이 기술의 미래”라며 디스플레이를 펼쳤다. 성인 남성 손바닥 크기만한 화면이 나타났다. 접었다 펼친 자리에 이음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장내에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삼성전자의 ‘폴더블 스마트폰’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날 삼성전자는 화면을 접었다 펼 수 있는 ‘인피니티 플렉스 디스플레이(Infinity Flex Display)’를 최초 공개했다. 현장은 행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폴더블 폰 실물이 공개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삼성전자가 내년인 갤럭시 스마트폰 10주년에 앞서, 늦어도 올해 안에 폴더블 폰을 공개하겠다고 공표해왔기 때문이다. 개막식 바로 전날 자사 페이스북 계정에 접힌 삼성 로고 이미지를 올린 것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하지만 오전 10시 고동진 삼성전자 IM 부문장(사장)의 기조연설에서 관련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객석의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은 후반부 무렵이 돼서야 데니슨 상무가 무대에 올랐다.

공개된 ‘인피니티 플렉스 디스플레이’ 실물은 책처럼 화면을 안으로 접는 ‘인폴딩(In-folding)’ 방식을 채택했다. 스마트폰을 완전히 펼쳤을 때 7.3인치 크기이고, 접었을 때는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4.6인치)의 크기였다. 큰 디스플레이에서는 인터넷 브라우징, 멀티미디어, 메시지 등 3개의 애플리케이션이 동시에 구현됐다.

데니슨 상무는 “플렉스 디스플레이를 만들기 위해 수십만 번 접었다 펼쳐도 견디는 신소재 접착제를 개발했다”며 “얇은 두께를 유지하기 위해 AMOLED(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두께를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외신 반응은 긍정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몇 년 동안 출시된 스마트폰 디자인 중 가장 흥미롭다”며 “드디어 뭔가 새로운 것이 등장할 때가 됐다”고 평가했다.

‘플렉스 디스플레이’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해낸 것은 사실이지만, 완성도는 아직이다. 펼쳤을 때 전체 넓이는 기대보다 작았고, 접었을 두께는 예상보다 두꺼웠다. 본체의 금형 마무리도 거칠고 엉성했다. 데니슨 상무는 “오늘 공개한 실물은 완성형이 아니다”라며 “시판 제품은 지금처럼 둔탁하지 않은,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폰 세계 1위 기업답지 않은 급하고 설익은 것처럼 보이는 신제품 공개 현장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무리하게 서두를 만한 이유가 있었다. 10월 31일 중국 디스플레이 스타트업 ‘로욜(Royole)’이 공식 출시한 폴더블 폰 ‘플렉시파이’에 세계 최초 타이틀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앞서 애플이 10월 30일(현지시각)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신제품 행사장에서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맥북을 공개하며 시장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하드웨어 교체 주기가 길어지면서 역성장에 직면해 있다. 세계 1위인 삼성전자의 올해 스마트폰 연간 출하량은 2013년 이후 처음으로 3억 대를 못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의 올해 연간 출하량은 지난해(2억1580만 대)와 비교해 소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무리수에는 정체된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을 깨울 ‘혁신 기술’ ‘혁신 상품’을 빨리 내놔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프리미엄 전략으로 성장 정체 돌파

성장 정체는 스마트폰 시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TV와 함께 냉장고, 세탁기 등 전통 대형가전 부문도 성장이 정체돼 있다. 미국의 통계정보 포털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전 세계 대형가전 시장 규모는 2014년 194억달러를 기록한 이후 2년 연속 줄어들었다. 세계 가전 시장은 2016년 171억달러까지 축소됐다. 유럽 최대 가전·정보통신(IT) 박람회인 IFA에서는 2018년 상반기 글로벌 가전 시장 규모가 3740억유로(약 486조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 정도 성장하는 데 그쳤다고 집계했다.

자동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자동차 시장 성장률이 둔화되며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정체기를 맞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성장률은 2010년 32.4%를 기록한 이후 2011년 2.5%로 급감했고 지난해에도 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 등 한국의 대기업들은 성장 정체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프리미엄 정책’에 눈을 돌렸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고가 브랜드를 출시해 제품 단가를 크게 높이는 방식으로 영업이익률을 올리려는 것이다. 특히 전자 업계에서는 일반적인 고가 제품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는 초프리미엄 정책까지 들고 나왔다.

LG전자가 한때 2~3%에 머물던 영업이익률을 4% 수준까지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생활가전(H&A 부문)과 TV(HE 부문)에서 고가 전략을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초고가 전략도 최근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3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률은 전년 동기 대비 하락했기 때문이다. 더 제대로 된 프리미엄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최근 LG전자가 출시한 초고가 제품에 대한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LG전자는 지난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18’에서 초프리미엄 빌트인 가전인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선보였다.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제품 기능에는 획기적인 개선이 없으면서 가격만 높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크온(문을 두드리면 내부가 보이도록 한 기능)’을 적용한 와인셀러에 대해선 “수요자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에서 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임모씨는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셀러를 고르는 기준은 온도·습도·자외선·진동, 네 가지 요소”라며 “문을 두드리면 안이 보인다거나 하는 기능은 와인셀러에 필요없는 기능”이라고 평가했다. 임씨는 자신의 매장에서 프랑스 명품 와인셀러인 ‘유로까브(EUROCAVE)’를 사용한다.

초고가 전략은 소비자에게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LG전자가 최근 출시한 초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오브제’의 TV(65인치)는 1000만원에 육박한다. LG전자 ThinQ의 같은 크기 TV(슈퍼울트라HD) 가격은 235만원이다. 가격 결정의 최고 권위자인 헤르만 지몬 지몬-쿠허&파트너스 회장은 “(LG전자 같은) 대기업이 초고가 시장을 겨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몬 회장은 “최고의 제품을 내놓고 평가를 받고 싶은 생산자의 욕망도 이해하지만 (소비자가 용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가격을 인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산층은 가치와 가격을 놓고 저울질한다”며 “이들을 끌어들이려면 비용과 가치·가격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가격보다 제품 가치 높이는 게 더 중요

전자제품 뿐만 아니라 자동차 분야에서도 프리미엄 전략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08년 출시된 후 10년 동안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64만 대가 팔린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는 최근 극심한 판매 부진에 빠졌다. 지난 10월 미국 판매량은 372대에 불과했다. 특히 해외 시장에서 제네시스 브랜드 파워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2015년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 이후 해외 판매 비율은 절반으로 줄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제네시스가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요인으로 꼽았다. 메리앤 켈러 메리앤켈러 앤드 어소시에이츠 대표는 “현대차는 판매 실적을 높이는 데만 급급했고, 프리미엄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어떤 노력도 없었다”며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하더라도 독일 고급 자동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IHS마킷의 컨설턴트를 역임한 크리스티안 양 재미 자동차 컨설턴트는 “제네시스는 독자적인 판매망과 AS망을 갖추고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네시스는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서울 강남에 단 한 곳의 전용 전시장을 두고 있다.

제네시스는 오는 27일 출시하는 G90으로 판매 반등을 노리고 있다. G90은 제네시스 대표 플래그십 대형 세단인 EQ900의 부분 변경 모델이다. 현대차의 전사적인 역량을 총결집해 만든 G90이 벤츠나 BMW의 고객을 빼앗아올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소비자 시장의 트렌드와 한국 대기업의 시장 위치를 감안하면 ‘프리미엄 전략’은 필수다. 일반 브랜드 시장은 중국 등 후발주자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면서 한국 업체들은 날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한때 중국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여겨지던 한국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은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프리미엄 브랜드로 평가받기 위해선 전략의 혁신이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가치와 가격의 균형이다. 프리미엄 전략이라는 미명하에 시장에서 평가하는 가치보다 비싼 가격의 제품을 내놨다가 시장의 외면을 받는 것은 한순간이다. 더욱이 글로벌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급진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제품의 가격과 질을 검색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세계화로 전 세계의 시장이 소비자에게 개방되고 있다. 디지털화로 전통 영역에 새로운 도전자들이 진입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단순 가격 인상을 통한 성장의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프리미엄 전략은 한국 기업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이를 통해 계속 성장하고 이익을 내려면 지금이라도 개별 기업이 프리미엄 전략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고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애플의 프리미엄 전략
일상을 문화로 만들어 밀레니얼 세대 공략

미국 뉴욕 브룩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에서 10월 30일(현지시각) 열린 애플 신제품 전시회에 참석한 팀쿡. 사진 애플
미국 뉴욕 브룩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에서 10월 30일(현지시각) 열린 애플 신제품 전시회에 참석한 팀쿡. 사진 애플

10월 3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BAM)의 오페라 하우스 애플 신제품 전시회. 컴컴한 어둠 속에서 1930년대 뉴욕 최고 뮤지컬 배우 콜 포터의 노래 ‘나는 뉴욕을 좋아하게 됐다(I happen to like New York)’가 흘러나왔다. 진한 재즈 선율과 함께 눈앞이 갑자기 밝아졌다. 어스름한 새벽 풍경으로 시작한 화면은 맨해튼 자연사박물관, 브루클린 브릿지, 크라이슬러 빌딩,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 등 뉴욕의 명소를 빠른 템포로 비췄다.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은 피부색도 다르고, 연령대도 달랐다. 유명인도 있고, 유명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워치, 맥북을 쓰며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영상이 끝나자 백발의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두 손을 모으며 무대로 나왔다. 팀 쿡의 등장과 함께 무대 화면에는 ‘애플 ♥ NY’이라는 문구가 떴고, 관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날 가장 긴 시간의 환호성을 이끌어낸 사람은 팀 쿡이 아니었다. 30초 이상 박수를 받은 사람은 앞으로 100% 재생 알루미늄을 써서 맥북을 만든다고 발표한 하드웨어 엔지니어부문 부사장인 로라 리그로스(Laura Legros)였다.

이날 애플의 행사는 모든 면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감성을 자극했다.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하고자 하는 프리미엄 가치는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유명세, 선함, 고품질, 전통성, 경험. 베인앤컴퍼니의 디 아르페지오 파트너는 “밀레니얼 세대는 태어나자마자 디지털을 접한 첫 세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하다”며 “이 때문에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고, 전통적 가치, 경험에 무게를 둔다. 또 가능하면 도덕적으로 선한 것을 선호하고, 또 양질의 상품을 찾는 것이 습관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애플 행사는 다섯 가지 요건이 모두 맞아떨어졌다. 뉴욕은 미국 밀레니얼 세대가 여행하고 싶어 하는 도시 1위다. 그리고 BAM은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으로 전 세계 무용인이 서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다. 이날 애플은 일반 노트북과 비교하면 비싸지만, 고해상도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노트북으로는 가장 저렴한 가격(1199달러)으로 맥북을 소개했다. 여기에 재생 가능한 알루미늄으로 만든 맥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 밖에 애플스토어의 무료강좌세션(Today at Apple)을 통해 밀레니얼 세대가 소구하는 경험을 강조했다.

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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