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영동대로에 있는 제네시스 전용 전시관 ‘제네시스 강남’. 사진 현대자동차
서울 강남 영동대로에 있는 제네시스 전용 전시관 ‘제네시스 강남’. 사진 현대자동차

11월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에서 휘문고사거리 방향으로 5분쯤 올라가자 짙은 회색의 2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건물 외벽 위쪽에 제네시스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전용 전시관 ‘제네시스 강남’이다. 휘문고사거리에서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 방향 500m 정도의 영동대로 양쪽엔 포르쉐, BMW,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캐딜락 등 고급 수입차 브랜드 전시장들이 줄지어 있다. ‘수입차 거리’로 불리는 이곳에 현대차가 제네시스 전용 전시관을 오픈한 것은 다른 고급 수입차 브랜드와 한판 승부를 펼쳐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500㎡(약 150평) 규모의 전시장 1층에는 G70, G80, EQ900 등이 전시돼 있었다. 조명은 은은했고, 전시장 내부 인테리어는 단순했다. 전시된 차량 사이로 네모난 박스 형태의 공간이 보였다. ‘큐브’라는 공간으로 고객들은 제네시스 차량의 외장 색상과 내장 가죽 실물을 조합하거나 시뮬레이션 화면을 통해 골라볼 수 있다. 고객이 구매를 원할 경우 전문 큐레이터가 1 대 1로 전담해 상담해준다. 지난 1월 제네시스 강남이 문을 연 후 11월 4일까지 방문한 고객은 1만4000여 명에 달한다. 일평균 47명이 이곳을 찾았다.

제네시스가 올해 탄생 10년을 맞았다. 제네시스는 2008년 1월 현대차 대표 세단 그랜저를 뛰어넘는 단일 럭셔리 모델로 태어났다. 현대차가 제네시스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한 건 이보다 4년 앞선 2004년부터였다. 세계 시장에서 벤츠, BMW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차를 만들겠다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굳은 의지가 도화선이 됐다. 디자인, 동력 계통, 편의사양 등 제네시스 모든 부문에 현대차의 기술력이 집약됐다. 개발에 투입된 비용만 5000억원에 달했다.

출시 첫해 제네시스는 국내 2만7370대, 해외 1만6490대 등 총 4만3860대가 판매됐다. 2015년에는 제네시스를 고급차 브랜드로 분리해 차종을 늘리고 수요층을 확대했다.

제네시스는 1세대 출시 후 올 9월 말까지 10여 년간 총 63만8722대가 팔렸다. 국내 37만8416대, 해외 26만306대다. 해외 판매가 41%다. 그러나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 뒤인 최근 3년의 경우 해외 비율은 20%대에 그친다. 특히 지난달에는 미국에서 372대가 팔리는 등 부진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고급 브랜드로 안착했다는 평가보다는 아직은 ‘안방 대장’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네시스가 이처럼 ‘내수용’으로 남는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프리미엄 차’로 인정받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제네시스는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품질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판매량 확대를 위한 마케팅과 브랜딩 전략은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 일색이다.

전문가들은 기술보다는 ‘브랜드 경험’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항공기 이코노미클래스 좌석을 고급 가죽으로 만든다고 일등석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IHS 마킷의 컨설턴트를 지낸 크리스티안 양 재미 자동차 컨설턴트는 “프리미엄 브랜드 소비자들은 비싼 값을 치르는 만큼 그 이상의 자기 만족감을 얻으려고 한다”며 “제네시스도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제네시스만의 독자적인 판매망과 AS망을 갖추는 게 필수다. 현재 제네시스만을 전시, 판매하는 독자적인 공간은 제네시스 강남 한 곳뿐이다. 브랜드가 분리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제네시스는 여전히 현대차 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티안 양 컨설턴트는 “미국에서 제네시스는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 옆에 전시돼 있고, 일반 차량을 판매하는 영업사원이 제네시스도 판다”고 전했다. 그는 “이들 영업사원은 프리미엄 고객을 상담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프리미엄 고객은 이런 경험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에 맞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친환경 차량을 추가하는 등 모델을 다양화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제네시스가 프리미엄 브랜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3년 안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판매도 중요하지만 차별화한 전략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것이 제네시스뿐 아니라 그룹 전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렉서스는 어떻게 프리미엄이 됐나

‘제네시스 강남’에서 영동대로를 따라 학여울역 방향으로 걸어가면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렉서스 전시장이 있다. 렉서스 전시장 중에선 국내 최대다. 전시장 한쪽엔 책장으로 꾸며진 거실 같은 공간도 있었다. 최근 출시된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차량인 ES300h를 보고 싶다고 하자 컨설턴트 한 명이 다가왔다. 세련된 정장 차림의 컨설턴트는 조용한 목소리로 모델별 차량의 특징을 설명하더니 운전석에 앉아 보라고 했다. 그는 운전석 옆에서 허리를 굽힌 채 내부의 각종 장치를 자세히 설명하며 작동해보길 권했다. 전시 공간 옆 상담석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카탈로그를 펼쳐 보이며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또 다른 고객 2명이 반대편에서 상담받고 있었다.

“수입차는 AS가 불편하지 않냐”고 했더니 컨설턴트는 전시장 2층의 서비스센터로 안내했다. 정비사들이 차량 3대를 리프트에 올려 수리하고 있었다. 바닥은 기름 한 방울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렉서스는 도요타가 고급차 시장 진출을 위해 1983년부터 준비한 브랜드다. 당시 도요타는 실무진 20명에게 1년간의 유급휴가를 주며 미국 상류사회와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이 경험한 상류층 경험과 생활이 고급 세단 개발에 녹아들었다. 도요타는 싸구려 차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렇게 새로운 브랜드인 렉서스를 내놨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도요타가 렉서스 LS400 개발에 쏟아부은 돈은 10억달러에 달했다. 투입된 엔지니어는 1400명, 테스트 주행거리만도 270만마일에 이른다. LS400은 1989년 출시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벤츠, BMW 등 경쟁 차종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성능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렉서스만의 안락함과 정숙성은 미국 소비자들이 독일 고급 세단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가격은 더 저렴했다.

크리스티안 양 컨설턴트는 “제네시스는 기술적으로는 렉서스에 근접했지만 아직 열정이나 문화 등 총체적인 프리미엄 경험을 제공하는 세심함은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plus point

유럽에서 성공해야 중국에서도 통한다

제네시스가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하려면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성공해야 한다. 중국은 여러 불확실성이 많긴 하지만 엄청난 규모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고급차만 한 해에 200만 대 넘게 팔린다. 그런데 국내에서 생산해 중국으로 판매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관세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을 공략하려면 현지 생산이 필수다. 벤츠, BMW 등도 합자회사 방식으로 이미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현대차도 제네시스의 중국 현지 생산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계 글로벌 부품사인 에디언트에서 부사장을 역임한 리처드 정 한국자동차디자인협회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브랜드면 중국에서도 통한다”며 “특히 유럽에서 아우디, 벤츠, BMW와 동등하게 비교될 만한 성능과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중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네시스가 벤츠나 BMW 흉내내기 정도에 그친다면 중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공하기 어렵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현대·기아차가 5년 내에 중국 차에 따라 잡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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