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2016년 고가 제품군 ‘시그니처’ 라인을 처음 내놓고 프리미엄 가전 전쟁에 나섰다. 사진 LG전자
LG전자는 2016년 고가 제품군 ‘시그니처’ 라인을 처음 내놓고 프리미엄 가전 전쟁에 나섰다. 사진 LG전자

“뱅앤올룹슨 수석 디자이너가 호수에 비친 ‘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시그니처라인 세탁기예요. 이걸 사시면 저쪽에 보이는 트롬 스타일러를 드립니다.”

11월 6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있는 LG전자 매장에서 만난 판매 담당자는 379만원짜리 세탁기를 사면 150만원짜리 의류관리기 스타일러를 ‘얹어’준다고 했다. 제품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고가 라인인 ‘시그니처’ 제품을 229만원에 사는 셈이라고 유혹했다. 기본형 세탁기와 차이점을 묻자 “성능은 비슷하지만 디자인과 AS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냉장고 한 대에 1000만원을 훌쩍 넘기고 세탁기 한 대가 400만원에 가까운 프리미엄 가전이 국내 시장에 속속 출시되고 있다. 고소득층 소비자를 노린 프리미엄 마케팅이지만, ‘혁신 없이 디자인만 고급스럽게 개선해 가격만 올리는 것 아니냐’ ‘전반적 가격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올해 출시한 냉장고 중 가장 고가 라인은 ‘셰프컬렉션 빌트인 냉장고’로 1829만원, LG전자가 내놓은 ‘LG시그니처 프리미엄 올레드 TV’는 1800만원이다. LG전자에서 가격대가 높은 프리미엄 라인인 ‘시그니처’ 이름표가 붙은 가전군 중 냉장고는 850만원, 세탁기는 390만원이다.

가전 브랜드들은 수익성을 올리고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고가 전략을 쓰고 있다. 특히 LG전자에는 이 전략이 주효했다. 2~3%대에 머물던 LG전자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4.0%까지 상승한 것에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 부문과 TV로 대표되는 HE 부문의 선전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2년 전 출시된 시그니처 라인의 성공 영향이 컸다.

그런데 최근 H&A 부문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분기 H&A 부문 매출은 사상 최대(분기 기준)를 기록하며 호실적을 냈지만, 영업이익률이 둔화했다. 8.4%로 지난해 3분기(8.6%)보다 다소 떨어졌다. 현재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C 부문은 14분기 연속 영업 손실을 내고 있고, 전장 사업을 하는 VC 부문도 적자 행진을 이어 가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로 일부 소비자들은 높은 가격에 걸맞은 제품 기능의 획기적인 개선이 없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능과 기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데 디자인과 고급 브랜드 이미지만 앞세운다는 것이다.


6일 또 다른 강남의 LG 베스트샵 대리점에서 만난 워킹맘 양혜선씨는 최근 생애 첫 집에 들일 냉장고를 고르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든 것은 용량 870L짜리 최신형 냉장고 ‘노크 온 매직스페이스’였다. 냉장고의 양쪽을 가르는 칸을 없앤 상냉장·하냉동 방식에다, 냉장고를 두 번 노크하면 냉장고 문이 투명하게 변해 안을 보여주는 기능과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는 기능이 추가됐다. 가격은 422만원이었다.

고심하던 양씨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냉장고는 양문형 기본 제품이었다. 용량이 752L로 적고 우냉장·좌냉동 방식으로 고정되긴 했지만, 가격 차이가 200만원이나 났다. 양씨는 “내부 전체가 스테인레스로 마감되고 디자인도 좋지만, 냉장 본연 기능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해 기본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지난 4년간 미국에 살다가 최근 한국으로 돌아온 주부 김모씨는 한국에서 새로 구입한 의류 건조기의 건조 시간이 2시간을 훌쩍 넘겨 놀랐다고 했다. 미국에서 쓰던 건조기는 보통 1시간 안에 건조를 마쳤다. 김씨는 “물론 옷감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는 좋지만, 한국산 가전 제품의 기능이 복잡하고 가격도 비싸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실제로 LG전자의 가전 제품 가격은 물가 상승분을 감안해도 높아지고 있다. 2010년 출시된 ‘디오스 매직스페이스 냉장고(752L)’가 230만~270만원대였는데 2014년 나온 ‘디오스 더블매직스페이스 냉장고(870L)’는 405만~425만원이었다. 2009년 170만원으로 출시된 ‘6모션 트롬 드럼세탁기(13kg)’는 각종 기능 추가를 거쳤고, 2015년에는 ‘트럼 트윈워시(드럼 17kg·미니워시 3.5kg 결합)’로 진화하며 가격이 230만~280만원에 책정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일 LG전자는 가전에 가구를 결합한 초프리미엄 라인 ‘오브제’를 출시했다. 수납장과 사운드바를 추가한 LED TV로 대당 999만원짜리 초고가 라인이다. 6일 만난 한 강남 지역 판매 사원은 “출시 초기인 것을 감안해도 반응이 미미한 편”이라며 “한두 대 정도 팔린 것이 전부”라고 했다.


plus point

‘가성비 오히려 좋다’…전통의 강자 밀레

독일 브랜드 밀레는 세계 시장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잘 써서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사진 밀레
독일 브랜드 밀레는 세계 시장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잘 써서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사진 밀레

독일산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밀레의 지난 회계연도(2018년 6월 결산) 매출은 41억유로(약 5조원)를 기록했다. 독일 현지를 포함한 글로벌 매출은 5~6%씩 증가하고 있는데, 여기엔 매년 두 자릿수씩 성장하고 있는 한국 등 아시아의 프리미엄 가전 수요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

이 시장을 잡기 위해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고가 라인 출시를 비롯해 두 회사는 최근 그동안 밀레와 지멘스가 양분하던 초고가 빌트인 가전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LG전자는 지난해 8월 논현동 가구거리에 빌트인 가전제품 쇼룸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열었고, 삼성전자는 연말을 목표로 대치동에 전시관을 만들고 있다.

밀레는 국내 브랜드의 경쟁 제품보다 가격대가 다소 높은 편이다. 가장 저렴한 기본형 세탁기(10kg)의 백화점 판매가가 258만원으로 LG전자 트롬 세탁기 기본형(21kg·159만2000원)보다 100만원 정도 비싸다. 건조기 가격대(10kg·318만원)도 LG전자 제품(14kg·205만원)보다 높다.

그런데도 밀레가 우리나라 주부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은 것은 내구성과 기술력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혔기 때문이다. ‘엄마가 써보고 딸에게 혼수로 사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세계 최초로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만든 회사인 만큼 기술력도 100년 넘게 축적됐다. ‘20년 사용해도 처음 샀을 때와 같은 성능을 낸다’는 생산 목표에 맞춰, 해당 모델이 단종돼도 모터 같은 주요 부품을 20년 이상 보관한다.

최근에는 국내 가전 브랜드들의 프리미엄 정책이 오히려 밀레 제품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4일 오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만난 밀레 매장 매니저는 “국산 가전 브랜드들의 고가격 정책 덕분에 고객들로부터 밀레의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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