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오전에 방문한 서울 신사동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 방문객이 없어 한산하다.
11월 6일 오전에 방문한 서울 신사동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 방문객이 없어 한산하다.

11월 6일 오전 서울 신사동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는 한산했다. 중고가 제품부터 하나에 65만원인 초고가 제품까지 설화수 주력 제품이 가지런히 진열된 매장에는 둘러보는 손님이 한 명도 없고 직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은 아모레퍼시픽이 2016년 국내외 고객에게 럭셔리 브랜드(프리미엄보다 더 고급인 단계) ‘설화수’의 철학을 알리고 설화수 고급 제품을 이용한 메이크업, 스파 등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2년이 흘렀지만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외국인 방문객은 중국, 동남아 고객 비중이 높고 한국 화장품의 불모지라 불리는 미국·유럽 고객은 낮은 편이다. 워낙 고가 제품이 많은 탓에 방문이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다. 이곳을 방문한 중국인 진루(金璐·30)는 “아무리 좋은 원료를 썼다지만 하나에 30만~60만원 하는 크림을 사기엔 부담스럽다”며 “차라리 비슷한 성분의 다른 브랜드 제품을 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느낀 위기감은 최근 발표된 3분기 실적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올 3분기 매출은 1조4626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1%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324억원으로 36%나 감소했다. 국내외 화장품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 화장품이 기대만큼 팔리지 않은 데다 해외 사업 확대를 위한 투자 비용이 늘면서 수익성이 나빠졌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실적 발표 이후 첫 공식 석상인 11월 월례회의에서 임직원에게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새롭게 변화하라”면서 ‘혁신’이라는 단어를 13번이나 언급했다. 최근 진행한 조직개편도 아모레퍼시픽의 위기의식을 잘 보여준다. 아모레는 방문판매와 백화점, 아리따움, 디지털 채널을 합치고 멀티 브랜드숍 채널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부서와 뷰티 영업 유닛을 만들었다. 또 아세안·호주 시장 등 해외 진출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실적 부진의 원인과 재도약을 위한 전략을 알아봤다.


1│브랜드마다 차별화된 가치 제공 못 해

중국 바링허우(1980년대생)·주링허우(1990년대생)를 중심으로 한국 화장품 이탈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등 아모레퍼시픽의 중저가 브랜드가 한류 붐을 타고 중국 시장에서 큰 수익을 올렸지만 지속적인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의 고가 브랜드인 설화수는 중국 시장에서 백화점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너무 비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프리미엄을 표방하고 있는 브랜드가 진정한 프리미엄의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며 “고가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프리미엄의 가치를 줄 수 있을 때, 저가부터 고가 브랜드 간 차별화 포인트를 명확하게 강조한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2│벽 높은 美·유럽…현지화 번번이 실패

중국·동남아 이외의 시장을 개척하지 못한 점도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아모레 해외사업 매출의 90% 이상이 중국·동남아시장에서 나온다. 아모레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유럽 시장을 두드려 왔지만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인식 부재, 현지화 노하우 부족으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아모레가 1988년 프랑스로 수출한 저자극성 화장품 브랜드 ‘순(SOON)’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현지 여성의 화장 습관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판매가 부진했고 50억원의 손실을 낸 채 7년 만에 철수했다. 서 교수는 “브랜드 순 실패 때 가졌던 각오로 현지화 역량을 키운다면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26년간 정상 지킨 로레알 그 힘은 ‘끊임없는 변화’

클릭 한 번으로 머리카락 색깔이 금발로 바뀌고, 눈가에 진한 아이라인이 그려졌다. 증강현실(AR)과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가상 메이크업, 색상·피부 진단 서비스를 개발한 캐나다 기업 ‘모디페이스(ModiFace)’ 이야기다. 로레알은 지난 3월 디지털 가속화 전략의 일환으로 모디페이스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모디페이스는 얼굴의 움직임과 색상을 감지하는 독자 기술 등 30건 이상의 특허와 200여 편의 논문을 쓴 70여 명의 연구원, 과학자,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다. 로레알은 모디페이스의 기술을 로레알그룹 산하의 34개 화장품 브랜드에 접목해 화장품 사업과의 시너지를 낼 계획이다.

로레알의 모디페이스 인수는 디지털 혁신 전략의 일환이다. 로레알은 2010년 ‘디지털의 해’를 선언하고 4년간 디지털 전문가 1600명을 채용해 디지털 역량을 키웠다. 지난해 로레알그룹의 매출은 260억유로(약 34조원)로, 글로벌 화장품 시장 1위다. 로레알은 지난 26년간 글로벌 화장품 시장의 정상을 지켜온 비결로 ‘끊임없는 변화’를 꼽는다.

로레알은 현재 20억 명인 고객을 2020년까지 10억 명 더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아·태 지역, 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및 중동에서 필요한 화장품 브랜드뿐 아니라 기술력이 뛰어난 IT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할 예정이다.

plus point

‘럭셔리하면서 합리적 가격’ LG생건 프리미엄 전략 통했다

국내 화장품 1·2위 업체인 LG생활건강(LG생건)과 아모레퍼시픽(아모레)의 3분기 성적표가 크게 엇갈렸다. 아모레는 영업이익이 36%나 감소하는 ‘어닝 쇼크’ 실적을 받아든 반면, LG생건은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성장의 일등공신은 력셔리 화장품 브랜드 후, 숨, 오휘 등이다. LG생건의 3분기 매출 1조7372억원, 영업이익 2775억원 중 화장품 사업 매출은 9542억원, 영업이익은 1840억원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각각 23.5%, 30.6%씩 증가한 것이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 ‘후’가 중국 시장에서 각광받으면서 국내 단일 화장품 브랜드로는 최초로 매출이 2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후는 사드 사태로 많은 한국 브랜드가 고전 중인 중국 시장에서 어떻게 승승장구했을까.

전문가들은 LG생건의 일관된 브랜딩 전략과 합리적인 가격 정책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2006년부터 중국 화장품 시장 진출을 엿본 LG생건은 대표 브랜드 후의 모델로 중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배우 이영애를 내세워 ‘빅 모델 마케팅’을 펼쳤다. 한류를 대표하는 ‘궁중 한방’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고 중국 대도시 최고급 백화점을 중심으로 입점했다. 여기에 고급 화장품이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는 인식이 더해지면서 중국 시장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40% 올랐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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