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민 고려대 생명공학과,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과, 화장품 수출 전문위원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손성민
고려대 생명공학과,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과, 화장품 수출 전문위원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2014년은 미국이 일본을 제치고 한국의 3대 화장품 수출국이 된 해였다. 2003년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주력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이 미국 뉴욕의 최고급 백화점인 ‘버그도프굿맨’에 입점한 이래 11년 만에 처음으로 이익(매출 349억원)을 낸 해이기도 했다. 당시 주요 언론과 화장품 업계는 “이제 케이뷰티(K-뷰티)가 아시아를 넘어 미국에도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며 환호했다.

2018년,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성적표는 어떨까. 10월 말 발표된 아모레퍼시픽의 3분기 실적을 보면 해외 사업 매출은 447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62억원으로 42%나 감소했다.

과거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된 중국 시장 의존도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모레퍼시픽의 3분기 해외 사업 매출의 94%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나왔다. 미국과 유럽이 차지하는 비율은 6% 미만으로 여전히 미미하다. 게다가 화장품 업계가 장밋빛 시장이라 생각했던 중국 시장도 더 이상 만만하지 않다. 악화 일로의 아모레퍼시픽엔 지금 돌파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화장품 1위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재도약하기 위해선 기존 (프리미엄) 전략의 전폭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손성민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주임연구원은 “2009년 한류(韓流) 붐과 함께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치솟았지만 이제는 거품이 빠진 상태”라며 “한류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제품이 주는 가치와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손 연구원은 “프랑스·일본 화장품 업체가 강세인 미국·유럽 시장은 ‘냄비 근성’이 아닌 ‘뚝배기 근성’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냄비처럼 확 끓어올라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닌 오래 끓여 깊은 맛을 내는 뚝배기처럼 오랜 기간 브랜드 정체성을 정립하고 꾸준한 마케팅을 펼쳐 시장에 브랜드를 각인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손 연구원은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에서 글로벌 화장품 시장 동향과 국내 화장품 업체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시장 진출 전략을 자문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11월 1일 ‘글로벌 화장품 시장 동향’을 주제로 강의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을 찾은 그를 만나 아모레퍼시픽의 생존 전략을 물었다.


아모레퍼시픽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해외 사업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소비자층과 시장환경이 변하고 있어서다. 바링허우(1980년대생)·주링허우(1990년대생)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뻔한 제품을 싫어하고 싫증을 잘 느낀다. 한류 붐으로 한국 화장품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 세대들의 한국 제품에 대한 호감도가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해 저가의 중국 현지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고가·중고가이면서 상대적으로 고연령대의 중산층 이상을 겨냥한 설화수, 헤라 등은 어느 정도 매출을 내고 있지만,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중저가의 이니스프리나 에뛰드하우스는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동남아 이외의 시장을 개척하지 못한 것도 한계점이다. 글로벌 1위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은 프랑스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북미 시장 매출이 30% 가까이 된다. 지난해 매출 260억유로(33조4800억원) 중 31.2%가 서유럽에서, 28.3%가 북미에서 나왔다. 로레알의 이런 결과는 이들이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사업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로레알은 브랜드별 브랜딩·마케팅·판매 전략을 정교하게 세워 다양한 연령·가격대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그러지 못한 편이다.”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별 전략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브랜드별 차이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로레알그룹의 화장품 브랜드를 보면 소비자들이 랑콤이면 랑콤, 키엘이면 키엘이라고 인식하지 ‘랑콤과 키엘은 로레알의 화장품 브랜드’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이는 랑콤은 제품 기술력을 가진 프랑스 명품 화장품, 키엘은 자연 재료에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해 만드는 자연 화장품이라는 명확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시장에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로레알은 34개 브랜드의 타깃 시장이 겹치지 않게 소비자군과 채널을 명확하게 나눠 운영한다. 반면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설화수 정도가 고가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고 마몽드, 라네즈, 이니스프리 등은 독립적인 브랜딩이 부족하다. 개별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브랜드 정체성이 명확하게 해외 소비자에게 인식돼 있지 않다.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잘 활용할 브랜드 전략을 체계적으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의 프리미엄 전략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가 중국 시장에서는 고급 화장품 이미지로 자리 잡았지만 일각에선 제품이 주는 만족도 대비 가격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60㎖ 용량에 정가가 65만원인 설화수 ‘다함설크림’은 초고가 제품에 속한다. 급증하고 있는 중국 중산층이 중국 소비시장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들도 단순히 비싸기만 한 제품은 안 산다. ‘이 가격을 주고서라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인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제품이 고가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함설크림 같은 제품은 전반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프리미엄과 비(非)프리미엄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소비자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프리미엄’의 가치는 결국 디테일에서 나온다. 화장품 원료의 디테일, 제품 품질과 패키지 디자인의 디테일, 심지어 제품을 담아가는 종이백까지 디테일에 신경써야 한다. 수십만원짜리 화장품을 아무데나 담는다면 프리미엄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원료부터 제품, 패키지, 직원의 서비스까지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한 가지 색채를 내는 것이 프리미엄이다. 제품에 프리미엄의 가치를 심어줘야 다른 사람들도 그 브랜드 가치를 인정해주고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로레알이 아모레의 벤치마킹 모델이라는 얘기인가.
“결국 화장품의 경쟁력은 ‘브랜딩’에서 나온다. 이를 잘하는 기업이 로레알과 시세이도다. 이들 기업은 오래전부터 해외 시장에 진출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일관된 마케팅을 펼쳐왔다. 현지 소비자를 잡기 위한 ‘현지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로레알은 현지에 지역 연구소를 세워 인력을 배치하고 그 나라의 화장품 시장과 소비자를 철저히 연구한다. 연간 1조원 이상(지난해에는 8억7700만유로, 매출의 3.4%)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 그간 쌓인 노하우도 많다. 특히 로레알은 적극적으로 현지 기업을 인수·합병(M&A)해 현지화에 활용했다. 시세이도는 현지에서 브랜드를 론칭해 그 나라 소비자를 공략한다. 예를 들어 시세이도는 1997년 동남아 시장에 ‘지에이(Za)’라는 브랜드를 내놓고, 동남아 소비자들의 피부톤, 화장습관 등 동남아 소비자들을 철저하게 고려한 제품을 만들어 팔아 성공했다. 현지 소비자에게 꼭 맞춘 제품 개발도 역할을 했지만 결국 소비자 마음을 움직인 것은 기업의 현지화 노력이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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