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삼성전자 매장에서 고객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올해 3분기(7~9월)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고작 1%에 그쳤다. 사진 블룸버그
중국의 한 삼성전자 매장에서 고객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올해 3분기(7~9월)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고작 1%에 그쳤다. 사진 블룸버그

11월 5일 아침, 중국 상하이(上海) 푸동공항에서 광저우(廣州)행 상하이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무심코 집어 든 기내 쇼핑 책자의 내용이 중국에서 우리 기업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흠칫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연계해 냉장고∙세탁기 등 대형 가전제품에서 침구류와 드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을 제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경우 선택 가능한 브랜드는 애플과 중국 화웨이 둘뿐이었다. 자국 시장은 물론 미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는 중국 업체, 그보다 두세 배 비싼 가격에도 여전히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애플 사이에서 국내 브랜드의 설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중국 최대 경제 도시 상하이와 광둥성의 중심 도시 광저우에 며칠간 머무는 동안 이 같은 우려가 이미 현실이 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명동과 비슷한 상하이 쉬자후이(徐家匯) 지역의 대형 쇼핑몰 가전 코너도 독일 밀레와 영국 다이슨 등 고가 프리미엄 제품과 가성비 좋은 중국 제품이 양분하고 있었다. 한국 스마트폰과 자동차 브랜드가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40세 이하 젊은이에게 점점 더 외면받고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지금도 위기이지만, 그 위기가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는 이유다.

4일 오후 상하이 최고 번화가 난징동루의 아이폰 매장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찌푸린 날씨에도 인파로 넘쳐났다. 젊은층이 많긴 했지만 연령대가 다양해 보였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애플의 중국 비즈니스가 타격받았다고 하지만 피부로 느끼긴 어려웠다. 아이폰 매장 건너편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화웨이 매장도 젊은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4년 전 본사가 있는 선전(深圳)에서 본 매장들과 비교할 수 없이 깔끔하고 고급스러워졌다. 적어도 중국에서만큼은 프리미엄 브랜드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듯했다. 하지만 삼성과 LG 등 국내 가전 기업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느낌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화웨이(점유율 23%), 비보(21%), 오포(21%), 샤오미(13%), 애플(9%) 등 상위 다섯 개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3%였던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1년 만에 1%로 추락했다.

중국 컨설팅 업체 BCC(Business Connect China)의 상하이 본사에서 만난 루중제(魯中·33) 리서치 총괄은 “남편과 아버지가 삼성 스마트폰을 쓰다가 몇 년 전 화웨이와 샤오미 스마트폰으로 바꿨다”며 “현지 소비자 취향에 밝은 중국 업체들이 대대적으로 마케팅 공세를 벌이고 있기 때문에 확고한 팬층이 있는 애플을 제외하면 외국 업체가 선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광저우에서 ‘Injoy’란 이름의 프리미엄 유아교육 체인을 운영하는 루즈후이(陸梓慧·31) 원장은 “아이폰만 두 대를 사용 중”이라고 했다. 비싼 가격에도 아이폰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주저 없이 “폼이 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축구광 량위페이(陸梓慧·35) 부원장이 “축구로 치면 (세계 최고의 스타인) 호날두나 메시 같은 느낌”이라며 거들었다.

상하이에서 만난 중국 철강 기업 중천강철의 최고경영자(CEO)인 왕잉(王郢·39) 사장은 모토롤라·노키아 등 서구 스마트폰을 쓰다가 지난해 화웨이 ‘메이트10’으로 갈아탔다고 했다. 그는 “1년마다 폰을 교체하는데, 그때마다 화웨이 스마트폰의 성능이 눈에 띄게 개선되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며 “유럽에서도 인기가 높아, 중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교체 이유를 설명했다.


中 소비자, ‘중국 특화’ 아닌 ‘세계 최고’원해

자동차 업계에서도 지리(吉利)와 치루이(奇瑞) 등 중국 업체들의 성장이 무섭다. 그래도 아직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중국산 차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듯했다. 화웨이에 열광하는 왕잉 사장은 아우디의 중형세단 ‘A6’를 몬다고 했다. 왕잉 사장은 “중국에서 한국 차에 대한 인식이 중국 차보다 크게 나은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판매량은 2009년 GM과 폴크스바겐에 이어 3위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9위로 추락했다. 왕 사장은 “현대·기아차가 중국에서 고전하는 게 품질 때문은 아닌 것 같다”며 중국에서 현대·기아차가 처한 상황을 명품 핸드백 시장에 비유했다. 한국 업체가 만든 핸드백과 루이뷔통 핸드백의 품질 차이가 엄청난 건 아니지만, 디자인과 브랜드 파워에서 앞선 루이뷔통이 훨씬 비싼 값에 팔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광저우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로 GM을 거쳐 상하이의 BMW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근무 중인 펑솨이(馮帥·35) 시니어 디자이너는 “자금이 넘쳐나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소비자들은 중국 시장에 특화된 제품과 서비스가 아닌 ‘세계 최고’를 누리기 원한다”며 “자동차 시장에서 단기간에 최고가 되기 어렵다면 적어도 독창적으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드물긴 했지만 한국 차의 품질에 대한 불만도 접할 수 있었다. 상하이에서 일본식 다기류 가게 ̒우메이탕(五美堂)̓을 운영하는 선리나(申麗娜·34)는 “중국 차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도 “한국 차는 처음엔 좋은 것 같은데 쓰다 보면 여기저기 고장이 많다”고 했다. 일본 고급차인 렉서스를 몰고 있다는 그는 “현대차가 중국에서 광고라도 많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요즘은 광고도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국 차와 스마트폰 광고를 보기 어렵다는 데는 BCC의 루중제 리서치 총괄도 의견을 같이했다. 그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술 융합으로 중국 자동차 시장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 고객 확보를 위해서는 이미지 광고와 마케팅에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중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소득이 늘면서 프리미엄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중국 도시의 상주인구는 8억1000만 명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프리미엄 전략에서는 기술력과 서비스 이상으로 ‘독창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왕잉 사장은 “중국 젊은층은 이노베이션과 자유를 갈망하며 자신이 존중받기를 원하는 욕구가 강하다”며 “그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경쟁자와 확실히 다른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성 차장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