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면도기 시장 압도적 1위 기업인 ’질레트’의 시장점유율이 저가정책을 필두로 한 면도기 스타트업 공세에 밀려 2010년 이후 6년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질레트 남성 면도기 모델. 사진 블룸버그
남성 면도기 시장 압도적 1위 기업인 ’질레트’의 시장점유율이 저가정책을 필두로 한 면도기 스타트업 공세에 밀려 2010년 이후 6년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질레트 남성 면도기 모델. 사진 블룸버그

‘절박한 질레트, 가격 공세에 백기 들었다.’

영국계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의 애널리스트 로렌 리버먼(Lauren Lieberman)이 내놓은 리서치 보고서 내용이다. 2017년 2월 프록터앤드갬블(P&G)이 자사 브랜드인 질레트의 면도기 가격을 최대 25% 내리기로 결정한 직후의 일이었다.

질레트의 프리미엄 가격 전략은 마케팅 교과서 단골 메뉴였다. 질레트는 면도기와 면도날에 혁신적인 기능을 추가할 때마다 가격을 높여 받는 전략으로 글로벌 면도기 사장을 장악했다. 150년이 넘는 역사의 질레트가 가격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7년 전인 2010년까지만 해도 질레트의 미국 남성 면도기 시장 점유율은 70%가 넘었다. 하지만 그 후 6년 연속 질레트의 점유율은 하락했다. 시장분석기관 유로모니터(Euromonitor)에 따르면 2015년 59%였던 점유율은 지난해 50%까지 추락했다. P&G 측은 질레트 면도기 가격 인하를 발표한 자리에서 ‘프리미엄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전략’이 문제였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2005년 P&G에 인수된 이후 질레트는 GM이나 현대차 같은 완성차 업계의 마케팅 모델을 따랐다. 아반떼를 첫 차로 구입한 고객에게 다음 차로 소나타, 그다음 차로 그랜저를 소개하듯이, 청소년기에 가장 저렴한 질레트 센서(면도날 개당 약 2달러)로 면도를 시작한 남성이 대학에 진학하면 센서 엑셀(약 2.5달러)을 쓰고, 취업하면 마하3(약 3달러), 승진하면 마하3터보(약 4달러) 모델로 업그레이드하게 만드는 식이었다. 그리고 매년 새로운 고가의 모델을 출시했다. 지속적으로 가격을 높였지만 판매량은 줄지 않았다. 글로벌 면도기 시장에서 질레트를 위협할 만한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쉬크(Schick) 등 2~3위 업체들도 질레트를 따라 함께 가격을 올렸다. 소비자들은 가격을 수용했다.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염가형 면도기 배달 서비스 스타트업 ‘달러셰이브클럽’ 홈페이지 메인 화면. 사진 달러셰이브클럽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염가형 면도기 배달 서비스 스타트업 ‘달러셰이브클럽’ 홈페이지 메인 화면. 사진 달러셰이브클럽

가성비 따지는 ‘밀레니얼 세대’의 외면

질레트의 실적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2010년. 교체용 면도기 시장에서 질레트의 아성이 무너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스마트폰 보급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아마존 등 온라인 시장이 보편화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 인터넷을 통한 가격 검색이 확산됐다. 컨설팅 기업 코터의 캐시 거시 부사장은 “소비자들은 제품 가격을 가치에 비추어 더 따져보기 시작했다"며 “유명 축구선수를 광고 모델로 동원한 마케팅과 화려한 브랜드만으로는 높은 가격을 지탱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듬해 “요즘 면도기는 너무 비싸다”는 슬로건을 내 건 면도날 배달 서비스 스타트업 ‘달러셰이브클럽’과 ‘해리스(Harry’s)’가 등장했다. 마이클 더빈 달러셰이브클럽 대표는 “어차피 2주에 한 번은 면도날을 바꿔야 하는 교체형 면도기에 진동 핸들과 플래시, 6중 날과 같은 것들이 왜 필요한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질레트를 비롯한 면도기에 과도한 최첨단 기술이 투입되어 있고. 이는 면도하는 데 전혀 필요 없는 기능이라고 주장했다.

달레셰이브클럽은 한국 기업인 도루코와 공급 계약을 맺고 면도날을 만들었다. 달러셰이브는 면도날 가격을 개당 20센트까지 낮췄다. 당시 질레트의 교체용 면도날 가격은 2~6달러. 쉬크의 같은 제품 가격은 2~2.7달러였다. ‘우리 면도날 완전 좋아(Our Blades are F**king Great)’ 달러셰이브클럽의 광고문구다.

해리스는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합리적 가격의 프리미엄 제품으로 접근했다. 질레트와 똑같은 품질의 독일산 면도날을 저렴하게 수입했다고 홍보했고, 패션 브랜드 ‘톰브라운’과 협업을 통해 브랜드화 작업을 했다. 가격은 질레트의 절반 정도로 책정했다. 달러셰이브클럽과 해리스는 밀레니얼 세대의 돈을 쓸어 담았다. 달러셰이브클럽과 해리스의 미국 남성 면도기 시장 점유율은 2015년 7.2%에서 2017년 12.1%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질레트 점유율은 60%에서 50%로 빠졌다. 2017년 P&G의 라이벌인 유니레버는 달러셰이브클럽을 10억달러(약 1조원)에 인수했다.

위기를 느낀 질레트는 전략 전면 수정에 나섰다. 중저가 모델인 마하3 모델의 면도날을 5년 만에 처음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온라인 면도날 배달 서비스인 ‘질레트셰이브클럽’을 출시했다. 또 수염을 깎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사람을 겨냥한 신제품도 내놓았다. ‘웰컴백 캠페인’을 통해 오랜만에 질레트를 구입한 고객에게 무료로 면도날을 증정했다.


plus point

소니의 흑역사…초고가 브랜드 ‘퀄리아’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전 대표이사(CEO) 사장. 2003년 6월 노부유키 당시 소니 사장이 프리미엄 브랜드 퀄리아 출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전 대표이사(CEO) 사장. 2003년 6월 노부유키 당시 소니 사장이 프리미엄 브랜드 퀄리아 출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화려한 고물덩어리’.

소니가 2003년 출시한 초프리미엄 소형 가전브랜드 ‘퀄리아’를 수식하는 단어다. 도요타의 렉서스를 벤치마크한 이 브랜드는 출범 당시 소니의 실적 부진을 타개할 구세주로 기대를 모았다.

기대와 달리 성과는 형편없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소형 디지털카메라, 프로젝터, TV, 오디오시스템 등의 제품이 퀄리아 브랜드를 달고 출시됐다. 그 3년 동안 10개 모델이 나온 후 단종됐다.

실패 원인은 두 가지였다. 똑같은 사양의 타사 제품보다 10배가량 비싼 가격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능. 퀄리아는 프리미엄을 표방한 화려한 외관과 달리 성능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성능이 떨어지는 대표적인 모델로 디지털카메라 ‘퀄리아016’이 꼽힌다. 016 모델은 작은 크기가 장점으로, 같은 사양의 소니사이버샷(4만엔)보다 9배 정도 비싼 38만엔(약 380만원)으로 가격이 책정됐다. 그러나 작은 크기 때문에 배터리 성능이 부족했고, 이 때문에 장시간 휴대가 힘들었다.

MD플레이어인 017 모델은 본체 표면에 팔라듐을 도금해서 가격을 18만9000엔(약 189만원)까지 높였지만 메모리 용량이 305MB에 불과했다. 소니의 차세대 포맷인 Hi-MD 용량이 1GB용량이었다. 천연가죽을 덧씌운 헤드폰인 010 모델의 경우, 가격은 26만2500엔(약 240만원)으로 매우 비쌌으나, 정작 제품의 핵심부품인 진동판은 저가의 필립스 헤드폰과 동일한 것을 사용했다.

전자 업계는 퀄리아 사례를 두고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했다. 퀄리아는 기획에서 판매까지 걸리는 기간이 두 달에 불과할 정도로 졸속이었고, 그러다 보니 시장 조사 부족으로 소비자 요구와 동떨어진 제품만 나왔다. 비싼 가격과 멋진 디자인, 좋은 재질이면 고가이더라도 소비자들이 구매할 것이라고 믿은 소니 경영진의 패착이었다. 퀄리아 사태를 계기로 2005년 이데이 노부유키 사장이 물러나고 창사 최초로 외국인 하워드 스트링거가 사장이 됐다.

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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