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국내 택배 물동량은 2012년 14억598만개에서 지난해 23억1946만개로 65% 증가했다. 사진은 CJ대한통운의 ‘옥천 허브터미널’. 사진 CJ대한통운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국내 택배 물동량은 2012년 14억598만개에서 지난해 23억1946만개로 65% 증가했다. 사진은 CJ대한통운의 ‘옥천 허브터미널’. 사진 CJ대한통운

올해 4월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는 이른바 ‘택배 갑질’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아파트 단지 내 택배차량의 진입을 막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택배기사에게 아파트 정문에서부터 카트로 현관 앞까지 물품을 배달해달라고 요구하라’는 내용의 공고문을 게시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택배업체가 해당 아파트에 물품 배송을 거부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이 사태 이전에 어린아이가 단지 내에서 후진하던 차량에 치일 뻔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을 떠나 상황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10월 23일 이진아(가명)씨는 업무중 공연 티켓 배송을 온 택배기사 A씨의 전화를 받았다.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이씨는 티켓을 우편함에 넣어달라고 했지만 A씨는 “거주민 외엔 우편함 접근이 어렵다”며 거절했다. A씨는 외부에 있는 무인택배함에 넣어달라는 이씨의 요청을 듣더니 “무인택배함이 꽉 찼는데 어쩌란 말이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씨는 “짧은 시간에 많은 물건을 배송해야 하는 택배기사의 고충은 알겠지만 무작정 짜증을 내는 태도는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앞선 두 가지 사례는 국내 택배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국내 택배시장은 2000년대 후반부터 온라인·모바일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비약적으로 커졌다. 국내 택배 물동량은 2012년 14억598만개에서 지난해 23억1946만개로 65% 증가했다. 늘어난 택배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택배기사들은 하루 취급 물량을 늘렸다. 한 사람이 맡는 택배물량이 많아지자 택배기사들은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고 택배 서비스의 질은 낮아졌다.

택배업체들이 출혈 가격 경쟁을 벌이면서 택배단가가 낮아진 탓에 택배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국내 택배 물동량은 2000년 2억개에서 지난해 23억개로 늘어난 반면 택배단가는 같은 기간 3500원에서 약 2200~2300원으로 낮아졌다. 국내 택배시장의 45%를 점유하는 CJ대한통운 택배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1조9800억원, 영업이익은 677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3.4%에 불과했다. 2·3위 업체인 한진(점유율 12%)과 롯데(12%)도 각각 영업이익률 1%, -1%라는 참담한 실적을 기록했다.

택배 관련 분쟁이 발생했을 때 시시비비를 가릴 관련법이나 제도가 부실하다는 것도 문제다. 다산신도시 사례처럼 최근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는 조경과 안전을 이유로 지상 환경을 차가 다니지 않도록 ‘공원화’하는 곳이 많다. 하지만 유일한 택배 관련 기준이라고 볼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택배표준약관을 적용해도 명확한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또 법적 강제력이 없어 분쟁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일 배송, 새벽 배송 등 온라인 쇼핑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한국은 택배산업이 더욱 성장할 여지가 많은 시장이다. 택배산업에는 빅데이터·로봇 등 한국의 첨단 정보통신기술(IT)을 적용해 발전시킬 부분도 많다. 전문가들은 국내 택배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혁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민영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세계 택배회사들은 물류 과정 중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단계인 ‘라스트마일’에서의 비효율성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며 “한국 택배업체들도 첨단 물류 기술 개발, 택배 서비스 개선 등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은 국내 택배산업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11월 12일 국내 1위 택배업체인 CJ대한통운의 택배기사를 동행 취재하며 각 물류 단계에서 비효율성을 개선할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CJ대한통운의 자동 인식 장치(ITS). 사진 CJ대한통운
CJ대한통운의 자동 인식 장치(ITS). 사진 CJ대한통운

1│인프라 투자로 분류작업 효율성 높여

11월 12일 오전 8시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CJ대한통운 ‘중구 서브터미널’. CJ대한통운의 택배기사 원성진씨의 하루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원씨는 화물차량에서 하차된 택배상자가 이동하는 컨베이어 벨트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CJ대한통운의 자동 인식 장치(ITS)를 통과한 택배는 바코드에 적힌 위치 정보에 따라 자동 분류 장치 ‘휠소터(Wheel Sorter)’에 의해 지역별로 분류된다. 메인 컨베이어 벨트 라인을 따라 이동한 택배상자가 휠소터를 지나면서 봉래동, 회현동, 충무로, 소공동, 정동 등 8개 지역별라인으로 분류되는 방식이다.

중구 서브터미널 택배기사들은 지난해 10월 전까지만 해도 오전 7시에 출근해 자신이 배달할 지역의 화물을 직접 수작업으로 골라냈다. 분류작업이 이뤄지는 3~4시간 동안(길게는 5~6시간) 화장실도 못 가고 택배가 오는 방향만을 바라봐야 했기에 불편함이 컸다. 사람이 하다 보니 속도가 더디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하지만 ITS, 휠소터 등 자동 분류 시스템이 적용되면서 업무 환경이 180도 달라졌다. 원성진 택배기사는 “휠소터 적용으로 택배 분류 시간이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을뿐 아니라 택배기사의 복지가 200%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원성진씨가 카트에 택배상자를 싣고 있다. 사진 백예리 기자
원성진씨가 카트에 택배상자를 싣고 있다. 사진 백예리 기자

2│시간 절약 위해 최적의 배송 루트 개발

비교적 택배 물량이 많지 않은 월요일엔 보통 8시에 하차 및 분류 작업이 시작돼 3시간 만인 11시쯤 끝난다. 원씨는 택배차량에 짐을 싣고 점심을 먹은 뒤 2시부터 자신이 맡고 있는 배송지를 4개 구역으로 나눠 매일 같은 순서대로 물건을 배송한다. 원씨는 “작년 5월 택배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물건을 잘못 배송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면서 “수십 번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최단 시간에 배송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반품할 물건이 있는 주민과 원칙을 미리 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반품할 물건을 문 앞에 내놓거나 경비실에 맡기는 등 사전 약속을 하면 현장에 도착해 전화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3│주민 안전 고려한 ‘카트 배송’

그가 택배를 배송하면서 원칙으로 삼는 것은 ‘차가 아닌 카트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아파트 한 동에서 다른 동으로 이동할 때 5m도 안 되는 거리를 차량으로 이동하는 택배기사가 있는 반면, 원씨는 맡고 있는 4개 구역을 거점으로 삼아 차를 세워놓고 택배상자들을 카트에 담아 이동하면서 배송한다. 차량으로 조금씩 이동하면서 배송하는 것보다 속도가 빠를뿐더러 단지 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씨는 다산신도시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안전 문제는 누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유지인 주거 단지 내에서 차량을 통한 이동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은 현재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주차공간 일부를 이용해 간이 택배터미널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주민과의 협의를 통해 회사가 시설·장비를 지원하고 주민들도 일정 비용을 부담한다.


4│가구별 세세한 요구사항 완전 정복

“905호엔 잠귀가 밝은 아기가 살고 있어서 8층, 9층에선 카트도 안 끌어요. 400호 어르신은 문자로 택배 배송왔다고 알리는 것보다 직접 전해주는 것을 좋아하세요.”

만리동 1㎞ 반경 수천가구에 월평균 6000개가량의 택배물품을 배달하는 원씨의 말이다. 원씨는 각 가구 주민의 세세한 요구사항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가벼운 물건은 경비실에, 무거운 물건은 집 앞에 놔달라는 주민뿐 아니라 문 앞에 물건을 놓고 문을 두드려야 하는 집 호수도 꼼꼼히 외우고 있었다. 경비실 직원은 물론 가다가 마주치는 주민들 모두가 원씨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원씨는 “이렇게 각 주민의 스타일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며 “고객과 소통하고 신뢰를 쌓고 나면 1:1 맞춤 대응이 가능해지고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오전 8시에 시작한 동행취재는 오후 5시 무렵 고객사(업체)의 택배물품을 모으는 작업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원씨는 “택배산업이 커진 만큼 택배문화도 성숙해졌으면 좋겠다”며 “주민도 택배기사를 존중하고 택배기사들도 친절하고 빠른 배송, 주민과의 소통으로 스스로의 이미지를 구축해간다면 국내 라스트마일 경쟁력 확보에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씨와 같은 택배기사들의 노력으로 점차 택배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 국내 택배산업의 갈 길은 멀다. 라스트마일 단계의 비효율성을 개선하려면 원씨뿐만 아니라 모든 택배기사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택배산업은 택배회사에 소속된 정직원들이 배송을 하는 게 아니라 회사와 개인사업자인 개별 택배기사들이 계약을 맺고 배송업을 진행하는 형태다. 때문에 택배 서비스 일원화 등 일괄적인 관리가 어렵다. 또 사업자 간 계약을 맺는 택배기사는 특수고용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택배기사가 무리하게 많은 물량을 배송하면서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려도 규제가 어렵다.

출혈 가격경쟁도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다. 택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아마존은 연회비 119달러를 내는 유료 회원(아마존 프라임)을 대상으로 주문한 물건을 1~2시간 이내로 받아볼 수 있는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제살깎아먹기식 가격경쟁으로 택배시장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택배비용을 높이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낮은 택배단가로 대규모 계약을 맺고 택배비용에서 마진을 남기고 있는 대형 고객사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3개월간 3명 사망…CJ대한통운 잇따른 악재

국내 택배업계 점유율 1위인 CJ대한통운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간 3명의 노동자가 잇따라 사망하면서다. 이에 따라 택배시장 전반의 노동환경 개선과 재발 방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첫 사고는 지난 8월 6일 CJ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에서 발생했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대학생 A(23)씨는 청소를 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 아래로 들어갔다가 감전사를 당했다. 당시 A씨는 웃통을 벗고 있었는데, 굽혔던 허리를 펴다 기둥에 몸이 달라붙으면서 사고를 당했다. 같은 달 30일엔 옥천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임시직 노동자 B(53)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직원이 응급조치를 하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졌다. 다만 B씨의 경우 해당 물류센터에서 일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아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사고는 지난 10월 29일 오후 10시쯤 대전물류센터에서 발생했다. 후진 중이던 트레일러가 택배 트럭에 짐을 싣고 있던 협력업체 직원 C(33)씨를 들이받았다. C씨는 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다음날 오후 6시쯤 끝내 사망했다. 해당 트레일러를 운행한 직원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3개월 사이 3명이, 그것도 같은 곳에서 2명이 사망하자 정부가 나섰다. 대전지방노동청은 대전물류센터에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고, 11월 6일부터 29일까지 특별 감독을 실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11월 8일부터 29일까지 감독반 19명을 보내 전국 CJ대한통운 물류터미널을 집중 감독하기로 했다. CJ대한통운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노동부와 노동청을 대응하는 한편, 감독 결과에 따라 재발방지책을 비롯한 안전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CJ대한통운이 국내 최대 택배업체인 만큼, 한동안 배송 지연 등 소비자 불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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