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 블룸버그
왼쪽부터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 블룸버그

“언젠가 우리나라(대만)가 하나의 진정한 독립 국가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11월 17일 대만 금마장(金馬奬)영화제에서 한 수상자가 했던 이 같은 ‘대만 독립’ 지지 발언이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해묵은 갈등에 불을 붙였다. 중국 유명 연예인들이 이 발언을 비판하자, 대만은 차이잉원 총통까지 나서서 그의 ‘대만 독립’ 발언을 지지했다.

대만 독립 발언이 나온 금마장영화제는 대만과 중국, 홍콩의 유명 영화배우들이 참석하는 중화권 3대 영화제다. 이날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대만 감독 푸위의 수상 소감은 축제처럼 흘러가던 영화제 분위기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했다. 그는 반중(反中) 성향 대학생들의 시위를 다룬 ‘우리의 청춘, 대만(我們的青春 在台灣)’이라는 작품으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는데, 수상 소감으로 ‘대만 독립’을 언급한 것이다. 영화제를 생중계하던 중국 매체들은 이후 방송 송출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중국 배우들은 이 발언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날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중국 배우 투먼은 “시상자로서 ‘중국 대만’에 다시 오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라는 걸 강조하는 발언이었다. 또 작품상을 시상하기로 예정돼 있던 중국 배우 궁리는 시상을 거부했다. 중국 배우들은 영화제가 끝난 후 열린 공식 파티에도 등장하지 않고 곧바로 중국으로 돌아갔다. 탈세 혐의를 인정하고 사과한 후 연예계로 복귀한 중국의 유명 영화배우 판빙빙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에 “중국은 단 한 뼘도 작아질 수 없다(中國一點都不能少)”는 글을 공유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대만 독립을 부정할 때 사용하는 구호다.

중국 정부는 중국과 대만·홍콩·마카오가 분리될 수 없다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은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지만 실효 지배를 하지 않고 있는 ‘미(未)수복 지역’으로 바라보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즉 중국이 지난 1971년 10월 제26차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채택한 결의 2758에 따라 중국과 지금의 대만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 해 중국은 대만(당시 자유중국)을 밀어내고 UN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웨이펑허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은 11월 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교·안보 대화에서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열되면 중국은 미국이 남북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든 대가를 감수하고 조국 통일을 수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시보에 따르면 11월 19일 중국군은 동중국해에서 최근 대만 침공을 상정한 대규모 상륙 훈련을 했다. 군사력 과시를 통한 노골적인 대만 압박이었다.

중국의 압력이 강해질수록 대만 내 독립을 요구하는 여론과 반중 감정은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 10월 20일에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臺北)에서 대만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시위에 12만 명이 참석했다. 대만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진 것은 지난 2016년 민진당의 주석인 차이 총통이 집권한 이후 처음이다.

대만 정부는 올림픽 선수단의 이름을 ‘차이니즈 타이베이(中華臺北)’가 아닌 ‘대만’으로 변경할지 묻는 국민 투표를 11월 24일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했다. 대만중앙선거위원회에 따르면 올림픽 참가 명칭 변경 투표를 청원한 사람의 수는 43만 명이었다. 중국은 대만의 이번 국민 투표 실행을 정치적 독립 추구 행위로 보고 크게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을 확률은 낮다고 보고 있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는 “독립 선언이 대만 내에서는 민족주의적 감정을 고양할 수 있겠지만, 중국의 강한 반발이 자명해 주변국에서 대만을 주권 국가로 인정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중국 정부는 지금보다 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정책을 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갖는 압도적인 경제적 지위를 이용해 대만을 주변국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다. ‘중국과 수교하려면 대만과는 관계를 끊고 오라’고 강요하는 식이다. 지난 9월 엘살바도르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며 대만과 국교를 끊고 중국의 손을 잡았다. 세계 주요국들은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 1970~90년대에 이미 대만과 관계를 끊었다. 한국 역시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는 국교를 단절했다. 대만의 수교국은 2016년 5월 차이 총통이 취임할 때만 해도 22개국이었지만, 2년 3개월 만에 17개국으로 줄었다.


금마장영화제 수상 소감을 통해 대만 독립 지지 발언을 했던 푸위(왼쪽) 감독. 사진 대만 금마장영화제 페이스북
금마장영화제 수상 소감을 통해 대만 독립 지지 발언을 했던 푸위(왼쪽) 감독. 사진 대만 금마장영화제 페이스북

대만은 미국의 불침 항공모함

대만은 이 같은 중국의 압박에 맞서 미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던 지난 2016년 12월 전화로 그의 당선을 축하했다. 트럼프 정부의 참모들은 자주국으로서 대만을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미국의 대외 전략에서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데이비드 헬비 미 국방부 아태·안보부차관보는 10월 30일 미국·대만 방위산업회의 연설에서 “대만군은 유사시 중국을 격퇴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대만에 방위비를 늘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 국교를 끊었지만, 우방국가였던 대만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을 담은 대만관계법을 1982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은 대만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9월 대만에 3억3000만달러(약 3800억원), 지난해 14억달러(약 16조원) 상당의 무기 수출을 승인했다.

올 3월 미국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된 존 볼턴은 ‘북한 선제 타격론’과 같은 의견을 펴는 초강경론자이자 반(反)중국 성향의 인사다. 그는 과거 “하나의 중국은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이라면서 대만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고 UN 회원국으로 가입시켜야 한다고 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칼럼에서 “대만은 동아시아, 동중국해, 오키나와, 괌 모두와 가까워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면서 “미국이 이 지역에서 군사 행동을 해야 할 때 빠른 군사 배치가 가능해 작전의 유연성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미국이 태평양의 패권을 유지하려면, 대만을 미국 품 안에 반드시 둬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에 있어 대만은 ‘불침항모(不沈航母·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 대만이 미국의 군사 요지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중국의 위협이 거듭되는 가운데, 한 달 전 미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 지원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은 10월 22일 군함 2척을 보내 대만해협을 통과시켰다. 로버트 매닝 미 국방부 대변인은 “군함들은 국제법에 따라 통상적인 활동을 위해 (대만해협을) 통과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두고 대만에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지 말라(마샤오광 중국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며 강력한 불만을 드러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는 중국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과 관련된 일로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라고 반발했다.

미국이 무력시위를 하면서까지 대만 편에 서는 이유는 패권의 야망을 품은 중국의 기세를 꺾고 세계 1위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앞으로 중국과 패권 다툼을 할 때 대만을 한 번씩 활용해 중국을 자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을 통해 “중국은 아시아의 패권을 추구할 것이고, 다른 패권국의 등장을 막는 데 전력을 기울여 온 미국은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중국 성향의 인사이자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 사진 블룸버그
반중국 성향의 인사이자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 사진 블룸버그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1980년대에 스스로 설정한 해상 방어선인 ‘제1 도련선(島鏈線·오키나와와 대만, 필리핀, 남중국해 열도와 말레이시아를 연결하는 선)’을 넘나들며 태평양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제1 도련선은 중국의 방어선이자,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규모를 보여주는 선이다. 이를 넘나드는 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태평양의 패권을 장악한 미국을 조금씩 찔러보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까지는 미국과 중국 간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은 없었지만, 무역전쟁으로 두 나라의 갈등이 깊다. 관세 폭탄으로 중국을 제압한 미국의 한판승으로 보인다. 미국은 올해부터 2500억달러(약 280조원)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2000억달러어치에 대해서는 10%, 나머지에 대해서는 25%의 세율을 적용한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중국산 제품의 규모가 연간 5000억달러임을 감안하면, 전체 수입품의 절반 규모가 관세 폭탄의 대상이다.

이에 중국은 1100억달러(약 125조원)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10~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했지만, 미국은 개의치 않고 있다. 중국에 수출되는 미국산 제품 규모는 연간 1300억달러로,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산 수입품 규모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부각되면 한반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박영준 교수는 “양안 관계가 긴장되면 중국 연안의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의 오래된 갈등이 다시 부각될 수도 있다”면서 “이는 한국의 아시아 지역 해양 수송로를 경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초혁신 국가’ 도약…지나친 중화권 의존은 문제

이용성 차장

대만 타이베이에서 매년 열리는 아시아 최대 ICT 전시회 ‘컴퓨텍스’의 올해 행사 모습. 사진 컴퓨텍스
대만 타이베이에서 매년 열리는 아시아 최대 ICT 전시회 ‘컴퓨텍스’의 올해 행사 모습. 사진 컴퓨텍스

대만은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달 발표한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독일, 스위스, 미국과 함께 4대 ‘초(超)혁신 국가(Super Innovators)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 5월 출범한 차이잉원 정부가 대만을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사물인터넷(IoT) 관련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에 집중해 온 것이 열매를 맺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의 반작용으로 중국 투자에 부담을 느낀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아시아 시장의 새로운 전진기지로 대만에 주목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위탁 생산자 역할에 머물러 있던 대만 기업의 위상 변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퀄컴은 내년 초 대만 신주(新竹)에 5세대 이동통신(5G) 모듈 연구·디자인센터, 5G의 핵심기술 중 하나인 밀리미터파(Millimeter Wave) 시험센터, 생체 감지센서 센터를 각각 설립할 계획이다. 로웬 첸 퀄컴 부사장은 최근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대만은 실리콘밸리에 이어 5G 기술 관련 최고 수준의 시험 능력을 갖춘, 두 번째 지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아마존은 지난 6월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박람회 컴퓨텍스(Computex)에서 타이베이 북부 신베이(新北)에 대만 기업들과 공동으로 혁신센터 설립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구글과 IBM은 이미 대만에 인공지능 관련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 중이다.

대만의 기술력이 갑자기 높아진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우수한 인력과 IT 인프라는 존재했다. 다만 그런 기반이 깜짝 놀랄 만한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반성이 대만 내부에서 제기돼 왔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위탁생산자 역할에 안주하는 쉬운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위탁생산 역할 안주해 기술 상용화 부진

쑨밍더 대만경제연구원 주임은 최근 보고서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 상용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 노력 부족이 특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술력이 중국에 확실한 비교우위가 있던 시절에는 대만에도 PC 제조업체 아수스와 에이서, 스마트폰 제조업체 HTC 등이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월등한 중국 브랜드가 물밀 듯 쏟아지면서 존재감이 옅어지고 있다.

대만 경제의 최대 불안 요인은 특정 기업·지역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다.

대만 최대 기업은 애플의 최대 협력사인 폭스콘(富士康)의 모기업 훙하이(鴻海)정밀공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4조7074억대만달러(약 146조원), 영업이익은 1390억대만달러였다. 그런데 폭스콘 매출의 절반 이상은 애플 아이폰 위탁 생산에서 나온다.

중화권 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문제다. 대만 경제의 중화권 종속은 교역 구조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대만의 총수출액 3173억달러 중 대중국(홍콩 포함) 수출액이 1302억달러로 무려 41.1%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수출 비율인 24.8%보다 훨씬 높다. 대만산 ICT 제품의 대중 수출 비율은 55%에 달한다. 대부분 중국에서 조립해 미국 등으로 수출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될 경우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대만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산업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황친하오 예일-싱가포르국립대(Yale-NUS) 국제안보학 교수는 싱가포르 보도 채널인 채널뉴스아시아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대만의 IT 경쟁력은 높지만, 중국이 급성장하는 분야여서 장기적으론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IT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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