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신주시 신주과학공원에 위치한 TSMC 본사. 사진 이민아 기자
대만 신주시 신주과학공원에 위치한 TSMC 본사. 사진 이민아 기자

10월 22일 오후 1시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臺北)에서 고속철도(HSR)를 타고 30분을 달려 신주(新竹)역에 내렸다. 세련된 역을 벗어나 택시로 15분쯤 달리자 공업 단지 ‘신주 과학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 시스템 반도체 물량의 절반을 생산하는 글로벌 1위 반도체 위탁 주문 생산 회사(파운드리)인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본사가 바로 이곳에 있다.

TSMC의 시가총액은 5조6660억대만달러(약 206조원·2018년 11월 기준)로 대만의 시총 1위 기업이다. 올해 1~9월까지 매출은 7417억대만달러(약 27조원)였다. 시총 기준 한국 2위인 SK하이닉스가 올해 1~9월 매출(약 30조5000억원)은 TSMC보다 많았지만 시총은 TSMC의 4분의 1 수준인 것과 대조적이다. 그만큼 시장이 TSMC의 위치를 안정적으로 보면서 또 성장 가능성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반도체회사는 세 종류로 구분된다. 반도체 생산만을 담당하는 파운드리, 공장 없이 설계와 판매만 하는 팹리스(fabless·설계전문회사, fabrication 즉 제조설비가 없다는 뜻),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장비제조회사(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등이다. 이 중 TSMC는 팹리스로부터 도면을 받아 순수하게 생산만 하는 파운드리다. 퀄컴, 화웨이(하이실리콘), 미디어텍 등은 팹리스다. 인텔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IDM이다.

파운드리 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623억달러(약 70조2000억원)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0.4%로, 이 분야의 절대 강자다. 미국 글로벌파운드리(9.9%), 대만 UMC(8.1%), 한국의 삼성전자(6.7%)가 2~4위로 경쟁하고 있지만 TSMC의 독주를 막지는 못했다. TSMC는 세계 최초로 7㎚(나노미터·이하 나노) 공정을 적용한 중국 화웨이의 스마트폰 AP(Application Processor·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칩)를 생산했을 만큼 기술력이 뛰어나다. 이 때문에 대만에 작은 지진이라도 나면, 애플·퀄컴·엔비디아 등 대기업은 물론 세계 각지 고객사들의 문의가 TSMC로 폭주한다. TSMC 생산라인이 멈출 경우 세계 IT 업계의 반도체 수급에 대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산업은 대만 경제의 기둥이다. 올 10월 미국 국제무역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 반도체 산업의 매출은 844억달러(약 95조3000억원)였는데, 이 중 절반인 413억달러(약 46조6000억원)가 TSMC가 주도하는 파운드리 업계에서 나왔다. 이 규모는 지난해 대만 국내총생산(GDP) 5732억달러의 14%에 달한다.

TSMC는 CPU(중앙처리장치), AP 등 전자제품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의 위탁 생산을 주로 한다. 시스템 반도체는 고차원적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고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비교적 기능이 단순한 메모리 반도체처럼 소품종 대량 생산이 어렵다.

이 때문에 설계는 팹리스에서, 생산은 파운드리에서 하는 식으로 분리된 것이 보통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지난해 기준 반도체 시장 규모의 약 70% 수준을 차지한다. 나머지 30%가 D램·낸드플래시 등 전자제품에서 데이터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의 1, 2위 업체다.

세계 1위 파운드리 회사에 대한 관심은 박물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지난 2016년 12월 TSMC는 세계 각지의 견학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TSMC 혁신 박물관’을 열었다.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어와 영어 가이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박물관은 올 초 은퇴한 TSMC 창업자 모리스 창(86) 전 회장의 기념관처럼 보였다. 창 전 회장의 일대기와 업적을 소개하는 데 박물관 공간의 3분의 1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 전 회장의 일대기를 살펴보다가 알게 된 것은 창 전 회장이 대만 사람이 아닌 중국인이며, 그의 일생에 중국 현대사의 굴곡과 애환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TSMC 혁신 박물관에서는 창업자 모리스 창 전 회장과 가상 인터뷰를 할 수 있다. 수십개의 질문이 마련돼 있어 선택하면 창 전 회장이 답변을 해준다. 사진 이민아 기자
TSMC 혁신 박물관에서는 창업자 모리스 창 전 회장과 가상 인터뷰를 할 수 있다. 수십개의 질문이 마련돼 있어 선택하면 창 전 회장이 답변을 해준다. 사진 이민아 기자

그는 1931년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서 태어났으며, 국공내전 여파로 가족과 함께 중국 주요 도시를 전전하다 홍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49년 미국 하버드대에 들어간 뒤 MIT에서 기계공학 석사,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1958년 미국 반도체 회사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일을 시작해 25년간 일하며 부사장까지 올랐다. 이후 첨단산업 육성에 나선 대만 정부의 러브콜에 응해 1985년 대만으로 왔고 1987년 TSMC를 세웠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데는 1시간 정도 걸렸다. 마지막 순서는 ‘모리스 창과의 가상 인터뷰’였다. 관람객이 박물관에 놓인 태블릿 PC로 질문을 선택하면 창 전 회장이 대답하는 영상이 대형 스크린으로 재생된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밝은가”라는 질문을 선택해보니, 창 회장이 대형 스크린 속에서 “당연히 그렇다”라고 답했다. TSMC의 사업 구조와 파운드리 사업의 개념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박물관 측 노력이 엿보였다.

박물관 안에는 가상현실(VR) 기기도 놓여있었다. VR 기기를 써보니 일상생활에서 반도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만화가 재생됐다. 바로 옆에서는 대만 어린이들이 박물관을 뛰어다니며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기계들을 작동시켜보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TSMC 본사 업무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 위쪽으로 뾰족한 기둥이 두개 솟아 있어 용 머리 형상처럼 보였다. 본사 앞에는 지름이 건물보다도 넓은 둥근 원이 오목하게 파여있었다. 안내를 도와준 마이클 크래머 TSMC 대변인은 “본사 건물은 용 머리 모양을 따온 것이 맞고, 이 둥근 원은 반도체의 원재료인 웨이퍼(기판) 모양을 본 따서 설치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TSMC는 지난 6월 창 회장 은퇴 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본사 건물의 이름을 ‘모리스 창 빌딩’으로 바꿨다.


plus point

[Interview] 마이클 크래머 TSMC 대변인
“한 우물만 팠던 게 경쟁력”

10월 22일 찾은 TSMC 혁신 박물관에서 만난 마이클 크래머 TSMC 대변인에게 한국에 알려진 TSMC 소식의 진위와 글로벌 파운드리 사업자로서 독주하는 비결을 질문했다.


지난 9월“TSMC가 사업 다각화를 위해 메모리 칩을 생산하는 회사 인수를 검토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인가.
“사실이 전혀 아니며, 그 보도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검토하고 있는 사항이 하나도 없다. 메모리 칩 회사를 인수해도 TSMC와 시너지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 매체 기자가 지난 9월에 류더인(劉德音) 회장이 행사에서 연설을 막 끝내고 연단에서 내려올 때 그에게 ‘메모리 칩 회사의 인수·합병도 고려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이때 류 회장이 ‘뭐,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죠(you know, we don’t rule out the possibility)’라고 대답한 것이 부풀려져서 기사화됐다. 그 기사는 류 회장이 인터뷰를 하면서 진지하게 한 말이 아니다. TSMC는 지난해 일본 도시바의 메모리 부문 인수를 고려하기는 했다. 하지만 인수를 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사업과 시너지가 거의 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입찰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럼 지금처럼 파운드리에만 집중하는 사업 구조는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창업자 모리스 창의 생각이다. 대만 정부는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자 모리스 창을 1985년에 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으로 영입했다. 창 회장은 미국 반도체 회사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25년간 일하며 아시아인으로는 드물게 그룹 총괄부사장까지 지낸 반도체 전문가다. 그는 1980년대에 대만의 산업 구조가 파운드리에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창 회장은 대만의 경쟁력은 뛰어난 생산성을 보이는 제조업에 있다고 봤다.”

이 같은 사업 구조로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은 무엇이었나.
“파운드리라는 한 우물만 판 덕에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오직 파운드리만 하기 때문에 TSMC는 최종 소비자를 놓고 고객사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 고객사로부터 의뢰받은 제품을 생산할 뿐이지, 최종 소비자에게 TSMC의 이름으로 된 완제품을 팔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첨단 기술기업을 통틀어 수주받은 물품을 생산하기만 하는 회사는 TSMC가 유일하다. TSMC는 반도체 업계 전체가 공유하는 거대한 공장인 셈이다.”

파운드리 사업만 하는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자이면서 스마트폰 제조사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도 하지만, 애플 등 파운드리 고객사와 모바일 완제품을 놓고 경쟁하는 위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파운드리 수주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분석도 있다. TSMC가 애플이 내년에 양산할 스마트폰 AP인 A13 칩을 독점 수주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TSMC에 물량을 몰아주려고 한다는 분석이다.

TSMC는 세계 최초로 7나노 공정을 적용한 스마트폰 AP인 화웨이의 ‘기린 980’을 생산해 삼성전자를 기술로 앞질렀다.

파운드리업체가 제조능력만으로 경쟁사와 차별화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차별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팹리스가 설계를 다 끝낸 뒤에 도면을 넘겨주면 그제야 제조공정에 들어가는 것이 파운드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TSMC는 팹리스가 설계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해당 도면이 TSMC 공장에서 구현이 가능한지 확인해주고, 팹리스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때 함께 고민해 솔루션을 찾아주기도 한다. TSMC와 고객사는 마치 한 회사 안에서 일하는 다른 부서 사람들처럼 협업한다. 몇 십 년간 협업능력을 강화해 나가면서 TSMC를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이 생태계야말로 우리의 경쟁력이자 차별점이다.”

신주(대만)=이민아 기자, 하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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