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우 한국외대 중국어, 대우차이나 대표, 세종북경투자자문유한회사 이사장(현)
전병우
한국외대 중국어, 대우차이나 대표, 세종북경투자자문유한회사 이사장(현)

“중국 대기업의 최대 강점은 아직도 대부분 창업 세대가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못 먹어도 고(Go)’라는 식의 도전정신이 충만하다. 반면 우리 기업은 3~4세대로 내려오면서 창업정신이 약해졌다.”

전병우(67) 원동투자그룹 대표는 탤런트 노주현씨의 친형으로도 잘 알려진 노용악 전 LG전자 부회장, 설영흥 전 현대차 중국사업총괄 상임고문, 김동진 포스코차이나 전 사장 등과 함께 오랫동안 재계 1세대 중국 전문가의 한 축을 담당했다.

첫 직장인 대우가 1984년 중국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듬해 관련 업무에 발을 들였고, 이후 상하이 지점장, 베이징 지사장, 대우차이나(대우인터내셔널의 중국 지주회사) 대표를 역임하는 등 33년간 중국 전문가로 한 우물을 팠다.

2004년 대우 동료 세 명과 함께 원동투자그룹을 창업, 이후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과 중국 기업의 국내 진출을 돕는 가교 구실을 하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 허베이성과 산둥성에 각각 사무소를 두고 있다. 상하이 지사는 매출 1조5000억원의 중견 철강 업체인 고려제강의 중국 사업을 대행하고 있다. 원동투자그룹이 한국 진출을 도운 중국 기업 중에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도 있다.

상하이 푸둥지구 중심가 스지다다오(世紀大道)의 전망 좋은 사무실에서 전 대표를 만났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도 한 해의 절반을 중국에서 보낸다고 했다.


대우 지점장 시절 상하이의 모습을 기억하나.
“그때만 해도 상하이에 한식당이 한 곳뿐이었다. 홍차오(紅橋) 레인보우호텔 1층에 있던 ‘한성관’이란 곳인데, 거기 가면 상하이에 있는 한국인 대부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만큼 발전이 더뎠다. 상하이가 지금 같은 국제도시로 본격 개발되기 시작한 건 1996년부터다.”

김우중 회장 시절, 대우는 중국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한창 잘나갈 때 대우는 중국 56개 사업장에 36억달러(약 4조원)의 자금을 운용했다. 그중 27억달러가 대우 자금이었다.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였다. 주재원이 330명, 현지 채용 인원은 3만 명에 달했다. 워낙 규모가 커서 대우가 망하고 정리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이 급성장한 건 대우 덕이 크지 않았나.
“중국의 지리(吉利)자동차가 스웨덴 볼보에 이어 런던의 전기택시 회사인 ‘EV컴퍼니’까지 집어삼켰고, 벤츠의 모그룹인 다임러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지 않나. 지리자동차 초창기에 옛 대우차 출신이 대거 스카우트돼 일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고 나서 대우차 출신을 대거 내보낸 것이 발단이었다. 연봉만 20만달러(약 2억2600만원)를 받고 지리자동차로 스카우트된 대우차 임원도 있었다. 20년 전엔 엄청난 액수였다.”

중국에서 우리 기업의 현주소는 어떤가.
“사면초가의 어려움에 빠졌다. 같이 경쟁하기엔 중국 기업이 너무 커져 버렸기 때문이다. 기술력도 과거와 달리 우리보다 앞선 분야가 적지 않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보고 물밀 듯이 몰려온 외국 기업을 중국 정부가 잘 이용했다. 때로는 잘 봐주는 척하다가도 사업 허가를 가지고 애를 먹이기도 하는 사이, 알게 모르게 앞선 기술을 흡수하며 무섭게 성장했다. 더 무서운 건 중국 주요 기업은 아직 거의 예외 없이 창업 1세대가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도전정신이 충만하다. 그런데 우리 기업은 3~4세대로 내려오면서 창업정신이 많이 약해졌다. IMF 경제위기(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기술 투자를 늘리기보다 쉬운 길만 가려 하는 사이 국가 경쟁력은 바닥을 향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아직 반전의 희망이 있을까.
“우리가 중국에서 경쟁력이 앞선 분야라곤 이제 반도체 하나 남았다. 그것마저 흔들리면 큰 위기가 올 것이다. 한국 시장에 대한 중국 기업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20여 년간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일본은 기술력이 우리보다 많이 앞선다.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다.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중국에 좋은 인적 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대기업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데 중소∙중견기업이 문제다. 접근법도 과거와 달라야 한다. 중국은 공산당이 이끌지만 56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이기 때문에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우리보다 더 융통성이 있다. 장사꾼 기질이라고 할까? 따라서 어설픈 기술과 자본력을 앞세워 진출해 봐야 희망이 없다.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경공업 등 중국이 아직 못하는 분야에 빨리 진출해 현지 기업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조직 관리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국내 기업이 중국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본사 사장단이 중국 조직의 업무에 사사건건 간섭하려 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중국 본부장이라 해봐야 인사권이나 예산권이 없으면 현지에서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현지 시장에 맞는 제품을 시기적절하게 공급하고 원부자재도 현지에서 공급받는 등 현지화가 필수적인데 그러려면 현지 조직이 힘이 있어야 한다.”

사드사태 여파와 미·중 무역전쟁 등 극복해야 할 악재가 많다.
“사드 여파는 상하이 이남 지역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된다. 베이징을 비롯한 북쪽 지역은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민심이 많이 좌우되는 곳이기 때문에 조금 남아있지만, 그래도 많이 약해졌다. 미∙중 갈등은 오래 지속될 것 같다. 결국 중국이 미국에 많이 양보하겠지만 트럼프가 선뜻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큰 사업을 하던 사람이라 욕심이 많은 것 같다.”

젊은 중국인과 사업할 때도 ‘관시(關係)’가 중요한가.
“예전보단 덜 하지만, 여전히 중요하다. ‘관시’라는 표현을 쓸 뿐이지 인맥이 사업에 도움이 되는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중국은 땅덩어리가 넓고 지역마다 문화 차이도 크기 때문에 개인 인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당 분야와 지역에 경험 많은 고문단을 잘 활용해야 한다. 고문단 활용은 중국에서 현지화 전략의 초석이다.”

중국과 국교도 없던 시절에 중국어를 전공으로 택한 이유는.
“과외지도를 해주던 고교(경북고) 7년 선배가 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장교 복무까지 마치고 일간지 판촉 직원으로 입사했다. 당시로선 이해하기 힘든 진로 선택이었는데 ‘남과 불필요한 경쟁은 안 하고 사는 게 좋다’는 선배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분이 내가 외대 입시를 준비할 때 ‘남들 다 가는 영어과보다 중국어과를 가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그렇게 했다. 사실 다닐 때는 후회도 했다. 나중에 대우가 중국 비즈니스를 본격화하면서 담당자를 찾기 위해 전 직원 인사카드를 뒤졌는데 중국어를 전공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고 했다(웃음).”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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