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 전 10초, 9초… 3, 2, 1, 발사 점화!”

11월 28일 오후 4시 국민의 눈이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로 쏠렸다. 누리호 시험 발사체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순간이었다. 2013년 나로호 발사에 성공한 지 5년 10개월 만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11번째로 독자 개발 우주 로켓 기술을 확보할 가능성이 커진 중요한 순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이뤄낸 쾌거에 온 국민이 박수를 보냈다.

정확히 같은 시각 유럽 대륙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 11월 27일 오전 8시 룩셈부르크 시티에 있는 유러피안 컨벤션센터에 세계 우주 산업계 관계자 수백 명이 모였다. 28일까지 이틀간 열린 ‘뉴스페이스 유럽 2018(New Space Europe 2018)’에 참석한 인파였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 겨울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아직 어둑한 아침이었지만, 행사장 내부는 참석자들의 열기와 흥분,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콘퍼런스는 오전 9시부터였지만, 주최 측은 그보다 앞선 오전 8시부터 강연장 바깥 로비에 커피와 주스 등 음료부터 크루아상, 요구르트 등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뷔페식으로 제공했다.

로비를 가득 채운 사람은 저마다 끌리는 음식을 접시에 담은 채로 주변 사람들과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빴다. “어느 회사 소속이죠?” “어떤 분야에서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앞에, 옆에, 뒤에 선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분주히 인맥을 쌓았다. 이들은 각자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즉석에서 협력 아이디어를 나누고는 눈에 띄는 아는 얼굴을 새로 만난 인물에게 소개하는 식으로 네트워킹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뉴스페이스 유럽’ 콘퍼런스는 미국의 ‘스페이스 프론티어 재단’이 매년 미국에서 주최하는 ‘뉴스페이스 콘퍼런스’의 유럽판이다. 유럽에서는 룩셈부르크 정부가 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해 올해로 2회째를 맞았다. 지난해 250명에서 올해 약 500명으로 증가했다. 도대체 ‘뉴스페이스’가 무엇이기에 이 많은 사람이 유럽의 소국 룩셈부르크에 모이게 됐을까.


우주 산업 ‘골드러시’

‘뉴스페이스 유럽’ 콘퍼런스는 세계 우주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행사였다. 정부 주도의 ‘올드스페이스(Old Space)’에서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New Space)’로 산업의 주도권이 바뀌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1957년 소비에트 연방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면서 시작된 국가 주도의 우주 경쟁에 민간이 뛰어든 후 본격적인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뉴스페이스의 문을 연 것은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와 블루오리진의 제프 베이조스다. 실리콘밸리의 두 부자는 이미 우주 산업에 발을 깊이 담그고 있다. 2000년 베이조스, 2002년 머스크가 “저렴한 로켓을 만들어 우주 여행을 하겠다”는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나왔을 때만 해도 민간기업이 천문학적인 돈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막대한 돈을 우주에 쏟아부어 발사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한 번 쓰고 버렸던’ 발사체를 회수해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스페이스X의 ‘팰컨 9’을 한 번 쏘아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은 6200만달러(약 700억원)다. 위성 수십 대를 한꺼번에 실어 올릴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괴짜’라고 놀림당하던 두 사람의 회사는 내년 인류 최초 우주 관광 사업 현실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렇게 정보기술(IT) 산업에서 부를 쌓은 억만장자들이 뉴스페이스 흐름을 만들었다면, 최근에는 우주 스타트업들이 주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발사 비용 감소로 사업성이 생기면서 위성을 이용한 각종 분야에 민간기업의 참여가 빨라지고 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관련 스타트업으로는 소형 발사체 제작 업체인 벡터와 로켓랩, 인공위성 제작 서비스 업체 스파이어 글로벌, 원웹 등이 있다.

‘21세기 우주판 골드러시’를 꿈꾸는 이들이 노리는 것은 수천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기대되는 우주 시장이다. 모건스탠리는 현재 3500만달러(약 400조원) 규모의 우주 시장이 2040년 1조1000억달러(약 1242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도 “(상업 목적의) 우주 산업이 20년 이내에 수조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뉴스페이스 흐름의 영향으로 우주 스타트업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브라이스텍에 따르면 2015~2017년 연간 20억~30억달러(약 3조원)의 자금이 우주 스타트업에 투자됐다. 우주 스타트업에만 전문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이 180곳에 이르는데, 이 중 61%가 지난 6년 사이 설립됐다.

우주 산업에 대한 관심과 패러다임 변화는 이번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행사 참석자 수와 면면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참석자가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한 데다, 연사나 참석자가 우주 산업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나 기업이었다. 로켓랩과 벡터 같은 우주 스타트업 대표 주자뿐만 아니라 에어버스 디펜스&스페이스, 블루오리진, 아리안스페이스, 엔비디아 등 주요 기업이 참석했다.

한국에서 온 한 행사 참석자는 “연사들이 의미 있는 인물로 채워져 기류 변화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크 세레스 룩셈부르크 우주국 국장은 “그동안 못봤던 새로운 얼굴이 많이 보이는데, 우주 산업에 새로 진입한 관계자가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콘퍼런스 참석자들이 일본 ‘아이스페이스’의 달 탐사 로봇 ‘로버’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룩셈부르크 경제부
콘퍼런스 참석자들이 일본 ‘아이스페이스’의 달 탐사 로봇 ‘로버’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룩셈부르크 경제부

소형 위성·발사체 시장 급성장

특히 올해 콘퍼런스에는 소형 위성을 활용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대거 참석했다. ‘소형 위성 전쟁’에 비견될 만했다. ‘큐브샛’으로 불리는 소형 위성은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위성이다. 기존의 중대형 위성과 비교했을 때 위성이 보내오는 데이터의 질이 다소 떨어진다. 다만 만들기가 어렵지 않은 데다, 제작 비용이 저렴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스파이어 글로벌은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린 60개 이상의 소형 ‘군집 위성’을 만들어 세계 선박 이동 경로를 알리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플래닛랩은 우주 공간에서 150대 넘는 소형 위성을 운용한다. 미국 원웹은 통신중계용 소형 위성을 띄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유로컨설트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사된 소형 위성은 1187대인데, 2027년까지 7038대를 더 우주로 쏘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마켓워치는 현재 29억2000만달러(약 3조3000억원) 규모의 소형 위성 시장이 2022년 75억3000만달러(약 8조5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봤다.

소형 위성 시장의 급성장으로 위성을 쏘아 올리는 소형 발사체 시장도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길이 10m 정도의 소형 발사체는 ‘팰컨 9’ 발사 비용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행사 첫날 콘퍼런스 토론자로 참가한 미국·뉴질랜드 합작 스타트업 로켓랩 관계자가 청중의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행사일 불과 보름 전인 11월 11일 스페이스X에 이어 두 번째로 상업용 로켓 ‘일렉트론’ 발사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로켓은 기존 로켓의 4분의 1 규모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100종이 넘는 소형 발사체가 개발되고 있지만, 일렉트론은 상업 발사에 성공한 첫 사례가 됐다. 샌디 터티 로켓랩발사부문 디렉터가 “2020년부터 매주 ‘일렉트론’을 발사하겠다”고 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로켓랩은 ‘우주의 페덱스(항공 특송 업체)’가 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로켓랩에 앞서 연단에 오른 또 다른 소형 발사체 제작사 벡터의 제임스 캔트렐 창업자도 “내년 초 처음으로 ‘벡터-R’의 상업용 발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스페이스X 창업 멤버인 캔트렐의 발언에 초소형 위성·발사체 우주 시장이 무르익을 것이란 기대감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콘퍼런스 휴식 시간마다 가장 많이 붐빈 곳 중 하나는 일본의 우주 스타트업 ‘아이스페이스’ 전시 부스였다. 부스가 행사 대부분이 진행됐던 메인 콘퍼런스장 바로 앞 ‘명당’에 자리 잡고 있었던 데다, 달 탐사 로봇인 ‘로버’의 실물이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아이스페이스는 2021년 로버를 달에 착륙시켜 일본 최초로 달을 탐사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4개의 은색 바퀴가 달린 ‘로버’는 어린이가 갖고 노는 조금 큰 장난감 자동차 같았다. 양손으로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 회사 관계자가 로버를 들고 다닐 때마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보냈다. 한 행사 참석자는 “달에서 다닐 이 로봇이 이번 콘퍼런스의 인기 스타”라고 했다.


日 우주 스타트업 두각

일본의 소형 위성 제조 업체 액셀스페이스도 이번 콘퍼런스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초소형 위성을 여러 개 쏘아 올려 여기에서 보내오는 데이터를 농가나 토지 관리 회사 등에 제공하는 벤처기업이다. 도쿄대에서 설립했다. 지구 관측 위성 관련 토론자로 무대에 오른 야마자키 야스노리 액셀스페이스 최고사업개발책임자는 사업 방향과 관심사 등에 대해 질문 세례를 받았다. 함께 토론자로 올랐던 엔비디아 관계자는 “요즘 액셀스페이스를 모르는 농가가 없을 정도”라고 치켜세웠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 껴 두각을 보이지 못하던 일본의 우주 산업은 민간 벤처를 앞세워 ‘돈이 될 만한’ 사업을 만들어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일본의 스타트업이 우주 분야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상업화에 한발 더 다가선 것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사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향후 5년간 1000억엔(약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우주 산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스타트업 초기 지원을 강화하고 해외 진출 지원, 기술 협력 제공 등이 골자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2016년 ‘우주활동법’을 만들어 정부만 할 수 있던 위성 발사 등 우주 산업을 민간에 개방했고, 이듬해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소형 로켓 기술을 민간에 제공했다. 덕분에 액셀스페이스는 위성 개발 비용을 최소 100분의 1에서 최대 10분의 1까지 줄인 소형 인공위성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각국이 민간 우주 시장을 잡기 위해 열전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은 이런 흐름에서 크게 동떨어져 있다. 여전히 정부 주도로 관련 사업이 추진되는 탓이다. 재사용 발사체나 초소형 위성 등 새로운 분야의 우주 산업 자체가 아직 형성되지 못한 단계다. 이달 6일 들어서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대한민국 우주 산업 전략’ 공청회를 열었다. 겨우 걸음마를 뗀 셈이다. 전문가들은 민간기업이 정부 주도 프로젝트에 참여하더라도 프로젝트가 끝나면 곧바로 흩어져 생태계 구축이 어렵다고도 지적했다.

반면 콘퍼런스 행사장에서 눈에 띄는 동양인은 일본인과 중국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스타트업 관계자뿐만 아니라 학계, 학생들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아시아 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협업을 약속했다. 샌디 터티 디렉터는 ‘이코노미조선’에 “아시아 시장, 그중에서도 한국은 민간 우주 시장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면서도 “꼭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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