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정부는 해외 유망 기업과 인재를 자국으로 불러모아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우주 산업도 마찬가지다. 11월 27일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뉴스페이스 유럽 2018’ 콘퍼런스 현장에서 활발하게 인맥을 쌓고 있다. 사진 마리에 드 데커
룩셈부르크 정부는 해외 유망 기업과 인재를 자국으로 불러모아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우주 산업도 마찬가지다. 11월 27일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뉴스페이스 유럽 2018’ 콘퍼런스 현장에서 활발하게 인맥을 쌓고 있다. 사진 마리에 드 데커

지난 9월 신설된 룩셈부르크 정부 기관 ‘룩셈부르크우주국(LSA)’은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우주 산업 중심지’를 현실로 만드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조직은 유럽연합우주국(ESA)에서 일했거나 관련 산업계에서 경력을 가진 핵심 인재로 구성됐다. 그런데 20명 규모의 이 조직에는 룩셈부르크인이 아닌 외국인 직원도 많다. 국가 자원이 집중되는 핵심 정책 추진 부서의 인력이 자국인뿐 아니라 외국인까지 동원돼 꾸려진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세계 노동생산성(이하 생산성) 순위에서 아일랜드(95.45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룩셈부르크의 생산성은 93.72달러인데, 이는 현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시간당 93.72달러어치의 산출량을 냈다는 뜻이다. 한국(34.49달러) 노동자의 2.7배에 달하는 생산성을 낸 것이다. 미국과 독일이 각각 69.63달러, 67.98달러를 기록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8년 룩셈부르크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11만3950달러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스위스(8만3580달러)와도 격차가 크다. 한국은 3만2050달러다.

이 작은 나라가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을 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룩셈부르크 시티에 본부를 둔 유럽투자은행(EIB)에서 근무하는 독일인 마르셀 세라를 만났다. 그는 매일 독일에서 룩셈부르크로 출퇴근한다. 그가 사는 독일의 고도(古都) 트리어는 룩셈부르크 시티 동북쪽 국경과 맞닿아 있다.

세라는 매일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7시 15분에 떠나는 버스를 타고 옆 나라로 출근한다. 한 시간쯤 버스를 달려 룩셈부르크 시티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8시 15분쯤이다. 유럽연합(EU) 본부 건물이 모여 있는 키르시버그까지는 올여름 새로 생긴 트램을 이용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각은 보통 오전 8시 30분. 독일 집 대문을 나서 룩셈부르크 직장에 있는 자신의 책상까지 1시간 15분 정도 걸리는 셈이다.

세라는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경제학 학사를 마치고 괴팅겐대에서 국제경제학 석사를 마친 인재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말레이시아·푸에르토리코 등에 거주한 경험 덕분에 모국어인 독일어는 물론 스페인어·영어·프랑스어까지 능통하다. 그런 그는 높은 임금 수준과 질 좋은 직장, 일·생활 균형에 끌려 룩셈부르크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처럼 룩셈부르크 경쟁력의 원천은 세라처럼 인접국에서 거주하면서 일은 룩셈부르크에서 하는 외국인들이다. 룩셈부르크는 지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 벨기에 3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도인 룩셈부르크 시티에서 벨기에 국경 도시인 아를롱까지 약 32㎞, 자동차로 30분 거리다. 독일 트리어는 약 49㎞, 프랑스 메스는 약 64㎞ 떨어져 있어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오갈 수 있다.

실제로 룩셈부르크 경제 구조를 보면 인구(약 60만 명) 중 외국인(28만8234명)이 차지하는 비율이 48%에 달할 정도로 높다. 길 가다 마주치는 2명 중 1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그런데 세라처럼 룩셈부르크에 살지 않으면서 룩셈부르크로 출퇴근하는 ‘통근자’가 18만8100명에 달한다. 이들이 룩셈부르크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나라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펴는 정책도 생산성의 비결이다. 룩셈부르크에 자리 잡은 아마존·페이팔·애플아이튠즈·굿이어의 유럽 본부는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세제 혜택을 활용한다. 룩셈부르크의 법인세는 29%로 주변국과 비슷하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공제를 통해 실효세율을 크게 낮췄다. 덕분에 기업은 높은 수준으로 임금을 유지할 수 있다.

룩셈부르크는 노동 환경이 좋은 나라로도 유명하다. 룩셈부르크 노동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1518시간으로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 주변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OECD 평균 근로시간은 1759시간, 한국은 2024시간이다. 짧은 시간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해 단위 시간당 생산성이 높다는 의미다. 기업마다 다르긴 하지만 EIB의 경우는 노동자 의지에 따라 주당 근무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일주일에 두 차례 출근해도 정직원 신분은 유지된다.

룩셈부르크 정부는 언어 교육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더 많은 해외 인재를 끌어모으고 자국 인재도 다양한 언어 사용 능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다.

룩셈부르크 정부는 1985년 룩셈부르크어·독일어·프랑스어 등 3개 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트라이링구얼(Trilingual)’ 교육 과정을 채택하고 있다. 최근 브렉시트 이후 유입된 금융 인력을 흡수하기 위해 공립학교 네 곳을 영어 학교로 전환했다. 영어를 기본으로 쓰는 공립학교로 룩셈부르크어·독일어·프랑스어까지 가르칠 예정이다. 룩셈부르크 교육부 관계자는 ‘이코노미조선’에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교육 시스템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plus point

높은 생산성이 통계적 착시?

룩셈부르크에 상주하지 않고 국경 밖에서 통근하는 외국인 인력은 약 19만 명이다. 나라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가적인’ 인력이 룩셈부르크 경제를 함께 떠받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룩셈부르크 생산성이 높은 것이 일종의 ‘통계적 착시’라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생산성을 따질 때 내·외국인 개념이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영토 내에서 생산된 최종 생산물의 시장 가치 합’을 ‘투입된 노동 시간’으로 나눠 생산성을 계산하는데, 통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계산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입량(노동 시간)당 산출량(GDP)을 계산할 때 외국인 노동자라 하더라도 룩셈부르크에서 생산 요소로 ‘쓰이고’ 있다면 이를 계산에 넣는 것이 맞다”면서 “바로 한국 상황에 대입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외국인 인력을 자국 경제 활동 주체로 끌어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한 예”라고 설명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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