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시티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의 유럽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룩셈부르크 시티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의 유럽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2003년 밥 컴포트 아마존 세금부문 총괄은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지역을 찾는 데 고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깊은 고민은 장 클로드 융커 당시 룩셈부르크 총리를 만나면서 단번에 해결됐다. 영국 신문 가디언에 따르면 융커 총리는 밥 총괄에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면 내게 다시 와서 말해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총리까지 나서 지원사격을 펼친 덕분에 유럽과 아시아 시장 등을 관장하는 아마존 유럽 지사는 룩셈부르크에 자리 잡았다.

룩셈부르크 정부가 적극적이었던 이유가 아마존이 글로벌 공룡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벤처기업 컨텍이 룩셈부르크 진출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도 현지 정부의 적극적인 러브콜 덕분이었다. 이성희 컨텍 대표는 “2017년 3월쯤 한국에 상주하는 룩셈부르크 경제부 산하 기관으로부터 먼저 연락을 받았다”면서 “이후 진출을 준비하면서 만나는 정부 관계자들이 오히려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먼저 묻고 도와주려는 태도를 보였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면적이 서울의 4배에 불과한 소(小)국 룩셈부르크. 이 작은 나라에 아마존, 페이팔, 애플 아이튠스, 굿이어, 라쿠텐, 화낙 등 글로벌 기업들의 유럽본사가 들어서 있다. ‘유럽의 실리콘밸리’라는 별칭까지 얻을 수 있었던 포인트는 기업의 원활한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돕는’ 공무원의 ‘을(乙) 마인드’다. 에티엔 슈나이더 경제부총리는 과거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룩셈부르크에선 기업이 ‘왕(king)’이고, 공무원은 ‘하인(servant)’”이라며 “전화 한 통이면 중소기업인이 총리나 장관과 일대일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태도 덕분에 룩셈부르크는 2018년 미국 잡지 ‘US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가 뽑은 ‘친기업 성향의 정부를 가진 나라’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보다 한 계단 더 올랐다.

룩셈부르크 현지에서 만난 국내외 기업인들은 정부의 기업 친화적인 태도를 특이할 만한 점으로 꼽았다. 해외 기업들의 현지 정착 등 기업 관련 컨설팅 비즈니스를 하는 박승은 럭스코 대표는 “많은 한국 기업가들이 와서 업무할 때 정부 관계자의 친절함과 적극성에 깜짝 놀라곤 한다”고 전했다. 현지에 법인을 설립한 A 기업 관계자는 슈나이더 총리로부터 “(룩셈부르크에) 들어올 때는 말하지 않더라도 떠날 땐 반드시 알려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어떤 문제 때문에 룩셈부르크를 떠나는지를 확인해 그 부분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각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도 입 모아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환경을 강조했다. 경제부 산하 혁신지원센터 ‘럭스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무엇보다 정책을 정하는 결정권자가 기업과 가까이 있으면서 신속하게 결정해 준다”고 했다. 이를 위해 정부 부처 공무원의 임기도 길다. 전문성뿐 아니라 민간기업과 신뢰를 쌓기 위해서다. 장관을 제외하면 실무자들은 10~30년씩 담당 분야를 맡아 일하고 있다. 한때 룩셈부르크 정부는 다른 유럽 국가처럼 공무원 순환보직제 도입을 검토했지만,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 기업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해 제도 도입을 접었다.

하지만 정부의 의사 결정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법인 설립이 쉬운 것은 아니다. 외국 국적의 사람이 식당을 하나 연다고 하면, 은행 계좌를 여는 데 한 달 이상, 법인 허가를 받는 데 적게는 두 달에서 석 달까지도 걸린다. 현지에서 관광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언실 대표는 “법인을 세우는 데 석 달이나 걸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이안 크레스트웰 럭스이노베이션 국제협력팀 담당자는 “기업들이 룩셈부르크에 들어와 정말 사업할 자질이 있는지, 우리와 낼 수 있는 시너지가 무엇인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면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함께 오래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정부와 기업의 거리가 가깝지만 유착관계는 철저히 배제한다. 나라가 작은 데다, 모든 과정을 철저히 공개적으로 진행해 ‘나쁜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특히 지난 2013년 은행 고객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비밀 유지 법규’를 폐지하는 ‘자금세탁 방지법’을 신설하면서 금융 투명성을 강화했다.


plus point

서울 4배만 한 나라에 中 은행 7개

룩셈부르크 시티에 있는 중국공상은행과 초상은행 간판.
룩셈부르크 시티에 있는 중국공상은행과 초상은행 간판.

지난해 10월 룩셈부르크 국민에게 다소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중국의 ‘레전드홀딩스’가 현지 은행인 ‘방크 인터내셔널 룩셈부르크(BIL)’ 지분 90%를 14억8000만유로(약 1조9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BIL은 162년 역사를 자랑하는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다. 지분을 인수한 레전드홀딩스는 중국 PC 제조사인 레노버 모기업이다.

룩셈부르크에 중국 자본이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실제로 11월 29일 룩셈부르크 수도인 룩셈부르크 시티 중심부 곳곳에서 중국 은행 간판이 눈에 띄었다. 재미삼아 시내를 오가며 눈에 띄는 중국 은행 지점을 세어 보니 5곳이나 됐다. 마음먹고 한 바퀴 걸어다녀도 3시간이면 충분한 도심 환경을 고려했을 때, 많은 수다.

주(住)룩셈부르크 중국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8년 룩셈부르크에 진출한 중국 은행은 중국농업은행·중국은행·교통은행·중국건설은행·중국광대은행·중국초상은행·중국공상은행 등 총 7개다. 우리의 금융감독원 격인 ‘CSSF’가 내주는 은행업 허가증을 받으면 유럽연합(EU) 다른 회원국으로도 진출할 수 있는 배경이 작용했다. 한 관계자는 “나라가 작다 보니 CSSF와 빠르게 협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정책도 중국계 자본이 룩셈부르크에 진출하는 데 힘이 됐다. 최근 유럽 내부에서 ‘중국의 배만 불린다’며 이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룩셈부르크 정부는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다. 에티엔 슈나이더 룩셈부르크 경제부총리는 지난 8월 중국국제텔레비전(CGTN)과 인터뷰에서 “일대일로 정책은 양국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기회”라면서 “이 정책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룩셈부르크는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비(非)아시아권 첫 번째 회원국이다.

덕분에 중국인은 과거보다 더 빠르게 룩셈부르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다. 김언실 대표는 “중국인이 현지에 진출한 자국 은행으로부터 자금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이미 강력하게 자리 잡은 자국민 네트워크를 토대로 발빠르게 사업 관련 정보를 수집해 사업체를 차리는 등 룩셈부르크 사회에서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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