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왼쪽) 소프트뱅크 사장과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10월 4일 일본 도쿄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일본을 대표하는 두 기업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사업을 함께하겠다며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했다. 사진 AP연합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왼쪽) 소프트뱅크 사장과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10월 4일 일본 도쿄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일본을 대표하는 두 기업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사업을 함께하겠다며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했다. 사진 AP연합

10월 4일 일본 도쿄의 기자회견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본 경제를 움직이는 두 명의 거인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사장과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을 위한 합작회사(모네 테크놀로지)를 설립하겠다고 밝힌 자리였다. 손 사장과 아키오 사장은 모두 분홍색 계열의 넥타이를 매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약간 긴장한 듯 얼굴이 붉게 물든 두 사람은 서로 90도로 인사하는 진풍경까지 보였다.

아키오 사장은 “손 사장을 만난 것은 20년 전이었다. 나는 과장이었고, 손 사장은 사장이었을 때였다”라고 회고했다. 아키오 사장은 또 “(최근에)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그 분야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을 하나씩 열 때마다 손 사장이 반드시 그 앞에 있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도 던졌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으로 대변되는 자동차산업의 격변기에 손 사장이 가장 먼저 핵심을 꿰뚫는 투자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가 먼저 손 사장을 찾아와 손을 내민 이유이기도 하다. 소프트뱅크가 운영하는 비전 펀드(100조원)가 투자한 기업들을 보면 도요타 사장의 말이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율주행에 반드시 필요한 그래픽 칩을 생산하는 엔비디아, 사물인터넷(IoT) 전문 반도체 설계회사 ARM, 지도 제작회사인 맵박스(MapBox) 등이 지난 수년간 비전펀드가 투자한 회사들이다.

손 사장도 도요타와의 제휴에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도요타와의 제휴로 새롭고 진화한 모빌리티를 만들 것”이라며 “(도요타와의) 출자회사는 제1탄이고, 앞으로 제2, 제3탄의 제휴가 있을 것”이라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와 소프트뱅크가 전략적 제휴를 맺는 모습은 세계로 생중계됐다. 세계 일류 자동차회사가 정보기술(IT)기업인 소프트뱅크와 제휴한다는 것에 일반인은 물론 업계 전문가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결국 올 것이 왔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도요타는 왜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았을까? 일본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도요타 쪽에서 먼저 소프트뱅크에 제휴하자고 적극적으로 요청했다고 한다. 경영문화도 역사도 다르고, 본질적으로 회사의 사업분야가 전혀 다른 두 회사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일본 업계에서는 대단히 드문 현상이다. 그것도 도요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 더더욱 그렇다.


실적도 최대, 위기의식도 최대

도요타가 손을 먼저 내민 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지금까지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쥐어 온 자동차업체가 IT업체에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기 위해서 선제적으로 ‘적과의 동침’이라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공유경제(Shared Economy)의 바람을 다른 업체들보다도 빨리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미 미국의 우버(Uber), 중국의 디디추싱, 동남아의 그랩(Grab), 인도의 올라(Ola) 등 차량공유서비스업체들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GM의 자율주행개발회사 크루즈 오토메이션(Cruise Automation), 미국의 P2P 차량공유업체 겟어라운드(Getaround) 등에도 출자했다. IT업체들에 의한 미래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도요타가 손을 내민 것이다.

현재의 자동차업계를 살펴보면, 도요타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우등생 반열에 있다. 폴크스바겐을 위시해 BMW·벤츠 등 독일 빅스리(Big 3)가 배기가스 문제 등으로 고전하고, 르노·PSA(푸조-시트로엥그룹) 등 프랑스 업체들의 판매 부진, 미국 GM·포드의 글로벌 판매 감소 등 주요 경쟁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도요타는 꿋꿋하게 판매·이익 양쪽 모두 호조다. 바꿔 말하면, 자동차산업에서 도요타 홀로 꽃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도요타조차도 2025년, 2030년을 내다봤을 때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일본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자동차 산업이 완성차업계 주도에서 IT업계 주도로 이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살아 남으려면, 완성차업체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피라미드형 산업구조의 꼭대기를 점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B2C(Business to Customer)인 자동차산업의 구조가 공유경제가 되면, B2B(Business to Business)로 전환되어 완성차업체가 IT업체를 떠받치는 서플라이어로 전락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도요타를 비롯한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자동차를 안정적으로 팔 수 있는 시장기반을 확보해야 하는 절박함을 늘 안고 있다. 앞으로 공유경제가 더 활성화되면 개인이 차를 사는 것이 줄고, 여러 사람이 차를 공유해서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공유서비스업체에 휘둘리게 되는 상황이 되면, 도요타의 판매 대수나 이익 감소는 피하기 어렵다. 이렇게 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도요타가 소프트뱅크를 파트너로 삼았다는 분석이다.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수많은 위기를 넘겨왔다. 한 일본 자동차업계 간부는 “지난 수십 년간 한 번도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하나의 위기를 넘기면 또 다른 위기가 오는 식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일본 자동차업계에 공통으로 닥친 가장 큰 위기로는 2007년 리먼쇼크,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들 수 있다. 그중 동일본대지진 때에는 주요 생산 거점의 피해로 인해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이 기능을 하지 못하는 등 피해가 컸다.

그러나 2012년 이후로는 일본 자동차산업이 전반적으로 회복 중이고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주요 업체들의 실적도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도요타는 2015년 회계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에 연결기준으로 사상 최대 영업이익인 2조8500억엔을 기록했다.

2018년 회계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에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0%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혼다도 2016년 회계연도에 사상 최대인 8600억엔의 영업이익을 달성했고, 2018년에도 같은 수준의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완성차업체들은 이 같은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산업 전반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독일 빅3가 들고나온 케이스(CASE) 즉 커넥티드(Connected), 자율주행(Autonomous), 차량공유(Shared), 전동화(Electrification)라는 새로운 트렌드, 미국의 우버 등이 앞장선 공유 모빌리티(Shared Mobility)라는 신개념 시장을 따라가기 위해 필사적이다.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 점점 더 많아져

일본 업체들의 움직임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완성차·부품업계 간 합종연횡, 즉 전방위 제휴다. 세계 자동차 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일본 자동차산업의 풍토 자체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각자 자기 브랜드 입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 변화가 지금까지의 완성차업계를 하나하나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서로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 앞으로의 험난한 산업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수 요소다. 회사들이 서로의 기술을 제휴라는 방법으로 공유하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움직임이 선명하다. 앞서 말한 도요타와 소프트뱅크의 제휴도 그러한 예다. 혼다나 닛산도 미국을 중심으로 공유 모빌리티 분야에 대한 준비와 시장 진출을 모색 중이다.

기존 사업 분야에서 업체 간 합종연횡도 눈에 띈다. 도요타는 마쓰다, 덴소와 함께 전동화 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2015년에 발표했다.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카,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수소연료전지차 등의 기술을 마쓰다에 제공하고, 마쓰다는 스카이액티브 기술을 도요타에 제공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한편 회사를 먼저 생각하는 노사문화도 혁신을 이루려는 일본 자동차 산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매년 봄이 되면 춘투(春鬪)라고 하여 임금협상을 진행한다. 한국에서라면 강성노조와 파업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일본에서는 의외로 평화롭게 협상이 진행된다. 노조와 회사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특히 회사의 경영상황에 탄력적으로 협력한다. 경영에 협력하는 노조의 자세는 일본 자동차업계에서 크게 평가받는 부분이다.

일본의 자동차업계에서 노사 관계가 협력적인 것은, 195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있었던 닛산자동차의 강성노조 문제가 주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30년간 지속됐던 닛산의 노사 대립은 당시 도요타보다 우위에 있던 닛산을 몰락하게 했고, 결국 닛산이 르노에 인수되는 원인이 됐다.

이러한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 일본 노조가 회사에 협력적인 자세로 가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큰 사건을 겪은 일본의 자동차업계는 똑같은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2008년 리먼쇼크 때나 2011년 동일본대지진, 유럽 재정위기 때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협력해 왔다. 자동차산업의 흥망을 가늠하는 주요한 척도가 건강하고 협력적인 노사관계라는 것을 노사 양쪽이 과거의 위기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산업의 전략은 ‘30년 뒤를 가정하고, 힘든 산업 환경 가운데서도 각 회사가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완성차업체 각 사가 서로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내놓고 보완하는 모습이다. 각종 규제와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일본 자동차업계인 것이다.


Keyword

포인(Fourin) 일본의 글로벌 자동차산업 조사회사. 포인이 발간하는 통계·분석 보고서, 글로벌·중국·일본·아세안 월보(月報)·연감은 업계 관계자들이 즐겨 참고할 만큼 신뢰도· 분석력이 높다. 조사 인력은 40여 명. 회사명은 초창기 영문명이었던 ‘International Industries Information Institute’, 즉 4개의 ‘In’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강복 연구위원은 한국 국적이며,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나고야대 대학원 졸업 후 포인 핵심 부서인 기획조사부에서 10여년간 한국·일본·아시아 자동차업계와 시장을 분석해 왔다. 이 연구위원은 작년 포인이 발간한 ‘현대자동차그룹 2025년 전략’ 특별 보고서의 주 집필자였다.

이강복 포인(fourin) 연구위원, 정해용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