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동차 부품업체의 공장이 가동이 중단된 채 텅비어 있다. 사진 이윤정 기자
한 자동차 부품업체의 공장이 가동이 중단된 채 텅비어 있다. 사진 이윤정 기자

한국에서 자동차산업은 특별하다. 제조업 생산의 13%를 담당하고 있으며, 전후방 연관 효과도 엄청나다. 철강·비철금속·유리 등 소재부터 운송·정비·광고·금융 등 서비스 그리고 건설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한국 경제 성장의 근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동차산업이 너무 급격하게 성장하는 바람에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지 못했다. 지금 이게 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여전히 단순 조립을 통한 완성차 제조 모델 중심이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공유자동차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며 빠르게 변신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모양새다. 완성차업체의 전략 부재, 부품업체의 경쟁력 약화에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정책, 후진적인 노사문제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부품업체, 완성차업체 믿다 경쟁력 상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완성차업체의 전략 실패에서 비롯됐다. 제품·시장 전략 실패가 판매부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미국과 중국 시장에 집중하면서도 그 시장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중저가 모델에 주력했는데, 이 때문에 빠르게 시장을 파고들었지만 다른 경쟁사와 가격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미국과 중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프리미엄 모델과 대형 SUV를 내놓지 못한 게 가장 큰 실패 요인이다. 주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한국 완성차업체들은 시장 개척과 제품 차별화에 모두 실패했다”며 “한국 자동차산업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상원 흥국증권 이사는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독일·일본과 중국 브랜드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제는 공유자동차 서비스 등 미래 전략도 적절하게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직적 하청 관계로 이뤄진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의 관계도 새롭게 개편해야 한다. 부품업체들은 국내 완성차업체에만 부품을 납품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특히 단 한 곳의 완성차업체에만 부품을 공급하는 전속거래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한 축을 무너뜨렸다. 완성차업체들은 매 분기 또는 매년 납품 가격 인하라는 명목으로 경쟁의 부담을 대부분 협력업체에 전가했다. 협력업체들은 인하된 가격에 맞춰 낮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부품업체는 전속거래에 안주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보다 국내 완성차업체 눈치보기에 급급했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할 생각도 없었다. 내수 중심이다 보니 부품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혁신이나 R&D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김용진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은 “전속거래를 통해 안정적인 생산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젠 이런 폐쇄적 생산 네트워크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글로벌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의 도입으로 이젠 적군과 아군의 구분 없이 합종연횡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품산업의 과감한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완성차의 품질은 결국 부품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의 경쟁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시장은 작은데 동일한 부품으로 경쟁하는 회사가 많고, 규모가 너무 작아 경쟁력이 없는 회사도 많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부품업체의 91%가 매출 500억원 이하 중소기업”이라며 “이 정도 규모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조정펀드를 만들어 부품회사 여럿을 인수·합병해 규모를 키우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개별 기업 단위의 경쟁보다는 협업이나 협동을 통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구조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용진 회장은 “협동조합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개별 기업이 모여 협동조합을 결성하면 R&D, 유통, 디자인, 시제품 제작 등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뿐더러 완성차업체와의 협상력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인력의 글로벌화도 필수적이다. 김용진 회장은 “동남아 시장을 공략할 때 현지인들을 교육시켜 AS 요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영업·생산뿐만 아니라 AS 분야에서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진 노사관계 정착돼야

높은 인건비와 낮은 생산성으로 시름에 잠긴 한국 자동차산업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선진 노사관계 정착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강성 일변도의 자동차 노조 활동이 계속되면 고임금·저생산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결국 자동차산업 자체가 무너진다.

한때 위기에 직면했던 제너럴모터스(GM)와 르노는 노사가 상호 양보를 통해 경영 정상화를 이뤘다. 반면 푸조·시트로엥(PSA) 그룹은 고임금 구조에 따른 경영위기로 공장 폐쇄를 발표했으나 이에 반발한 노조가 파업으로 맞섰다. 하지만 계획보다 1년 앞서 공장은 폐쇄됐다. 선진적인 노사관계가 위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한국 자동차 업계도 유심히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김기찬 교수는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완성차 업계 역시 위기에 빠진 만큼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자동차 5개사의 매출액 대비 임금 비율은 12.3%로 도요타(5.9%), 폴크스바겐(9.9%) 등 경쟁 업체보다 훨씬 높다. 높은 임금구조에도 경쟁국 대비 생산성은 낮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1대 생산 시 투입시간은 26.8시간으로 도요타(24.1시간), GM(23.4시간)보다 많아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

김용진 회장은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직된 노동유연성은 글로벌 경쟁력 약화의 주요 원인”이라면서도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겠지만 30년 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짧은 시간 안에 풀긴 어렵다”고 말했다.


plus point

‘프리미엄’‘수소차’ 현대차의 2大 승부수

현대자동차가 위기 극복을 위해 ‘프리미엄’과 ‘수소연료전지차’를 승부수로 꺼내들었다. 현대차는 그동안 성장이 정체되면서 미래 먹을거리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런 우려를 그동안 뚝심 있게 밀고 나온 프리미엄차와 수소연료전지차로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프리미엄차 시장에 대한 도전은 제네시스 G70가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되는 등 제네시스 브랜드가 프리미엄차 시장에 어느 정도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제네시스 브랜드에 편입된 뒤에도 ‘EQ900’이라는 별도의 모델명을 쓰고 있던 에쿠스를 G90으로 흡수하면서 라인업을 강화했다.

수소차에도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2030년까지 수소차 생산량을 연 50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7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제네시스와 수소차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각별히 신경 쓰는 브랜드다.

정 수석부회장은 위기 돌파를 위해 세대 교체와 함께 차세대 리더를 대폭 늘렸다. 12월 12일 단행된 정기 임원 인사에서 연구·개발, 기술 분야의 승진자는 146명으로 전년 대비 9명 증가했다. 이는 향후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 스마트 모빌리티 등 미래 선도 기술 확보를 위해 우수 인재 육성을 지속하겠다는 정 수석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판매가 부진한 상황에서 영업·마케팅 부문은 최대 승진폭을 기록했는데, 이 역시 미국·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그룹 주요 계열사의 사장이 대부분 교체됐다.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적 쇄신을 추진함과 동시에 전문성이 검증된 경영진을 주요 계열사에 전진 배치시킨 것이다. 김용진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현대차그룹은 훨씬 젊은 조직으로 변신했다”며 “미래 사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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