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양(Christian Yang) 서던캘리포니아대 마샬 스쿨MBA, 알리스타(Allistar) 매니징 디렉터
크리스천 양(Christian Yang)
서던캘리포니아대 마샬 스쿨MBA, 알리스타(Allistar) 매니징 디렉터

현대자동차는 최근 글로벌 2대 주력 시장인 중국과 미국 양쪽에서 부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차량을 투입해 대당 판매 가격과 현대차 전반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제네시스 월 판매 대수가 1000대를 넘지 못하는 등, 고전 중이다. 한국과 미국 자동차 시장에 모두 밝은 크리스천 양 재미(在美) 자동차 컨설턴트에게 장기적으로 제네시스가 미국에서 성공할 방법과 한국 차가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 유의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물었다.


올해 미국 자동차 시장의 두드러진 트렌드는.
“SUV와 CUV(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SUV와 승용차의 중간 형태), 픽업트럭의 인기다. 올해 들어 11월까지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늘어난 브랜드 중 해당 모델을 생산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기간 판매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브랜드는 보급형 세단 ‘모델3’의 인기에 힘입은 테슬라였지만, 판매량 기준 1위와 2위는 각각 포드의 F-시리즈 픽업트럭과 닷지 ‘램’ 픽업트럭이었다. 둘을 합치면 거의 130만 대나 팔렸다. SUV만 판매하는 랜드로버의 판매가 이 기간 20%나 증가했다. 판매량 1위 포드는 한술 더 떠 신형 세단과 쿠페 개발을 전면 중단하고 SUV와 CUV에 올인하고 있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마세라티와 람보르기니 등 럭셔리 브랜드도 앞다퉈 SUV를 출시하는 상황이다. 똘똘한 SUV와 CUV 모델 없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고 봐도 될 것 같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경우는 어떤가.
“올해 들어 11월까지 판매량이 1년 전보다 늘어난 상위 20개 모델 중 SUV와 CUV가 아닌 차종은 현대 엘란트라(아반떼) 하나뿐이다. 이 기간 판매가 4.8% 늘어 19위를 기록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이 기간에 그나마 어느 정도 실적을 유지(현대차는 3% 증가, 기아차는 1.8% 감소)할 수 있었던 것도 SUV와 CUV가 판매를 받쳐준 덕분이다. 현대차의 경우에는 신형 싼타페와 대형 SUV 팰리세이드, 기아차는 소형 SUV 니로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지만 SUV와 CUV 모델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

현대차는 올해 들어 11월까지 미국에서 27만1377대의 SUV를 판매했다. 연간 최대 기록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1% 증가한 수치다. 미국 SUV 시장 점유율은 3.7%로 사상 최고였다. 최고 인기 모델은 준중형 SUV 투싼으로 이 기간에 12만6915대를 팔았다. 기아차는 내년에 대형인 텔루라이드와 중형 쏘렌토, 준중형 스포티지 등 5개의 SUV와 크로스오버 모델을 투입할 예정이다.

제네시스의 미국 판매가 부진한 이유는 뭘까.
“제네시스는 매력적인 차다. 성능이 우수하고 프리미엄 사양이 대거 적용됐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그런데 바로 그게 문제다, 프리미엄 이미지와 합리적인 가격은 잘 섞이지 않는다. 프리미엄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제네시스 포지션이 애매하다.”


프리미엄급 성능에 부합하는 경험 창출 실패로 ‘애물단지’로 전락한 폴크스바겐 페이톤. 사진 폴크스바겐
프리미엄급 성능에 부합하는 경험 창출 실패로 ‘애물단지’로 전락한 폴크스바겐 페이톤. 사진 폴크스바겐

판매와 서비스 방식은 어떤가.
“제네시스만 취급하는 딜러망 구축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현대 딜러숍에서 엘란트라와 함께 판매된다. 미국에서 현대차를 파는 딜러 중에는 프리미엄 섹터의 고객을 상대하거나 제품을 팔아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성능 면에서는 프리미엄 자동차인 마쓰다의 CX9과 폴크스바겐 페이톤의 판매가 부진한 것만 봐도 프리미엄 브랜드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페이톤은 지난 5년간 미국에서 784대 팔렸다. 연간 판매량을 잘못 이야기한 게 아니다. 안 팔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폴크스바겐 로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 경험의 문제다. 대당 9만달러(약 1억원)나 되는 페이톤의 주 타깃은 연 소득 15만달러 이상인 전문직 종사자들인데, 그들은 폴크스바겐 딜러숍에서 비틀·골프 등을 구입하러 온 대학생이나 여느 샐러리맨과 같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요타의 렉서스 브랜딩에서 배울 점이 있을까.
“디테일에 대한 렉서스의 집착은 가히 ‘전설적’이다. 도요타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른 기업처럼 도요타도 ‘성장’에 지나치게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3세 경영자인 도요다 아키오 현 사장 취임 이후 브랜드에 열정과 개성을 불어넣으면서 브랜드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 이 또한 렉서스와 도요타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한때 ‘완벽을 향한 쉼 없는 도전(Relentless pursuit of perfection)이었던 도요타의 모토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놀라운 경험(Experiencing amazing)’으로 바뀌었다.”

‘프리미엄’을 어떻게 정의하나.
“프리미엄은 상품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아닌 ‘경험’이다. 간단히 말해 사람이 기쁨을 느끼기 위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한다면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의 강도가 프리미엄의 척도라고 볼 수 있겠다. 고급 사양을 적용한다고 프리미엄 제품이 되는 건 아니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고급 가죽시트를 적용한다고 ‘프리미엄석’으로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네시스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경영진이 무엇을 해야 할까.
“다시 말하지만, 성능이나 디자인이 좋다고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는 건 아니다. 고객 경험을 ‘프리미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이미지를 덧씌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제네시스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러모로 JX35(현 QX60) 출시 이전의 인피니티가 연상된다. 먼저 포지션이 애매한 제네시스를 양산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 중 어느 쪽으로 포지셔닝할 것인지 확실히 방향을 정해야 한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가야 할 길로 믿는다면 정의선 부회장은 기아차에서 손을 떼고 프리미엄 자동차 개발과 브랜드 마케팅, 판매 전문가들로 제네시스 전담 팀을 꾸려 이끌어야 한다. 렉서스의 초기 전략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렉서스는 현대차가 2008년 제네시스를 선보여 북미 고급 차 시장에 진출할 때 ‘롤모델’로 삼은 브랜드 중 하나다. 그러나 당시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독립된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니라 현대차 브랜드의 고급 차처럼 팔았다. 1989년 미국 출시 때부터 완전히 분리된 판매망과 애프터서비스망을 완비했던 도요타와는 차이가 있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판매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판매망 등의 분리에 나서고 있다.

올해 들어 11월까지 렉서스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21만361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제네시스는 8909대가 팔리면서 1년 사이 판매량이 75.9% 줄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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