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정(Richard Chung) 캘리포니아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미국 포드 자동차 디자인 매니저, 존슨콘트롤스 부사장, 에디언트 부사장
리처드 정(Richard Chung)
캘리포니아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미국 포드 자동차 디자인 매니저, 존슨콘트롤스 부사장, 에디언트 부사장

전략·매출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현대·기아자동차의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중국은 현대·기아차 공장이 총 6개나 있기에 그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자동차 시장은 이미 8~9년 전에 미국의 연간 판매량(올해 1700만 대)을 넘어섰다. 작년에는 2800만 대의 자동차가 팔렸다. 올해는 약간 주춤하면서 작년 대비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고 내년에는 불황이 온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그래도 세계 최대 시장임은 틀림없다.

중국에서는 이미 독일이나 중국 토종 자동차 회사들이 수년 전부터 자율주행자동차와 전기자동차 중심의 전략을 세워 추진해 왔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기술은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에야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의 청사진을 발표한 바 있다. 전기차도 어느 면에는 늦었지만 ‘빨리빨리’에 강한 한국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 자체 성장률만큼 도약하려면 획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현대·기아차는 2002년 중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글로벌 메이커, 특히 독일의 폴크스바겐 그리고 일본의 닛산이나 혼다보다 ‘가성비’ 좋은 차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중국 메이커들이 서서히 저가 모델에서 품질과 디자인을 향상시키며 밑에서 치고 올라왔고 글로벌 브랜드도 가격이 싼 중국 시장용 차를 내놓으면서 현대·기아차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중국 토종 자동차 브랜드는 급기야 현대·기아차의 가성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사드 여파까지 겹치며 현대·기아차의 판매가 급감했다. 사드 여파는 사그라들었지만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에서 도약하려면 다음 4가지 포인트를 고려해야 한다.


1│디자인 차별화

중국 자동차 시장에는 160개가 넘는 다양한 자동차 브랜드가 경쟁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다는 얘기다. 이젠 경쟁 차들과 비슷한 디자인과 성능을 갖춘 것만으로는 이들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 중국에서 출시된 현대차 라페스타(Lafesta)는 이전의 현대차와 달리,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따치(大気)’한 이미지가 강하다. 따치는 ‘가성비가 매우 높아 보인다’ 또는 ‘보기보다 더 럭셔리하다’는 뜻이다. 남에게 내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 성향을 잘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 현지에서 라페스타의 반응은 아주 좋다. 이처럼 따치 이미지가 강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2│친환경차 브랜드

중국 토종 자동차 회사를 포함한 많은 브랜드들이 별도의 전기차 브랜드로 친환경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중국은 2040년부터 내연기관 엔진을 장착한 차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정책이 이미 추진되고 있다. 현대차의 중국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는 베이징에서는 전기차 이외에는 생산이나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히고, 올 7월부터 이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로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장성자동차는 BMW와 전기차 브랜드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업계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브랜드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BMW와 감히 합작회사를 세울 만큼 위상이 올라갔다는 얘기다. 중국 토종 브랜드 중 가장 잘 팔리는 지리자동차는 자회사인 볼보를 통해 전기차·자율주행차의 기술과 전략을 구축했다. 지난 3년간 중국 내에서 만들어진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신규 브랜드만 45개에 달한다. 앞으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장이 어떻게 성장할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차도 중국 파트너와 전기차 브랜드를 설립하는 것이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중국인 성향을 잘 파악해 디자인한 것으로 평가받는 현대차 라페스타. 사진 현대차
중국인 성향을 잘 파악해 디자인한 것으로 평가받는 현대차 라페스타. 사진 현대차

3│파트너

현재 중국에서 유일하게 현대·기아차만이 하나의 합작(조인트벤처) 파트너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 BMW나 벤츠도 두 번째 합작 파트너를 맞이했다.

중국 내 폴크스바겐의 대성공은 장춘에 있는 제일자동차와 상하이의 상하이자동차라는 두 회사와 각각 조인트벤처 회사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GM, 도요타, 혼다, 닛산 역시 2개의 파트너를 갖고 있으면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물론 현대차는 베이징자동차 외에도 광저우자동차와 상용차를 함께 만들고 있지만, 베이징자동차를 유일한 승용차 파트너로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여건이 된다면 친환경차 브랜드에선 별도의 파트너를 찾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중국 자동차 생산량을 고려할 때, 중국 정부가 현대차 측에 새로운 조인트벤처 회사 설립을 허락할지도 변수다.


4│럭셔리 브랜드

중국에서는 럭셔리 브랜드가 확실히 통한다. 전 세계 명품 브랜드 제품의 40%를 소화할 만큼 명품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라고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프랑스의 PSA(푸조-시트로엥 그룹)가 럭셔리 브랜드인 DS를 중국 시장에 내놓았지만 시큰둥한 반응에 오히려 PSA 전체 판매가 위기에 처했다.

해외에서나 프랑스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브랜드가 중국에서 통할 리 없다. 닛산은 인피니티, 혼다는 아큐라라는 럭셔리 브랜드로 시장 공략을 시도했지만 역시 반응은 미지근했다. 도요타의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BMW, 벤츠, 아우디에 도전할 만한 위치는 아니다. 즉 중국에서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전 세계 특히 선진국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 브랜드는 아무리 스스로 럭셔리를 외쳐봐야 살아남기 어렵다.

현대차의 럭셔리 브랜드인 제네시스도 중국에 섣불리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다. 우선 미국 그리고 유럽에서 인정을 받은 후 중국 진출을 판단하는 것이 좋다. 럭셔리 브랜드는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섣불리 들어갔다가 고전할 수 있고 다시는 회복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한국 자동차 기업들의 성공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을 앞세워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의 기술과 디자인을 단기간에 따라잡은 데 있었다. 한국 자동차는 디자인과 기술력에선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만 할 수 있다’고 할 만한 새로운 무언가를 내놓지 않는다면, 중국은 무론, 머지않아 베트남 같은 다른 개발도상국에 따라잡히는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리처드 정 한국자동차디자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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