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라인하트(Rob Rhinehart) 미 조지아공대 전기공학·컴퓨터공학과, 무선통신 스타트업 ‘레벨RF’ 창업 / 11월 28일 LA 아트 디스트릭트에 있는 한 주차장 같은 공간에서 만난 롭 라인하트 소일렌트 회장이 제품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장우정 기자
롭 라인하트(Rob Rhinehart)
미 조지아공대 전기공학·컴퓨터공학과, 무선통신 스타트업 ‘레벨RF’ 창업 / 11월 28일 LA 아트 디스트릭트에 있는 한 주차장 같은 공간에서 만난 롭 라인하트 소일렌트 회장이 제품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장우정 기자

낡은 건물마다 외벽을 채운 그라피티(graffiti)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쪽으로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양조장과 카페가 즐비했다. 11월 28일 오후 2시(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내 아트 디스트릭트(Arts District)에 도착하자 만난 풍경이었다. 최근 이곳에 젊은 예술가들이 대거 입주하면서 1970년대부터 방치돼 온 공장 부지가 젊은이의 성지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대체식품(meal replacement) 업체 ‘소일렌트(Soylent)’의 창업자 겸 회장인 롭 라인하트(Rob Rhinehart)를 만나기로 한 곳은 아트 디스트릭트에 있는 한 낡은 빨간 벽돌 건물이었다. 지난해 9월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라인하트가 만든 ‘마더십랩(Mothership Lab)’이 이곳에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듯한 공간이 나타났다. 거친 시멘트 바닥과 외벽에, 긴 책상 네 개가 놓여 있었다. 직원들은 그 주변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었다. 인터뷰는 한 책상의 귀퉁이에서 진행됐다.

소일렌트는 파우더 형태로 한 끼 식사대용식을 개발해 판매하는 업체다. 현재는 음료수 형태로 된 제품도 판매한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출신으로 본인이 밥 먹을 시간이 아까워 이 제품을 직접 연구해 개발했고, 비슷한 처지의 실리콘밸리 개발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직전 창업한 회사는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었지만, 소일렌트를 창업하면서 실리콘비치(기술·벤처기업이 밀집한 LA 해안 지역을 부르는 말)로 거점을 옮겼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라인하트는 “LA에도 기술과 인재가 몰리고 있다”며 “특히 바이오나 로봇 같은 첨단산업의 유망 기업이 LA에 거점을 두고 있는 것에 주목한 것”이라고 말했다.


라인하트 회장은 “LA 항구가 미국에서 가장 바쁜 항구”라면서 탄탄한 물류 기반을 실리콘비치의 경쟁력 중 하나로 꼽았다. 사진 블룸버그
라인하트 회장은 “LA 항구가 미국에서 가장 바쁜 항구”라면서 탄탄한 물류 기반을 실리콘비치의 경쟁력 중 하나로 꼽았다. 사진 블룸버그

두 번째 창업하면서 실리콘비치로 거점을 옮겨온 것이 인상적이다.
“실리콘밸리는 소프트웨어, 인터넷, 웹과 관련된 기술과 인재가 몰리는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LA에서도 이러한 기술 발전 모습과 인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에는 LA의 기술·인재 성장 속도가 오히려 실리콘밸리보다 더 빠르다는 생각마저 든다. LA 하면 엔터테인먼트가 부각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곳에서는 미국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많은 기술 개발과 제조가 이뤄지고 있다. LA는 미국에서 가장 바쁜 항구이기도 하다(LA항과 롱비치항의 컨테이너 처리 물동량은 미국 내 1위로, 전체의 40%를 차지). 그만큼 물류 기반이 탄탄하다. 여기에 오래전부터 고도의 기술력을 축적해 온 항공·우주 산업처럼 매우 복잡한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전통 대기업들도 많다. 이런 여러 요소가 벤처기업들이 혁신을 이루는 데 큰 영감을 주고 있다. 한 예로 LA 인근의 소도시 사우전드오크스에는 암젠(Amgen) 같은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의 본사가 있고, 샌타모니카에는 지난해 미국 바이오제약사 길리어드가 120억달러에 인수한 신생 바이오 기업 카이트파마(Kite Pharma·2009년 창업)가 있다. 우리는 공고하다고 믿었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진입 장벽이 다양한 스타트업과 인재들로 인해 무너져내리는 것을 목격해 왔다. 이런 유사한 흐름이 바이오나 로봇 같은 첨단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첨단산업의 유망 기업 중에 LA에 거점을 두는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십 년간 이곳에서 성장해 온 항공·우주, 바이오 산업의 기반에 최근의 혁신 흐름이 접목되고 있는 것이다.”

LA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들이 자신의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고, 이를 경험 있는 기업가·투자자들과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특히 첨단기술을 보유한 창업가에게는 고가의 테스트 장비·시설을 쉽게 빌려 쓸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 그런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더라도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창업가들은 그런 공간에서 제품 개발에 전념할 수 있다. 또 장비·시설을 활용해 개발 과정을 대기업이나 투자자에게 직접 보여줌으로써, 협력이나 투자금 유치가 더 쉬워진다. 마더십랩도 이런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2017년 12월 소일렌트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CEO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회장이고 최대주주다. 우리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대형마트 타깃(Target)과 월마트 같은 최대 음료 유통 채널을 통해 소일렌트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이로써 소일렌트는 1만5000개가 넘는 오프라인 구입처를 확보하게 됐고, 인터넷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음료 중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CEO를 맡고 있는 브라이언 크롤리(Brian Crowley)가 제 역할을 매우 잘하고 있지만,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는 내 의견을 내고 있다.”

소일렌트를 창업하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소일렌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2012년 내가 실리콘밸리에서 무선통신 스타트업을 차린 뒤 매일 힘들게 일하고 있을 때 나왔다. 당시 나는 주변 환경이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데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중 하나가 음식이었다. 음식을 먹는 데 돈도 시간도 너무 많이 들어갔다. 나는 영양소가 고루 갖추어진 한 끼 식사를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으로 할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침·점심·저녁 하루 세끼를 굳이 찾아 먹는 대신 배고플 때 간단히 마시는 것만으로도 영양학적으로 전혀 문제없는 대체식 말이다. 그런데 그런 제품은 없었다.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양생화학·식품가공에 관한 논문을 뒤져 연구했고, 제품을 만들어 직접 먹어보고 이를 개선해나가는 식으로 제품을 완성시켰다. 대체식의 필요성에 대한 내 생각과 제품 개발 과정을 블로그에 올렸다. 나처럼 ‘시간이 금’인 실리콘밸리 개발자 등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결국 크라우드펀딩(온라인을 통해 다수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모으는 것)으로 300만달러(약 34억원)를 투자받아 파우더 형태로 된 제품을 온라인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주문이 너무 늘어 2013년 아예 LA에 회사를 차렸다. 2015년 1월 초에는 실리콘밸리의 유명 VC인 앤드리슨 호로비츠(Andreessen Horowitz)로부터 2000만달러(약 225억원)를 추가로 투자받았다.”

소일렌트가 포만감은 있지만 맛이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소일렌트는 한창 일에 집중할 시간에 빨리 영양을 보충하고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에 충실한 제품이다. 많은 사람이 질리지 않고 꾸준히 먹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기본적이고 단순한 맛으로 만들었다(‘오리지널’의 경우 콩국수 국물 맛). 그렇다고 소일렌트로 세끼를 먹으라는 취지로 이 제품을 개발한 것은 아니다. 나는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 겸 점심으로 소일렌트를 마시고, 저녁은 친구들과 멋진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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