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미국 뉴욕대 텔레커뮤니케이션,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미국 뉴욕대 텔레커뮤니케이션,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많은 기업과 기성세대가 ‘밀레니얼 세대’를 알고 싶어 하지만 그들을 깊이 이해할 기회는 많지 않다. 무턱대고 그들에게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사니?” “왜 그렇게 행동하니?”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그런데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외국계 독립 광고대행사인 TBWA코리아(이하 TBWA)의 ‘망치 프로젝트’ 현장이다.

망치 프로젝트는 TBWA가 2014년 처음 시작한 대학생 스피치 행사다. 대학생들이 TBWA 직원들의 멘토링을 통해 아이디어를 끄집어낸 뒤 자신만의 이야기를 500여 청중 앞에서 얘기한다.

망치 프로젝트가 다른 스피치 행사와 다른 점은 자신의 유능함이나 성공담을 내세우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어렸을 적 트라우마, 부모와의 갈등, 실패담, 시행착오 등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지난해로 8회째를 맞은 망치 프로젝트를 총괄해 온 박웅현(58)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CCO)는 “망치 프로젝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끊임없이 경쟁하는 환경에 놓여 있었던 젊은 세대가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내면을 살펴보는 자아 성찰의 장”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광고에 녹여내는 광고인으로 유명하다. 마케팅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로, 인문학적 통찰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빈폴)’ ‘사람을 향합니다(SK텔레콤)’ ‘생각이 에너지다(SK이노베이션)’ ‘진심이 짓는다(대림산업)’ 등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한 카피(광고문구)다.

망치 프로젝트는 박 대표가 광고업의 특기를 살려 기획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처음엔 ‘작은 아이디어를 의미 있게 만드는 연습’을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참가자들이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스스로 위로받기 시작하면서 젊은 세대로부터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요즘 젊은 세대는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지금까지 이 프로젝트를 통해 120여 명의 밀레니얼 세대의 깊은 목소리를 들어온 박 대표를 만나 힌트를 들어봤다.


인상 깊었던 스피치가 있다면.
“‘요즘 세대는 인스타그램(인스타)을 왜 그렇게 많이 하는가’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으로 분석해 발표한 학생이 있었다. 이 친구의 말에 따르면 젊은 세대가 인스타그램에 몰두하는 이유는 현실에는 자기만의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한 반에 40~50명씩 앉아 앞만 보고 공부했고, 숨도 못 쉴 정도로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1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힘들게 살아간다. 자기만의 공간인 인스타에 구름 사진, 고양이 사진, 꽃이 있는 거실 사진을 올리는 건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구름을 보면서 고양이를 키우고 꽃이 놓인 공간에 살고 싶다는 의미다. 인스타는 곧 젊은 세대가 자신의 소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채널인 것이다.”

SNS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것이 이 세대의 특징인 것 같다.
“그렇다. 이 세대는 드러내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즐긴다. 이런 성향을 기반으로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 사용이 급격히 늘었는데, 여기서 행복해 보이기 위한 경쟁이 붙었다. 실제로 행복한가는 중요하지 않고 ‘행복해 보이는 게’ 중요하다. 남한테 보여주는 것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마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가 아니라 ‘나는 보여준다. 고로 존재한다(I show therefore I am).’의 상황이 된 것 같다. 내가 진짜 행복한가를 돌아보지 않고 행복해 보이는지만 돌아보니까 점점 공허하고 초조해지는 것이다.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고 확산하면서 보고 듣는 게 많은 세대지만, 그 정보에 깊이가 있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과거 대학생들은 300페이지의 책도 통독을 하곤 했지만 요즘엔 몇 페이지로 짧게 요약된 것만 본다.”

정보 공유의 시대가 불러온 소비 변화는.
“과거에는 한정된 정보가 단일 방향으로 전달되는 구조였다. 기업이 제품을 만들어 팔고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수많은 정보가 빠르게 공유·확산하는 네트워크 시대다. 기업이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과정이 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정보 공유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기업활동을 했을 때 그 기업의 제품을 선호하게 된다. 4000원에 맛 좋은 커피를 살 수 있어도 이 커피가 에티오피아인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진 거라면 사지 않고, 돈을 좀 더 주더라도 6000원짜리 공정무역 커피를 산다는 것이다. 스타벅스가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는 건 요즘 젊은 세대를 공략한 효과적인 전략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인가.
“너무 힘든 세대다. 시대적 운이 없다고 할까. 내가 386 세대인데 그때는 사회가 지금처럼 정체돼 있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재능이 있어도 뜻을 펼칠 기회가 적고 이러한 현실이 이들을 억누른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SKY캐슬’처럼 대학 입시를 위해 과도한 경쟁 속에서 성장한 친구들이 많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한 외국어고나 자율형사립고의 경우 자살률도 높다. 경제적 상황과 사회 구조적 문제가 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 가슴 아프다. 이런 가운데 일탈과 울분이 생기고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 또는 오포 세대(집·경력까지 포기)로 표현되는 듯하다. 유일한 목표가 ‘안정적인 삶’이 되어 의사나 공무원, 교사 같은 직업을 꿈꾼다. 젊었을 때 도전하고 부딪히면서 살아봐야 하는데, 이제는 부모들도 도전을 권하지 않는다.”

요즘 컨버스의 컬래버레이션 신발이 젊은 세대에 인기인 이유는 뭘까.
“요즘 젊은 세대에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표출하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1960~70년대 먹고살기에도 빠듯하던 시절, 개성을 드러내겠다는 마음은 사치였다. 내 집을 마련하고 좋은 차를 타겠다는 게 당시 세대의 욕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물질적인 어려움이 해소된 상황에서 ‘나만의 색깔’을 표현하고 싶다는 심리가 생긴 것이다.”

기업은 이 세대를 어떻게 공략해야 할까.
“아주 다양한 소비 욕구를 가진 밀레니얼 세대를 하나의 특성으로 정의하고 정답을 구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느 때보다 기업의 투명성과 공익성이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기업이 사업을 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 소비자는 이를 공론화하고 해당 기업을 외면한다. ‘존경받는 기업’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다. 경영학에 따르면 기업의 제1 목적은 ‘이윤 추구’이지만, 그 이전에 공공선을 지향하지 않으면 이윤 창출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TV·라디오 등 전통 매체의 영향력이 줄어든 시대다. 마케팅 채널 전략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어떤 채널을 통해 마케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메시지로 마케팅할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메시지에 진정성이 있는가, 젊은 세대가 재밌어 할 내용인가, 메시지에 감동이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사용자의 요청 없이 제공되는 ‘푸시(push)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 자체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풀링(pulling)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 푸시 메시지는 이제 아무도 안 본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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