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는 못생기고 낡은 제품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얼룩이 묻고 찢어져 낡은 느낌을 주는 골든구스 운동화, 케이블 타이를 운동화 끈에 묶어 가격표를 떼지 않은 듯한 나이키 운동화 등이 그 사례다. 사진 각사
밀레니얼 세대는 못생기고 낡은 제품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얼룩이 묻고 찢어져 낡은 느낌을 주는 골든구스 운동화, 케이블 타이를 운동화 끈에 묶어 가격표를 떼지 않은 듯한 나이키 운동화 등이 그 사례다. 사진 각사

나이키 운동화에 ‘가격표를 미처 떼지 못한 건가’ 싶은 케이블 타이가 달려 있다면, 그 신발은 일반적인 나이키 운동화가 아니다. 케이블 타이를 잘라버리면 운동화 가치는 떨어진다. 이 운동화는 나이키와 고급 스트리트(길거리)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가 협업으로 만들어 낸 한정판 제품이기 때문이다.

나이키는 2017년부터 미국의 DJ이자 오프화이트의 디자이너인 버질 아블로와 손잡고 30여 종의 한정판 운동화를 출시해 잇달아 매진시켰다. 이후 아블로는 카니예 웨스트와 함께 ‘스니커즈 전설’의 양대산맥으로 불리게 됐다. 미국의 래퍼인 웨스트는 아디다스와 협업을 통해 ‘이지(Yeezy) 부스트’라는 한정판 운동화를 내놓아 크게 인기를 끌었다.

아블로가 디자인한 나이키 운동화 가격은 30만~40만원대. 기존의 나이키 운동화보다 2~3배 비싸다. 하지만 이 운동화의 주 고객층인 밀레니얼 세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없어서 못 산다며 아쉬워하고, 미리 공개된 제품 사진을 보면서 발매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중고 시장에서는 오프화이트와 나이키가 협업해 만든 운동화가 정가의 2~3배에 팔린다. 웃돈을 얹어서라도 사고 싶어 하는 젊은층의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런 ‘구하기 어려운’ 제품에 열광한다.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사치품을 좇기보다는 희소성의 가치를 추구한다. 뛰어난 기능, 경제적 효용에 대한 추구보다 소비를 통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려는 경향이 짙다. 공장에서 품질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던 기업의 ‘베이비 부머 공략법’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황혜선 성균관대 소비자가족학과 교수는 “어릴 때부터 풍요로움을 경험하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필요에 의한 소비보다는 감성적인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소비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면서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좋은 기성품보다 흔치 않은 ‘빈티지’를 즐기면서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편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패션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부터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제품들 특징을 설명하면서 “못생기고 낡았다”고 입을 모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누가 저런 걸 살까’ 싶은 공통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패션 업계를 강타한 제품은 ‘쓰레기통을 뒤져서 나온 것 같은 50만원짜리 운동화’로 이름을 알린 패션 브랜드 ‘골든구스’ 운동화였다. 골든구스에서 가장 유명한 제품은 얼룩이 묻은 별 모양 무늬가 있는 운동화로, 마치 누군가 오랫동안 신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한정판 운동화의 경우 신다가 신발 뒤꿈치 부분이 헤진 것처럼 테이프를 덧댄 모양을 추가해 더욱 낡아 보이도록 했다.

전 세계에서 “골든구스는 가난을 조롱하고 있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139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미국의 유명 유튜버 크리스틴 시델코는 지난해 9월 자신의 트위터에 “이 세상엔 돈이 없어서 신발 대신 비닐봉지를 신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흉물스러운(hideous)’ 신발을 500달러(실제 가격은 530달러·약 59만원)에 팔고 있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골든구스는 수년 전부터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지만, 이미 밀레니얼 세대에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사는’ 아이템이 된 지 오래다.

지난해 ‘어글리 슈즈(ugly shoes·못생긴 신발)’라는 개념을 유행시키며 명품 운동화의 트렌드를 이끌었던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도 마찬가지다. 트리플S는 전체적으로 울퉁불퉁한 겉모양 탓에 발이 한층 커 보인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들이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를 앞다퉈 착용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100만원대를 훌쩍 넘는 가격에도 20·30대 사이에서는 없어서 못 사는 신발이 됐다.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김현호 CJ ENM 오쇼핑부문 MD는 “최근 트렌드를 보면 아무리 디자인이 예쁘더라도 너도나도 가지고 있을 만한 제품은 젊은 소비자에게 외면당했고, 못생겼을지라도 ‘다른 사람은 안 신을 것 같은’ 개성 있는 제품이 주목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골든구스 신발의 경우 투박하고 더러운 모양 탓에 대중이 잘 안 신으면서 희소성이 생겨 주목받았지만, 최근에 유행을 타면서 많은 사람이 골든구스 운동화를 신자 열풍이 조금은 잠잠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명품 업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에 러브콜

명품 브랜드들도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희소성’을 가진 한정판 제품을 출시한다. 이들이 한정판 제품을 만들 때 사용하는 전략은 20·30대에서 인기를 얻는 스포츠 캐주얼, 또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손을 잡는 것이다. 주로 명품 브랜드의 가방, 옷 등 다양한 제품에 밀레니얼 세대가 친숙하게 느낄 만한 브랜드를 접목한다.

이런 협업을 제안하는 주체는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들이다. 이들은 젊은 소비자가 열광하는 브랜드라면 거침없이 러브콜을 보낸다. 천경희 가톨릭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아직 명품을 구매할 만한 경제력이 되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미리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라면서 “이들이 향후 나이가 들면서 지갑 사정이 나아지고 소비 시장의 핵심으로 떠오르기 전에 선점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이뷔통은 올해 1월 오프화이트의 디자이너 아블로와 협업해 출시한 남성복 제품군에서 대박을 터뜨리며 밀레니얼스 공략의 실마리를 잡았다. 해외 패션지들은 아블로를 ‘세상에서 가장 바쁜 남자’로 소개한다. 그가 컨버스·나이키·지미추 등 다양한 브랜드와 손잡을 때마다 밀레니얼 세대가 열광했기 때문이다. 루이뷔통은 이런 아블로의 활약을 지켜보다 마침내 지난해 3월 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루이뷔통·아블로 협업 제품군은 이달 10일 일본 도쿄의 팝업 스토어에 시험적으로 먼저 출시됐다. 마이클 부르케 루이뷔통 CEO에 따르면, 도쿄 출시 이후 48시간 동안의 매출이 2017년 루이뷔통·슈프림 협업 제품군의 같은 기간 매출보다 30% 많았다. 미국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은 제품을 소량만 생산하며, 다양한 명품 브랜드들과 협업을 통해 견고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브랜드다. 루이뷔통·슈프림 협업 제품군이 처음 출시됐을 때는 전 세계에서 마니아들이 제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광경이 연출됐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는 지난해 국내 캐주얼 스포츠 브랜드 ‘휠라’와 손잡았다. 먼저 협업을 제안한 쪽은 펜디였다. 펜디 창업주 일가의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인스타그램에서 어느 작가가 펜디와 휠라를 합성해놓은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휠라의 주 고객층은 10·20대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펜디가 어린 고객층을 보유한 휠라의 손을 잡고 40~50대로 한정된 자사 브랜드의 고객 연령층을 넓히기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민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