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재벌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본인의 ‘인생 영화’로 ‘시민 케인’을 꼽았다. ‘시민 케인’은 1941년 미국 연극 무대와 라디오 드라마에서 각광받던 스물다섯 살의 천재 연출가 오슨 웰스가 할리우드에 진출해 만든 첫 영화다. 언론 재벌의 일생을 다룬 ‘시민 케인’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트럼프는 “‘시민 케인’을 통해 부(富)가 모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영화에서 주인공 케인은 부를 성취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며 “실제 삶에서 부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킨다”고 했다. 트럼프가 이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영화에서 언론 재벌인 주인공 케인이 임종하면서 남긴 대사 “로즈버드(Rosebud)”의 의미가 대단한 비밀이 아니라 단지 그가 어린시절 타던 썰매 이름이었다는 사실은 되새겨볼 만하다. 부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경영인들은 영감에 굶주려 있다. 현재의 경영인들은 어떤 영화를 통해 어떤 영감을 받고 있을까. ‘이코노미조선’이 100명의 경영인에게 ‘내 인생의 영화’를 설문조사해 집계해 봤다. 일부 CEO들은 영화에서 받은 영감을 채용정책이나 판매정책에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때로는 영화 주인공들의 열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얻었다. 여러 종류의 리더십과 조직관리 아이디어를 영화를 통해 얻기도 했다. 덜 알려진 흥미로운 작품들도 내 인생의 영화로 꼽혔다.


‘인턴’ 보고 시니어 채용정책 수립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할리우드 영화 ‘인턴(2015)’이 가장 많은 6명의 선택을 받았다. ‘인턴’은 할리우드의 노장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1943년생)가 시니어 인턴역을 맡고, 젊은 여배우 앤 해서웨이(1982년생)가 CEO역을 맡아 고령의 인턴사원이 젊은 CEO와 협업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는 최광호 한화건설 사장, 주원 흥국증권 대표, 양태영 테라펀딩 대표, 손민재 마이창고 대표, 최서진 크리에이티브조이 대표, 김인경 KDI 연구위원이 선택했다.

이들은 “인턴사원을 연기한 드니로는 젊은 CEO에게 ‘지혜로운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통해 공감과 감동을 선사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젊은 창업자와 경험 많은 인턴의 협력과 팀워크는 요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창업 열풍, 일자리 문제, 장년층 재취업 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주원 흥국증권 대표는 “이 영화는 시니어 비중이 늘고 있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최근 나이 많은 애널리스트들을 적극 채용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빅쇼트’ 보고 차별성 확보

‘인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은 영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리먼사태)를 앞두고 미국 금융권에서 벌어진 상황을 다룬 ‘빅쇼트(2016)’였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문창용 캠코 사장, 이승도 KSTEC 대표, 김성준 렌딧 대표, 류재욱 네모파트너스 총괄사장 등 5명이 이 영화를 택했다. 이들은 “모두가 의문 없이 받아들이던 흐름 속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엄청난 사업 기회를 만들어낸 통찰력이 인상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핀테크 스타트업인 렌딧의 김성준 대표는 “파산한 베어스턴스만이 실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는 심각한 문제가 발견됐을 때 상사 눈치를 보지 않고 손들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영화를 보고 제3자를 통해 펀드를 팔던 것을 지난해 4월부터 메리츠가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며 “어떻게 고객을 만족시킬 것이냐에 대한 차별성을 확보하려고 고민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통해 열정과 리더십 통찰

지난해 한국에서 역대 음악영화 흥행 1위 기록을 갈아치운 ‘보헤미안 랩소디(2018)’도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장관), 우인호 팩토피아 대표,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유경호 체리쉬 대표의 선택을 받았다.

이들은 1970~8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밴드 퀸(Queen)과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혁신적인 음악을 내놓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를 통해 기존 체계 반란자들이 열정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가는지에 주목했다.

가구회사 체리쉬의 유경호 대표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을 보면서 회사 초창기 때 새로운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열심히 뛰어다니던 때가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최고의 곡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광우 이사장은 “다른 장르의 음악을 융합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창의적 리더십을 봤다”고 말했다.


‘다키스트 아워’, 처칠에게 배우는 리더십

제2차 세계대전의 분기점에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고뇌와 결정 그리고 무엇보다 ‘결단의 리더십’을 충실히 담은 영화 ‘다키스트 아워(2017)’도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전 국무총리실장), 유정준 SK E&S 사장, 박소령 퍼블리 대표 등 3명의 선택을 받았다. 이들은 “늘 현실에서 부딪히는 선택의 문제에서 고민할 때 답을 던져준 배우 게리 올드만(처칠 역)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고 평했다.

올드만은 이 영화에서 “이 엄중한 시기에 나는 피와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 줄 것이 없습니다. 나는 한마디로 답하겠습니다. 승리!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승리, 그 어떤 공포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하더라도 승리, 승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승리가 없으면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다.

권 원장은 “어느 조직이든 리더로서 명심해야 할 말이 아닐까 한다”며 “처칠이 연설을 통해 의회와 국민들을 설득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리더십과 그 리더의 진정성이 갖고 있는 위대한 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했다.


‘대부’, 조직관리의 중요성

느와르 영화장르에 한 획을 그은 ‘대부(1972)’도 이인호 무역보험공사 사장(전 차관),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민홍기 AIG손해보험 사장, 김윤식 신협중앙회장의 선택을 받았다.

이 영화는 완성도 면에서 따라갈 영화가 별로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들은 “마피아 조직이지만 이를 통해 조직관리의 특수상황, 미국 사회의 이면, 미국 시대상 등 여러가지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또 “이건 개인적인 게 아니야 소니, 이건 온전히 사업이야(It’s not personal, Sonny. It’s strictly business)” 등 주옥같은 명대사도 다수가 거론했다.


‘포레스트 검프’의 우발적 전략

따뜻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도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 이형오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김석 청호 이지캐쉬 대표의 선택을 받았다. 이들은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스토리로 가족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 이 교수는 “캐나다 맥길대의 헨리 민츠버그 교수가 주창한 ‘우발적 전략(Emergent Strategy)’ 이론처럼, 검프는 계획하지 않고 즉각적인 상황에 따라 행동한다”며 “기업들도 ‘의도된 전략(Intended Strategy)’만 고집하지 말고 즉각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을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슬픔을 기쁨으로 ‘인생은 아름다워’

희비극 ‘인생은 아름다워(1999)’는 윤호영 카카오뱅크 행장,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강효미 퍼스트룩 대표 등 3명이 선택했다. 이들은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의 아름다움과 대조되는 비참한 현실, 생사의 갈림길, 극심한 고통과 불안, 그 가운데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이 감동적이고 왜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했다”고 했다. 성 교수는 “독일의 히틀러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유태인 집단에 대한 증오와 미움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학살을 저질렀다”며 “경제가 어려울 때, 경제 정책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고 했다.


인생 바꾼 흥미로운 영화도 다수

100명의 경영인 가운데는 공상과학(SF)영화, 고전영화, 일본영화 등을 꼽은 이들도 있었다. 안태호 노키아코리아 대표는 영국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명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사진)’를 골랐다. 그는 “미래 그리고 인류의 발전에 대한 환상과 꿈을 꾸게 해준 영화로 지금의 통신기술 회사에 몸을 담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최명화 CMO캠퍼스 대표는 일본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2006)’을 골랐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8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수학자의 주변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낸 영화”라며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바친다”고 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스포트라이트(2016)’를 골랐다. 그는 “진실을 파해치는 언론인들의 직업정신이 감동적이고 완성도도 뛰어나다”며 “팀워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고전영화 중에서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 ‘이유 없는 반항(1955)’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57)’ ‘콰이강의 다리(1957)’ ‘마부(1961)’ ‘벤허(1962)’ ‘닥터지바고(1978)’ 등이 꼽혔다.


경영의 진수 담긴 ‘머니볼’

메이저리그 구단 경영을 다룬 ‘머니볼(2011)’도 이재진 웅진씽크빅 대표, 이대훈 NH농협은행장, 김민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의 선택을 받았다.

이 대표는 “영화를 통해 객관적 데이터와 팩트를 기반으로 한 분석과 이를 반영한 전략적 의사결정으로 경영의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고 최대의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 행장은 “저비용·고효율 선수 영입을 통해 가난한 구단이 우승을 일궈내는 모습에서 빅데이터 고객분석이 금융업의 현실 과제이자 미래지향점임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매트릭스’가 보여준 미래사회

슬로모션의 총알 피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1999)’도 이상진 한국표준협회 회장과 양광우 BNP파리바생명보험 부사장의 선택을 받았다.

이 회장은 “가상현실과 실제 상황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기계의 진화가 인류에 던지는 위협에 대해 보여준 영화”라며 “무분별한 인공지능화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양 부사장은 “영화를 보고 내 일에 대한 정체성과 일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며 “틈날때마다 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직장생활 내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부모세대에 대한 오마주 ‘국제시장’

원기찬 삼성카드 대표와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2014년 1400만 관객을 동원한 히트작 ‘국제시장’을 꼽았다.

김 부회장은 “눈물이 앞을가려 마지막 장면을 보지 못했다”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고마운 부모세대에 대한 오마주(hommage)로 내 인생에 깊이 각인돼 있다”고 했다. 원 대표는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나라의 체질을 새롭게 구축한 최근 50년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의미 깊고 중요하다”라며 “이런 부분들이 교육현장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어서 현재의 모습만 아는 세대들에게도 많은 부분을 일깨워 준다”고 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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