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앤드사운드가 선정한 역사상 최고 영화 1위를 차지한 ‘현기증’의 주연배우 킴 노박과 제임스 스튜어트.
사이트앤드사운드가 선정한 역사상 최고 영화 1위를 차지한 ‘현기증’의 주연배우 킴 노박과 제임스 스튜어트.

서양에서 형성된 ‘고전(classic)’의 개념은 라틴어 ‘classicus’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일류의’ ‘규범에 알맞은’이라는 의미다. 이 개념은 그리스 문학에 기반한다. 과거 알렉산드리아(현 이집트)의 학자들은 그리스 문학을 근거로 해 자신들의 작품을 평가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고전은 안정된 가치관을 지니게 하는 작품을 뜻하게 된다. 현재 일반적으로 고전은 과거의 작품이자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작품을 일컫는다. 후세에 모범이 되는 전통을 수립한 작품을 고전이라고 칭한다. 음악과 영화 분야에서는 사람들이 고전에서 영감의 원천을 찾는 분위기가 뚜렷한 편이다.

15만명이 넘는 회원수를 보유한 국내 최대 인터넷 클래식 커뮤니티 ‘고 클래식’ 사이트는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이 사이트에서는 신보에 담긴 연주에 대한 마니아들의 갑론을박도 이뤄지지만, 주된 논의는 1954년 사망한 독일 지휘자 푸르트뱅글러나 1957년 사망한 이탈리아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사망 이전에 남긴 모노(양쪽 스피커에서 똑같은 소리가 나오는 옛 녹음방식, 분리된 소리가 나오는 스테레오보다 음질·현장감이 떨어진다) 음반들에 집중될 때가 많다. 이 커뮤니티 활동자 중에는 음대에 재학 중인 기악 전공자 등 젊은층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푸르트뱅글러는 지휘를 하나의 독립된 예술로 보고 악보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운, 즉흥적인 해석을 강조했다. 반면 토스카니니는 주관적인 해석을 배제하고 악보에 있는 음표와 쉼표 하나도 어기지 않는 엄격함으로 작곡자의 의도에 충실하고자 한 지휘자였다. 이들이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넘었지만 현재 활동 중인 지휘자들도 연주 스타일에 따라 푸르트뱅글러류 혹은 토스카니니류로 흔히 분류된다. 그만큼 두 거장이 남기고 간 뚜렷한 예술적 대비는 세월을 뛰어넘어 후세에 큰 영향을 줬다. 그들이 남기고 간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녹음은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감동을 준다.

1월 25일 현재 고 클래식 사이트가 제공하는 클래식 음원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에서 장르별 1위를 점하고 있는 건 오스트리아 지휘자 카를 뵘(1894~1981)이 1960년대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모차르트 교향곡 29번, 미국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90)이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한 차이콥스키 관현악 ‘로미오와 줄리엣’, 헝가리 피아니스트 조지 셀(1897~1970)이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등이다. 별세한 지 수십년이 지난 음악가들이 1950~70년대에 녹음한 것들이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첫 상업용 음반이 발매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고전이 더 사랑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푸르트뱅글러(왼쪽)는 지휘자의 즉흥적인 해석을 강조했다. 토스카니니는 주관적인 해석을 배제했다.
푸르트뱅글러(왼쪽)는 지휘자의 즉흥적인 해석을 강조했다. 토스카니니는 주관적인 해석을 배제했다.

영화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영국영화협회(BFI)가 발행하는 잡지 ‘사이트앤드사운드(Sight & Sound)’는 10년에 한 번씩 주요 평론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역사상 최고의 영화 50선’을 선정해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이 사이트에서 뽑은 최고의 영화는 1958년작 ‘현기증(영국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었다. 그전까지 줄곧 1위였던 1941년작 ‘시민 케인(미국 오슨 웰스 감독)’이 50년 만에 바뀌었다. 음악처럼 19세기 말 상업용 영화가 처음 등장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고전 영화들이 사상 최고의 영화 지위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50년간 1위를 고수한 ‘시민 케인’은 무려 흑백 영화다. 오는 2022년에는 순위가 어떻게 변할지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여전히 10위 안에는 일본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도쿄 이야기(1953)’, 프랑스 장 르누아르 감독의 ‘게임의 규칙(1939)’ 등 고전이 대부분이다.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영국 스탠리 큐브릭 감독)’가 10위권에서 가장 최신 영화다.

이처럼 여전히 사람들이 고전 영화와 음악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 작품들의 질이 높다는 사실은 물론, 후세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은 시대가 바뀔수록 새로운 의미를 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 흑백영화를 즐기는 손수연 상명대 교수(창작 오페라 기획가)는 “고전 작품은 똑같은 장면을 몇 번을 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것이 발견되곤 한다”며 “이를 통해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손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1961년작 ‘마부(강대진 감독)’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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