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캐플런(왼쪽), 찰스 아이브스. 사진 소더비, wfmt
길버트 캐플런(왼쪽), 찰스 아이브스. 사진 소더비, wfmt

음악에서 받은 감동과 영감이 너무 강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기도 한다. 2016년 별세한 미국의 경영인 길버트 캐플런의 삶이 대표적인 사례다. 1942년 태어난 캐플런은 금융 전문가에서 지휘자로 변신에 성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대에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14만 부 이상 발행하는 영향력 있는 금융 잡지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Institutional Investor)’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1981년 그는 39세 적지 않은 나이로 남몰래 키워왔던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젊은 시절 그에게 용기와 영감을 준 오스트리아 근현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부활)’을 직접 지휘해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CEO 역임 중 개인 교사를 초빙해 매일 5시간 이상을 음악공부에 투자했다. 이어 그는 1983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부활’을 처음으로 연주했다. 당시에는 그가 사비를 들여 대관하고 오케스트라를 초빙해 연주했으며, ‘괴짜 재벌의 놀음’ 정도로 입방아에 오르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의 열정이 음악에 투영됐기 때문인지, 점차 평론가들과 청중의 지지를 받았다. 1996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도 그를 초청했으며 2002년에는 말러가 직접 지휘봉을 들기도 했던 빈 필하모닉과의 ‘부활’ 음반을 메이저 음반사를 통해 발매했다. 캐플런은 2005년 내한해 KBS교향악단과 ‘부활’을 연주하기도 했다.


보험사 사장에서 작곡가로 변신하기도

‘미국 현대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1874~1954)는 보험사 사장에서 성공한 작곡가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아이브스는 1894년부터 4년간 명문 예일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으며, 그동안 작곡가 호레이쇼 파커에게 사사하고 공부했으며 오르간 공부도 계속했다. 그는 1906년에는 본인 이름을 딴 ‘아이브스 보험회사’를 설립, 3년 후에는 ‘아이브스 & 마이릭 생명보험회사’로 발전시켜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보험회사로 육성했다. 1930년까지 사장으로 재임한 아이브스는 점심시간과 밤에 작곡에 전념하면서, 언제 연주될지도 모르는 채 묵묵히 작업을 계속했다. 이후 그의 업적이 인정돼 작곡 후 40년간이나 묻혀 있던 명곡 ‘교향곡 3번’이 빛을 보게 됐고, 1947년에는 퓰리처상까지 받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 금융인 중에도 클래식에서 영감을 찾거나 이를 직업으로 삼는 인물이 적지 않다. 장동기 신한금융그룹 고유자산운용 부문장의 서울 남대문 집무실에는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 등의 악보가 있다. 그는 최고위직 금융인이지만, 디지털음향 전문가이기도 하다. 유재후 전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 본부장은 퇴직 후 온라인 중고 엘피 레코드숍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수십 년 공력을 담아 모은 클래식 엘피들은 마니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국은행에서 열혈 ‘클래식 전도사’로 활동했던 유병갑 전 국장도 이런 인물이다. 그는 2007~2015년 매주 토요일 서울 소공동에 있는 한은박물관에서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해설을 곁들인 음악감상회 ‘음악이 흐르는 박물관’ 행사를 직접 진행했다. 그는 퇴직 후에도 매 분기 발행되는 한은 사보 ‘한은소식’에 ‘음악산책’ 칼럼을 꾸준히 연재하고 있다.

국세청 퇴직 후 온·오프라인 레코드숍 사장이 된 진경찬씨도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졌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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