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문학박사, 상명대 초빙교수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문학박사, 상명대 초빙교수

“한 편의 창작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기본으로 한 기획력은 물론, 회계와 홍보 등 경영자적인 지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을 자주 접해 상상력을 키우고 온고지신(溫故知新)해야 합니다.”

창작 오페라 기획가이자 오페라 평론가인 손수연 상명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는 1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상명대 미래백년관에서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하며 이같이 말했다.

손 교수는 1995년 숙명여대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한 후 건국대에서 문화콘텐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6년까지 대한민국오페라연합회 이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상명대에서 오페라와 서양음악사를 강의하고 있다. CEO와 의사 등을 대상으로 한 강연도 활발히 하고 있다. 손 교수는 한국 창작 오페라 중에서는 처음으로  2016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선비’를 기획했다. 이 오페라는 고려 말~조선 초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의 기개와 도리를 소재로 했다. 공연 당시 카네기홀에서 가장 큰 메인홀(약 2700석)이 매진되는 등 관심을 모았다. ‘선비’는 지난해 베트남 호찌민에서 공연됐으며,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도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국내 무대에 올랐다. 손 교수는 “새로운 오페라를 기획·제작하고 무대에 올리는 건 예술가적인 마인드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최근에는 음악인들도 회계 등 경영 수업을 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창작 오페라 ‘선비’ 공연 모습.
창작 오페라 ‘선비’ 공연 모습.

창작 오페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창작 오페라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국가라는 범위는 무의미하다.”

상상력만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이다. 오페라라는 장르가 음악, 각본, 무대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인 것처럼 실제 공연이 이뤄지는 과정 자체도 매우 종합적이다. 기획·제작·홍보·정산 등 경영자 마인드가 필요하다.”

오페라 쪽에도 디지털화가 가속화하는데.
“디지털화는 두 가지 상반된 효과가 있다. 우선 과거 오페라는 소수의 취미였다. 그러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온라인상에서 공연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음질과 화질도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일례로 매년 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를 한국 극장에서 실시간으로 관람할 수 있다. 기술 발전이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화가 가속화할수록 공연장에서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갈증이 커진다. 직접적인 경험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CEO들을 대상으로 어떤 강연을 하는가.
“주제는 다양하다. 영화와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와 여인들, 역사를 접목시킨 오페라 강의 등에 대한 수요가 많다. 특히 CEO들은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건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편이다.”

왜 CEO들이 음악을 배우는가.
“CEO들은 음악 등 예술을 경영에 접목시켜 고전으로부터 지혜와 위안을 얻고, 상상력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음악 동영상을 보여주면 처음에는 좀 서먹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러나 강의가 마무리로 접어들수록 눈빛이 살아난다. 고전에서 답을 찾아야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음악은 CEO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주나.
“CEO가 음악을 자주 접한다고 해서 당장 기업 매출이 급격히 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을 알고 사업하는 사람과 전혀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한다. 과거 제조업에 몰두하던 시절에는 이런 것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미래 예측이 어렵다. 이럴 때는 인문학적인 소양이나 예술에 대한 이해 등 폭넓고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 또 음악을 매개로 하는 오페라는 비즈니스에서도 세계 공통의 언어가 될 수 있다. 기업도 이런 중요성을 알고 있다. 유서 깊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경우 일본 자동차 렉서스가 후원한다. 삼성도 이탈리아 밀라노 극장을 후원하고 있다. 기업의 문화적인 수준이 비즈니스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강의 중 가장 기억나는 경험은.
“수강생 중에 큰 규모의 병원을 경영하는 정형외과 의사가 있었다. 그는 항상 학구적이고 분석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그러나 사전 공부를 너무 철저히 하고 오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을 예술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부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거 같아 안타까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업 초반에 덜 알려진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줬다. 어느 날 이분이 한 아리아를 듣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곡은 이탈리아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노래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였다. 존재 자체로 가슴을 씻어내리는 예술의 기능을 온전히 경험하게 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CEO들에게 추천할 만한 오페라를 소개해달라.
“우선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가 1884년에 발표한 ‘돈 카를로’를 추천한다. 이 오페라는 독일 극작가 실러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역사물이다. 절대권력자였던 스페인 왕의 정치적인 결단, 왕으로서의 고독과 고뇌가 담긴 작품이다. 그가 느끼는 고독 이면에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상황 등이 심오한 심리 드라마로 녹아 들어가 있다. 이 오페라의 이야기에 감정이 이입되는 경험을 했다는 CEO들이 많았다.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미완성 오페라 ‘투란도트’도 추천한다. 절대권력자인 공주의 잘못된 판단으로 빚어지는 처참한 비극을 담았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는 왕자의 노력이 CEO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줄 수 있다. 특히 왕자가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의 마지막 가사 ‘새벽이 되면 나는 승리하리라’처럼 결국 CEO에게 중요한 건 ‘승리(vincero)’다. 들을 때마다 의욕이 생길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탄호이저’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순례자의 합창’ 때문에 추천한다. 그 어떤 음악보다 긴장을 풀기에 좋은 곡이다. 바그너 음악은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들을수록 중독성이 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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