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미미국 줄리아드 음대 석사, 애리조나 주립대 박사
문보미
미국 줄리아드 음대 석사, 애리조나 주립대 박사

“‘SKY 캐슬’이 사랑받은 이유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입시제도를 겪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잖습니까. 학생 입장이든 부모 입장이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제작을 결심했습니다.”

SKY 캐슬(JTBC 방영)을 제작한 HB엔터테인먼트의 문보미 대표는 “‘입시 전쟁’은 전 세계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일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세계 어느 곳이나 자녀를 상위권 대학에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의 열망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뜨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미국 대학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면서, 미국의 교육열을 몸소 겪었다고 한다.

한국의 입시 전쟁을 사실적으로 풍자한 SKY 캐슬은 비(非)지상파 시청률로는 역대 최고치인 23.8%(마지막회)를 기록했다. SKY 캐슬의 첫 화가 방영되기 전까지, 누구도 이 작품이 이런 큰 화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제작비가 어마어마하게 투입된 대작도 아니었고,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본 방송 다음 날 넷플릭스를 통해 바로 세계 190개국에 공개됐다.

SKY 캐슬의 제작비는 75억원이다. 비슷한 시기에 배우 박보검과 송혜교의 로맨스를 다룬 기대작이었던 ‘남자친구(tvN 방영)’ 제작비(160억원)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018년 대작 드라마로 꼽혔던 ‘미스터 션샤인(tvN 방영)’ 제작비인 430억원에 비하면 6분의 1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탓에 SKY 캐슬을 ‘가성비 드라마(투입한 제작비 대비 엄청난 성과를 냈다는 의미)’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SKY 캐슬 이전에 문보미 대표의 이름을 드라마 산업에 널리 알렸던 메가 히트작은 2013~2014년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SBS 방영)’다. 그는 ‘아시아 전역에 인기 있는 한류 스타를 출연시킨 로맨틱 코미디’라는 이른바 성공하는 한국 드라마의 공식을 정립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문 대표는 “꼭 이전에 성공했던 방식대로 드라마를 제작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그가 먼저 ‘상류층에서 고액을 주고 입시 컨설턴트를 고용한다더라’는 SKY 캐슬의 소재를 유현미 작가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문 대표를 1월 29일 서울 강남구 HB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SKY 캐슬의 마지막회 방영일(2월 1일)을 3일 앞둔 날이었다. 그에게 지난 2006년 창업 이후 작년까지 25편의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느낀 점을 물었다.


SKY 캐슬의 해외 반응은 어떤가. 입시 전쟁은 굉장히 한국적인 소재가 아닌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재다. 해외에서 피드백이 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중국에서도 ‘천공지성(天空之城)’이라는 제목으로 꽤 화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의 교육열도 대단하지 않나. 공감되는 요소가 많아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SKY 캐슬은 현재 중국에 정식으로 수출된 상황이 아니다. 중국 시청자들은 여러 다른 경로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Y 캐슬은 직전에 크게 흥행한 별그대와는 좀 다른 성격인 것 같다.
“한류 스타가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만 할 수는 없다.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엔 실제 사건과 허구의 경계가 흐릿해 몰입감을 높일 수 있는, 아주 사실적인 작품을 만들어봤다.”

앞서 별그대를 통해 신한류 열풍을 일으켰다. ‘겨울연가(2002년·KBS 방영)’ 시절의 한류와 지금의 한류가 다른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한국과 해외에서 동시에 드라마를 틀기 때문에, 국가 간 시차 없이 피드백이 나온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국내에서 반응이 좋았던 드라마의 방영권을 종영 이후 해외 방송사에 파는 식이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화제가 되는 시점보다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시점이 6개월~1년 정도는 늦었다. 별그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처음으로 이런 시차를 줄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별그대는 한국에서 본 방송이 끝나면 중국에서 1시간 후에 바로 그 회차가 방영됐다. 중국 시청자들로부터 거의 실시간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기존 틀을 깨는 일이었을 텐데. 어떻게 가능했나.
“별그대의 저작권을 우리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 진출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보통은 방송국이 드라마의 저작권을 갖는다. 방송국이 제작비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해외 판매도 당연히 방송국에서 결정한다.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이 25개인데, 이 중 별그대를 포함한 2개 작품만 우리가 저작권을 갖고 있다. 오랜만에 갖게 된 저작권을 무기로 중국 시장을 한번 개척해보자고 생각했다. 중국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爱奇艺)’에 별그대의 중국 내 저작권을 판매했다. 당시에는 그리 큰돈을 벌지 못했다. 4억원에 중국 내 판권을 팔았는데, 이를 사간 중국 기업은 1500억원을 벌었다. 어쩌면 남 좋은 일 한 셈이지만, 신한류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기존 방식으로 방송이 다 끝난 다음에 판권을 팔았다면,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중국 내 불법 동영상 사이트에서 유통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별그대의 저작권을 가질 수 있었나.
“톱스타 전지현 배우를 주연으로 섭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방송국 입장에서는 이런 캐스팅은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카드였던 셈이다.) 전지현 배우와는 옆집에 사는 이웃사촌이기도 하고, 같은 헬스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전지현 배우에게 직접 대본을 건네고 수월하게 섭외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와 종합편성채널이 생기면서 방송을 내보낼 채널이 늘어났다. 미국 월트디즈니도 올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을 내놓는다고 했다. 이런 변화가 한국 콘텐츠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까.
“넷플릭스가 2016년 한국 진출을 선언하고 3년이 지난 뒤에야 첫 작품 ‘킹덤’을 내놨듯, 디즈니가 한국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콘텐츠 산업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외국 플랫폼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제작비를 지원하고, 창작자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작자들이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가 한국 진출을 검토하던 시점에 미국 넷플릭스 본사에 가서 미팅한 적도 있어 이런 사안을 알고 있다. 한국 방송사와 일하는 것보다 여건이 훨씬 좋았지만, 계약 조건이 까다로워 여러가지 이유로 함께 작업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런데 넷플릭스도 한국에 전담팀을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고 들었다. 제작사들에 과거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대한다고 한다. 넷플릭스가 여러가지로 매력적인 방송 플랫폼인 셈이다. 디즈니가 한국에 진출한다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제작사들이 한국 방송사와 작업하고 싶어도, 조건이 좋다면 외국 플랫폼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방송사들도 열악한 계약 조건을 개선하고, 작품을 통해 큰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조금이라도 제작사와 나누는 등 상생의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의 계약 관행하에서는 많은 제작사가 히트 드라마를 제작하고도 열악한 경영 환경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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