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모래시계’ 포스터. 사진 SBS
SBS 드라마 ‘모래시계’ 포스터. 사진 SBS

1995년 2월 64.5%라는 경이로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SBS의 ‘모래시계’ 등 ‘명품 드라마’를 지상파 3사(KBS·MBC·SBS)에서 다시 만들 수 있을까. 현재로선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모래시계는 격동기였던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개성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풀어낸 명품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시청률이 높아도 시청자로부터 ‘막장 드라마’라는 질타를 받는 최근 일부 지상파 드라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케이블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 플랫폼이 다양해진 상황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 콘텐츠의 위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능력 있는 프로듀서(PD)와 작가 등 콘텐츠를 만드는 핵심 직원들이 안정적인 직장인 지상파 방송사에서 떠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와 콘텐츠 제작사의 전통적인 ‘갑을(甲乙)관계’도 깨지고 있다. 시청자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형태도 확 달라졌다. 이처럼 콘텐츠 산업 구조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비지상파 명품 드라마인 ‘SKY 캐슬(JTBC 방영)’과 ‘킹덤(넷플릭스 방영)’ 같은 작품이 지상파 방송사에서 나오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지상파들이 기존 하청형 드라마 제작 모델에서 탈피해 스튜디오 모델을 도입하는 등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상파 드라마 위기의 현상과 원인을 짚어봤다.


원인 1│ ‘능력자들’ 떠나는 지상파

지난해 지상파는 ‘역대 최저 시청률’ 드라마를 내는 굴욕을 겪었다. KBS의 ‘러블리 호러블리(8월 13일~10월 2일 방영)’가 지상파 드라마 중 역대 최저 시청률(25회 1.0%·닐슨코리아 전국 집계 기준)을 기록했다. 지상파 콘텐츠 부실화의 원인 중 하나는 핵심 인력 유출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정년이 보장되는 고연봉 직장이지만, 최근 수년 새 실력 있는 직원들이 좀 더 많은 연봉을 지급하고 자유로운 제작 활동이 보장되는 비지상파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드라마는 아니지만 이른바 ‘스타 예능 PD’라고 불리는 나영석 전 KBS PD 등 실력 있는 제작진의 이탈(2012년)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SBS에서 TV조선으로 이직한 서혜진 국장은 예능 프로그램 ‘아내의 맛’에 이어 ‘연애의 맛’을 성공시켰다.

콘텐츠 제작사인 동시에 플랫폼 사업자인 지상파 방송사들은 콘텐츠 제작자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적지 않다. 최근 드라마본부 분사를 통한 콘텐츠 제작 자회사 ‘드라마스튜디오’ 설립을 공식화한 SBS는 드라마본부 분사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직원 입지 불안정 등을 이유로 한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힌 상황이다. KBS는 2016년 8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자회사 ‘몬스터유니온’을 설립했다.

이는 타 방송사로 유출되는 인력을 자회사가 끌어안겠다는 의도였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몬스터유니온은 최근 서수민 PD와 유호진 PD가 퇴사하며 결국 예능 부문 콘텐츠 생산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양승동 KBS 사장은 지난해 8월 기자회견에서 “몬스터유니온 출범 과정에서 내부적인 갈등과 불신도 있었다”고 밝혔다.


원인 2│깨지는 방송·제작사 ‘갑을관계’

또 다른 원인으로는 방송 플랫폼 다변화로 인해 지상파 방송사와 콘텐츠 제작사 간의 전통적인 ‘갑을관계’가 깨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상파 3사의 편성 독점권은 사실상 무너졌다. 과거에는 초특급 작가라고 하더라도 드라마를 송출할 수 있는 채널이 지상파 3사뿐이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경우 편성받기를 바라는 제작사는 ‘을’이고 편성 권한을 쥔 방송사는 ‘갑’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CJ ENM 등 케이블방송채널이나 TV조선, JTBC, 채널A, MBN 등 종합편성채널이 자리 잡으면서 콘텐츠를 방영할 플랫폼이 확 늘어났다. 이렇다 보니 드라마 제작 편성 수도 늘어나고 있다.


원인 3│ ‘개인화’하는 시청 형태

아울러 미디어의 중심이 TV에서 인터넷과 모바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적인 흐름이 지상파 3사에는 위협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 모바일은 ‘개인화’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이제 TV 앞에 온 가족이 함께 앉아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풍경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 인터넷텔레비전(IPTV) 등이 널리 보급되면서 시청자가 이미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만큼’ 콘텐츠를 즐기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플랫폼 권력을 장악해 왔던 지상파 시대는 이미 오래전 추억이나 다름없다.


해법│스튜디오 모델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지상파 방송사가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 드라마 제작의 ‘하청형 모델’을 ‘스튜디오 모델’로 조속히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청형 모델은 방송사에서 제작비를 제공하고 방송사가 저작권을 소유하는 제작 형태다. 반면 스튜디오 모델은 제작사가 제작비 대부분을 조달하고, 저작권을 방송사와 제작사가 공동으로 가진다. 모델 변경의 핵심은 콘텐츠 저작권을 제작사가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택광(문화평론가)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유튜브의 저작권 기준은 기본적으로 제작자에게 있으며 이 점이 유튜브의 성공 비결 중 하나”라며 “스튜디오 모델이 활성화하면 과거 지상파 방송사에서 독점했던 콘텐츠 저작권이 자연스럽게 제작사로 옮겨가게 돼 양질의 콘텐츠 생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하청형 모델에서 제작사는 콘텐츠 제작만 담당하지만, 스튜디오 모델에서 제작사는 콘텐츠 유통까지 동시에 한다. 양질의 콘텐츠 생산 측면에서는 후자가 유리하다.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국내 스튜디오 모델의 대표적인 회사로 CJ ENM의 ‘스튜디오드래곤’과 ‘제이콘텐트리’의 자회사 ‘JTBC콘텐트허브’가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뿐 아니라 1~2편의 중국과 공동 제작 드라마를 추진하고 있다. ‘HB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SKY 캐슬’을 만든 ‘드라마하우스’는 JTBC콘텐트허브의 자회사다. 제이콘텐트리는 2017년부터 JTBC에서 방영된 모든 드라마에 투자하고, 판권 확보를 통해 유통시켰다.

스튜디오드래곤 관계자는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의 시대로 넘어왔다”며 “사람들은 콘텐츠만 좋으면 플랫폼에 상관없이 찾아서 시청하며, 광고주들도 더 이상 단순 시청률을 기준으로 광고를 배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택광 교수는 “지상파 방송사는 플랫폼 기능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심하는 동시에 지상파용이든 인터넷방송용이든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plus point

국내 1위 드라마 유통사 ‘스튜디오드래곤’

2016년 CJ ENM의 드라마제작부문이 분사해 설립한 스튜디오드래곤은 드라마 유통·제작 전문 회사다. CJ ENM의 방송 채널뿐 아니라 지상파 3사와 넷플릭스 등 콘텐츠 송출이 가능한 다양한 플랫폼과 계약해 콘텐츠를 공급한다. CJ ENM이 지분 71%를 가지고 있는 스튜디오드래곤의 최대주주다. 스튜디오드래곤은 박지은 작가와 배우 전지현 등이 소속된 ‘문화창고’, 김은숙 작가가 소속된 ‘화앤담픽쳐스’, 김영현 작가와 박상연 작가가 소속된 ‘KPJ’ 지분을 모두 100%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2016년 170억원에서 2017년 330억원, 2018년 500억원(한국투자증권 잠정치)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직 올해 제작 편수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전년 대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이미 촬영 중인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8부작)’을 포함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2편 이상 제작할 예정이다. 또 상반기 중 tvN에서 방영될 예정인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를 시작으로 올해도 경쟁력 있는 ‘텐트폴(유명 배우·감독·자본 투입으로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큰 작품)’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 회사가 올해도 국내외 콘텐츠 수요 증가에 따른 수혜를 누리며 수익 규모를 키워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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