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백뉴욕 공과대학교 TV프로덕션 석사, 케이블채널 KMTV(현 Mnet) 음악PD, 스포츠투데이 비서실장, 연예정보채널 ETN 개국 총괄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이상백
뉴욕 공과대학교 TV프로덕션 석사, 케이블채널 KMTV(현 Mnet) 음악PD, 스포츠투데이 비서실장, 연예정보채널 ETN 개국 총괄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한국 최초의 넷플릭스 오리지널(자체 제작) 드라마 ‘킹덤’을 만든 곳은 국내 제작사 에이스토리다. 에이스토리의 이상백(55) 대표를 만난 것은 지난 1월 30일 서울 상암동 에이스토리 사무실에서였다. 조선시대의 권력 다툼을 배경으로 한 좀비 드라마 킹덤이 190개국에 27개 언어(자막)로 공개된 지 6일째 되는 날이었다. 킹덤은 제작비가 1회당 20억원씩 들어간 블록버스터 드라마다. 방송국을 통하지 않고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시즌 1이 공개됐다. 현재 시즌 2를 촬영 중이다.

이 대표는 드라마 콘텐츠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지난 2004년 회사 설립 후 30여편의 드라마를 제작했다. 그런 이 대표에게도 킹덤은 ‘터닝 포인트’다. 킹덤이 그의 꿈이었던 ‘할리우드에서 인정받는 콘텐츠 제작’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할리우드는) 진입하기 어려운 견고한 시장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엔 엄두도 내지 못 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외국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영어로 리뷰를 쏟아내는 걸 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라면서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 발을 담갔구나’ 싶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 대표는 요즘 트위터와 유튜브, 구글,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SNS와 포털 사이트에서 킹덤(Kingdom)을 수시로 검색한다.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조회수, 시청 시간 등 성과 지표를 시청자뿐 아니라 제작자에게조차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엔 시청률이 드라마의 성적표였는데, 킹덤은 인터넷상 반응이 성적표”라고 했다. 해외 시청자들의 반응 중 눈에 띄는 것은 ‘킹덤은 좀비와 멋진 모자(갓 등 조선시대 모자들)에 대한 드라마’였다고 한다. 그는 “외국인들이 이 정도로 한국 전통 코스튬에 호기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면서 “무척 신기한 경험”이라고 했다. 실제로 검색창이나 SNS 등에 ‘Kingdom Hat’을 치면 외국인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담긴 내용이 좌르륵 뜬다.

그가 2명의 공동 창업자와 설립한 에이스토리는 창립 15년 만에 코스닥 시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여러 방면으로 2019년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인 셈이다. 지난해 매출은 460억원, 영업이익은 20억원으로 전년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에게 한국 드라마 제작사 중 최초로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제작하며 느낀 점을 물었다.


넷플릭스와 일하기 시작했다. 기존 한국 방송사와 일하는 것과 어떻게 달랐나.
“넷플릭스는 법률적인 권리 관계를 아주 구체적으로 짚고 넘어간다. 계약서 양부터 다르다. 한국 방송사와 쓰는 계약서 분량이 5~6장 정도라면, 넷플릭스는 30장 정도는 됐다. 저작권, 기술 등 분야별로 계약이 세분화돼 있다. 선진 시장에서 콘텐츠 사업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또 제작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도 매우 빨랐다. 넷플릭스 측이 우리 대본을 보더니 소속 프로듀서랑 미팅 한 번하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넷플릭스와 작업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가의 상상력을 제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요즘엔 에이스토리 소속 작가들에게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 아무거나 재밌게 써봐라’라고 한다. 예전에는 판타지 장르나 괴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들 같은 건 ‘이런 걸 지상파에서 어떻게 틀어? 바보 아냐?’ ‘미국 가서 해’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농담을 했다. 이젠 그런 문화가 없어졌다.”

넷플릭스와의 작업으로 회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품질 좋은 글로벌 콘텐츠를 만드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다. 넷플릭스와 작업한 덕에 글로벌 시장에 내밀 수 있는 ‘작품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었다. 당장 넷플릭스를 활용해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 자금으로 킹덤을 제작해서 (넷플릭스 등 방송 플랫폼에) 납품하고 유통시켰다면, 더 큰 수익을 거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거 한편 만들어 떼돈 벌겠다’는 것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많은 한국 콘텐츠 사업자들이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 때문에 최근 몇 년간 고전했다. 에이스토리는 어땠나.
“우리도 위기를 겪었다. 중국 시장에서 많은 작업을 해보고 싶어 텐센트(에이스토리 지분을 8% 보유)에서 지분 투자를 받기도 했는데, 중국 진출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한한령 탓에 지난 2017년엔 적자를 냈다. 2016년 KBS에서 ‘아이가 다섯’이라는 50부작 주말 드라마를 제작했다. 중국에 정상적으로 팔렸다면 한 회당 8000만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한한령 탓에 판매가 좌절됐다. 이런 큰 돈이 안 들어왔으니, 보릿고개를 겪을 수밖에. 하지만 그 뒤로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서, 한한령이라는 위기가 우리에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

한한령이 어떻게 기회가 될 수 있었나.
“한한령이 처음 내려졌을 때는 ‘거대한 중국시장이 막혔으니 이제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막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중국보다 더 거대한 시장에 진출하게 되지 않았나. 중국 진출이 전면 보류됐던 때 넷플릭스에서 함께 드라마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왔다. 중국과 일이 잘되고 있었다면, 아마 지금의 결과를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킹덤 제작에 투입할 인력이 부족했을 테니까. 미국 시장의 의미는 가요계에서 방탄소년단의 사례를 생각하면 좀 더 와닿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성과가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아시아 시장을 넘어 미국 빌보드에서 1위를 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인기있는 다른 아이돌들도 대단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정말 뚫기 어려운 미국 시장에서 성공했기에 더 주목받지 않나. 드라마 부문에서도 그런 성과가 나지 말란 법은 없다.”

왜 할리우드 진출을 목표로 하는 건가.
“할리우드 시장에서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배우들이 주연으로 출연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라는 영화가 작년에 개봉돼 대박을 냈다.(영화 제작에 3000만달러가 들었는데, 전 세계에서 2억3000만달러를 거둬들여 제작비의 7배 가까이 수익이 났다) 한국 시장보다 ‘동그라미 한두개(수익 규모가 10배, 100배 많다는 의미)’ 정도 더 벌 수 있는 시장이다. 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킹덤 같은 작품을 서너 개 준비하고 있다. 이런 작품들을 꼭 넷플릭스 오리지널로만 만들겠다고 정해놓은 것도 아니다. 어느 회사와 손을 잡든 목표는 할리우드 진출이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콘텐츠가 갖는 힘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 현재 할리우드는 소재 고갈로 인해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해답을 아시아 관련 소재에서 찾는 듯하다.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서치’의 주인공 가족도 아시아 사람들이다. 최근엔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 드라마 ‘굿닥터(KBS 방영)’는 미국에서 리메이크해 미국 ABC 방송국에서 방영됐다. 예전엔 할리우드가 아시아 국가를 ‘변방의 작은 나라’쯤으로 봤다면, 이제는 함께 콘텐츠를 제작할 만한 파트너로 보는 것 같다.”

킹덤 이전에 해외에서 성과를 거둔 작품은.
“우리 회사 대표 작품 ‘시그널(tvN 방영)’이다. 한국에서 평이 굉장히 좋았는데, 일본으로 수출이 잘 안 됐다. 드라마 주인공 가운데 한류 스타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아니었던 것도 영향을 줬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내가 직접 일본에 가서 광고대행사 ‘덴츠(電通)’에 세일즈를 해서 방영권을 팔았다. 위성채널 쇼치쿠(松竹)에서 방영됐다. 중국 텐센트의 대표적인 콘텐츠 유통 플랫폼 ‘텐센트비디오(腾讯视频)’에도 공급했는데, 2016년 연간 기준으로 해당 플랫폼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았다. 최근 미국에서 시그널을 리메이크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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