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과 지상파 3사는 지난 1월 3일 각 사가 운영 중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옥수수’와 ‘푹(POOQ)’ 합병을 추진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진 SK텔레콤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는 지난 1월 3일 각 사가 운영 중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옥수수’와 ‘푹(POOQ)’ 합병을 추진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진 SK텔레콤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계의 공룡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드라마부터 예능·영화·웹창작물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콘텐츠를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사들인 한국 콘텐츠 방영권 수는 2016년 60여편에서 지난해 550여편으로 급증했다. 구매액은 작품당 20억~4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자체 제작) 콘텐츠 영화 ‘옥자’에는 50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예능 ‘범인은 바로 너!’, 드라마 ‘킹덤’ ‘좋아하면 울리는’ 등 한국에서 자체 제작했거나 제작 예정인 오리지널 콘텐츠에도 최소 15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체 제작 콘텐츠 투자에 소극적인 국내 콘텐츠 채널들과 대조적이다.

한국 최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이 나오자 업계에서는 킹덤을 만든 제작사 ‘에이스토리’처럼 넷플릭스와 공동 제작을 원하는 곳들이 쏟아지고 있다. 킹덤은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제작비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 시청자를 잡았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동 제작하게 되면 비용 걱정 없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 190개국에 27개 언어(자막)로 번역돼 유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어렵다면 기존 콘텐츠 방영권이라도 판매하길 원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플랫폼 전쟁’의 저자 김조한 곰앤컴퍼니 아잇사업팀(AIT) 이사는 “넷플릭스가 콘텐츠 유통뿐 아니라 국내 콘텐츠 제작·투자 시스템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발표된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KBS·MBC·SBS) ‘연합’도 이같은 지각변동의 산물이다. 이들은 1월 3일 각 사가 운영 중인 OTT ‘옥수수’와 ‘푹(POOQ)’ 합병을 추진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SK텔레콤 자회사 SK브로드밴드가 운영하는 옥수수는 가입자 946만 명을 유치한 국내 1위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영화·드라마나 방송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지상파 3사가 함께 운영하는 푹은 지상파 콘텐츠를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에도 가입자는 370만 명 수준에 그쳤다.


가입자 946만 명을 보유한 SK텔레콤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옥수수’. 사진 SK텔레콤
가입자 946만 명을 보유한 SK텔레콤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옥수수’. 사진 SK텔레콤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는 MOU에 따라 이르면 올 상반기 안에 신설 법인을 만들고 각각 운영하던 서비스를 통합해 새로운 브랜드와 요금제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번 합병의 배경에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글로벌 미디어 공룡의 공세에 맞서 토종 업체들이 힘을 합쳐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시장조사기관 와이즈앱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 가운데 넷플릭스 이용자는 지난해 1월 34만 명에서 12월 127만 명으로, 1년 만에 274% 늘었다. 아직까진 토종 서비스인 옥수수가 가입자 수에선 앞서 있지만 넷플릭스의 빠른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3년 내에 넷플릭스에 따라잡힐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넷플릭스는 국내 시장 공략을 위해 물량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300억원 이상을 투자한 데 이어, 올해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물 킹덤을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와 예능물을 연이어 내놓을 예정이다.

SK텔레콤 역시 방송 3사가 보유한 콘텐츠 제작 역량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방침이다. 또 지상파 외에도 국내외 다양한 사업자들과 협력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수급하거나 제작할 예정이다. 투자 규모가 확대되면 10대 이용자들로부터 반응이 좋은 아이돌 관련 콘텐츠도 더욱 늘릴 계획이다.

옥수수는 2016년 6월부터 ‘아이돌 인턴왕’을 시작으로 아이돌 관련 콘텐츠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해 만든 ‘NCT 라이프 인 오사카(NCT LIFE in Osaka)’ ‘레드벨벳의 레벨업 프로젝트 1, 2’ ‘엑소의 사다리타고 세계여행’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넷플릭스에 대적할 만한 토종 연합군의 등장을 환영하면서도 우려하는 모습이다. 김치호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시도는 높게 평가하나 쉽지 않은 싸움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SK텔레콤이 앞으로 자체 콘텐츠 제작에 2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해 자체 제작 콘텐츠에만 80억달러(약 9조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밝힌 넷플릭스의 와의 싸움에서는 상대가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유튜브라는 거대 공룡의 위협에 방송사와 통신사가 당장은 손을 잡았지만 이 주체들이 얼마나 역량을 쏟아넣을지가 관건”이라며 “자사 채널을 통한 광고로 주 수익을 올리는 방송사가 OTT에 얼마나 큰 투자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바 ‘푹수수(푹과 옥수수의 만남)’가 넷플릭스의 경쟁 상대라기보다는 시장을 키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조한 이사는 “다양한 콘텐츠와 시청 경험을 원하는 시청자들은 하나의 플랫폼만 선택하지 않는다”며 “푹수수가 넷플릭스와 한국 시장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함께 파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투자한 일본 애니메이션 ‘일곱개의 대죄’.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투자한 일본 애니메이션 ‘일곱개의 대죄’. 사진 넷플릭스

K팝에 열광하는 전 세계 10대 공략해야

그렇다면 이 통합 플랫폼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치호 교수는 “콘텐츠에 대한 투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쟁하고자 하는 시장의 소비자에 대한 이해”라며 “독점 콘텐츠를 보유하는 것도 경쟁력이지만, 타깃으로 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인지하는 것이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플랫폼 통합으로 사용자를 늘려 ‘콘텐츠 전송 채널’을 확보했다면 결국 중요해지는 것은 ‘콘텐츠’”라며 “시장 변화에 발맞춰 어떤 콘텐츠가 통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류·K팝(K-pop)에 열광하는 전 세계 10대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김조한 이사는 “‘격투맨 바키’ ‘소드기어’ ‘일곱개의 대죄’ 등 넷플릭스가 투자한 일본 애니메이션에 미국·동남아 등 전 세계 10대들이 열광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도 K팝에 열광하는 10대를 타깃으로 한국만의 감성을 살려야 한다”면서 “웹툰 기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K팝 인기를 활용한 콘텐츠를 개발해 놓치고 있는 시장을 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에서 이미 생활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인구를 통해 해외시장을 연구·분석하는 방법도 있다. 김영걸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는 “때로는 기계가 수집한 정량적 데이터보다 사람을 직접 연구해 얻은 정성적 데이터가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며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등 미래 유망 콘텐츠 시장의 고객이 이미 한국에 200만명을 넘어섰는데, 이들을 연구해 해외에서 통할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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