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걸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국 미네소타대 경영학 박사, 카이스트 경영대학 대외부학장, 글로벌리더십센터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김영걸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국 미네소타대 경영학 박사, 카이스트 경영대학 대외부학장, 글로벌리더십센터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드라마 한 편이 성공하면 뭐 합니까. 왜 성공했는지를 모르는데요. 철저한 고객 분석이 없는 ‘대박’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2월 11일 대전 대덕동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본교에서 만난 김영걸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 콘텐츠 산업의 문제점’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 콘텐츠 산업을 연구한 그에게서 한국 콘텐츠 산업의 생존 방안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간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드라마를 제작해 내놓을 뿐 시청자(고객)의 취향을 더 깊이 있게 분석하고 파악하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는 게 그의 평가였다. 때문에 드라마가 ‘대박’을 치더라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쪽박’을 차더라도 영문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이는 차기작의 성공과 실패 또한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

반면 콘텐츠 업계의 글로벌 공룡들은 달랐다. 넷플릭스는 방대한 양의 고객 데이터 분석을 통해 2013년 최초로 자체 제작한 콘텐츠인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을 점쳤음은 물론이고, 아마존은 2000년이 되기도 전부터 ‘고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에게 통할 것이 무엇인지를 최우선으로 고민해 지금의 고객 중심 서비스 기반을 다졌다. 유료 회원제인 ‘아마존 프라임’ 회원이 1억 명을 돌파했고 갱신율이 90%에 달한다. 아마존은 그간 쌓아온 막대한 데이터 분석 역량을 무기로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에만 자체 스트리밍 콘텐츠 개발에 45억달러(약 5조원)를 투자했다. 김 교수는 “글로벌 공룡들은 어마어마하게 축적되는 데이터를 등에 업고 저만치 달려가는데 한국만 데이터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다”며 “힘과 자본이 부족한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이 이제라도 손잡고 데이터를 공유해 지속적으로 성공할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면밀히 기획해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 경쟁력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방송·음악·영화·게임 등 4개 엔터테인먼트 분야 유망 기업의 성공 비결을 담았다. 그는 보고서 발간과 더불어 국내외 콘텐츠 기업과의 산학 협력 연구·교류를 통해 국내 콘텐츠 산업 현실을 진단했다. 20여 년간 콘텐츠 산업을 들여다본 그는 국내 주요 콘텐츠 기업 경영진이 미래 콘텐츠 전략을 짤 때 가장 먼저 찾는 콘텐츠 전문가다. 그를 만나 국내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기 위한 비법을 들어봤다.


한국 드라마 콘텐츠 산업의 문제점은.
“좋은 드라마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열악한 제작 환경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 드라마 산업은 제작·유통 과정이 ‘시스템화’하지 않았다. 드라마라는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컴포넌트(드라마 산업을 구성하는 주체들)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돌아가도록 만들지 못 했다는 의미다. 주요 주체인 방송사와 제작사 등이 아주 면밀하게 협력해야 하지만 이들 관계는 수평적 구조의 파트너십이 아니라 피라미드식 구조였다. 마치 땅을 많이 가진 중세시대 영주가 영세한 소작농을 부려 고혈을 쥐어짜내는 모양새다. 영주는 괜찮을지 몰라도 소작농은 계속 가난하지 않나. 그러니까 이런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에서 발전과 변화가 일어날 수 없었다.”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콘텐츠 소비 채널이 변화하면서부터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드라마 산업의 공룡이라고 할 수 있는 지상파 3사가 드라마 제작부터 유통을 꽉 잡고 있었으니까 제작사들은 잘해봐야 본전이거나 조금만 잘못하면 완전히 뒤집어쓰고 망해 없어지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제작사가 지상파를 통해서만 콘텐츠로 대박을 낼 수 있었고, 저작권(IP) 역시 방송사가 갖게 돼 성공을 통한 과실이 공평하게 나뉘지 않는 구조였다. 하지만 TV 시대가 가고 인터넷·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 다양해졌다. 지상파가 아닌 종편·넷플릭스 등 다른 채널 선택지가 주어지면서 콘텐츠 업계에 지각변동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이제 제작사는 드라마를 내보내기 위해 지상파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지상파가 상생 마인드를 갖고 파트너와 협력해야 살아남는다.”

넷플릭스·유튜브의 초고속 성장이 국내 콘텐츠 업계엔 위기로 다가온다. 이들에게 고객을 다 뺏길 거라는 우려도 있다.
“국내 콘텐츠 업계가 ‘고객 중심 마인드’를 갖추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국내 콘텐츠 업계가 부족한 것이 바로 ‘고객 데이터 활용 능력’이다. 나는 10여 년 전부터 우리 콘텐츠 산업계에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한국 콘텐츠 산업을 보면 영화·드라마 등의 콘텐츠가 왜 성공하거나 실패하는지,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에 열광하는지 등을 분석할 바탕이 되는 모든 데이터가 각 채널에 흩어져 있다. 방송사는 처음에 공중에 콘텐츠를 흩뿌릴 뿐 데이터를 모으지 못했다. 그간 성공한 콘텐츠가 왜 성공했는지, 실패한 콘텐츠가 왜 실패했는지를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때문에 눈을 가리고 어느 방향으로 달리는지도 모른 채 계속 달려온 형상이었다.”

반면 글로벌 콘텐츠 업체들은 뭐가 달랐나.
“넷플릭스는 처음엔 남이 만든 드라마나 영화 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아 고객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취향을 분석해 10편을 추천하면 평균 6~7편은 적중한다. 그만큼 고객을 깊이 분석해 잘 안다는 것이다. 아마존도 그렇다. 아마존은 이미 2000년 이전부터 데이터를 중시한 고객 중심 경영을 해왔다. 아마존에 접속하는 수만 명의 고객이 마주하는 화면은 모두 제각각이다. 우리나라 방송사에도 스튜디오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콘텐츠 관련 고객 데이터 분석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은 각사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합해 넷플릭스 등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어떻게 전망하나.
“이들 회사는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 때문에 결합한 것과 다름없다. 이들이 실제 시너지를 내기 위해선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이 이뤄져야 한다. 서로 투명하게 데이터를 공개하고 파트너십을 형성해 서로 돕고 같이 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 통합 플랫폼이 글로벌 플랫폼과 진검승부를 할 거면 증자를 통해 개별 회사가 하기 어려운 규모로 투자해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신뢰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콘텐츠 업계가 해외 시장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까.
“‘피기 배킹(piggy-backing)’이라는 말이 있다. 이른바 편승 기법이라는 건데, ‘등에 업고’ ‘트레일러 따위가 화차에 실린’이라는 의미다. 신차를 운반할 때 큰 트럭의 트레일러 부분에 여러 대를 함께 싣고 달리지 않나. 이처럼 넷플릭스라는 큰 플랫폼에 실려 해외 시장으로 가는 것이다. ‘킹덤’처럼 전에 없던 콘텐츠를 만들어 넷플릭스를 뚫으면 자막도 넷플릭스가 알아서 붙이고 전 세계에 뿌려준다. 이렇게 빠른 루트가 있을까.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콘텐츠가 경쟁력이 있는 시장은 크게 일본·중국·동남아·중동·남미 정도다. 우리와 같은 문화권이거나 한국적인 정서가 통하는 시장에 경쟁력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통할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성공 가능성이 큰 시장인 이 5개 시장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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