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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공학박사, 삼성전자 반도체 소재기술 그룹 부장,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세대 메모리 개발 사업단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수많은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있는데) 어떻게 삼성에서 다 개발해요. 총알(자본력) 있으니 좋은 기업이 있으면 무조건 사서 자기 것 만들어야지. 전쟁인 기라.”

2월 18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 연구실에서 만난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사투리를 조금씩 섞어가며 거침없이 삼성전자의 미래전략에 대해 조언했다.

그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까지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삼성전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보유한 현금(삼성전자의 현금보유액 104조2100억원·2018년 기준)으로 기술력이 있는 기업들을 과감하게 인수·합병(M&A)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D램, 낸드플래시 등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반도체를 말한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모바일 기기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이미지센서 등이 비메모리 반도체다.

박 교수는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전략을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을 개발하면서 발전시킨 반도체 칩을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산업에 집어넣어 반도체의 신시장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AP 등 일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기술력을 축적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비메모리 반도체가 워낙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고 오랜 기간 연구·개발(R&D)을 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기술력을 보유하지 못한 분야는 M&A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박 교수는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의 인력 부족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에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설계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미국과 같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강국이 되려면 국가차원에서 전문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01년까지 반도체 소재 분야를 연구했다. 학계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전원이 꺼져도 저장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기술 이전해 27억원을 받았고 일본 반도체 기업 섬코(SUMCO) 등 일본 기업에서 기술 이전의 대가로 600만달러(약 67억5000만원)를 받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을 맡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30년에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하겠다고 했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스마트폰을 만들면서 쌓았던 비메모리 기술력을 다른 산업으로 확대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지금 비메모리 반도체 중에서 스마트폰용 AP, 이미지센서(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이미지로 보여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집적회로(DDIC‧데이터를 디스플레이 장치로 보여주는 반도체) 등을 만들고 있다. 스마트폰을 만들면서 이런 비메모리 기술을 계속 높여왔던 것이다.”

스마트폰에 들어간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다른 산업으로 확대될 수 있나.
“AP를 예로 들어보자. AP는 특수한 목적으로 만든 CPU다. 가전제품이나 스마트폰의 기능을 고려해서 각각 그 기능에 맞는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 칩이다. 일종의 두뇌역할이다. 그런데 스마트폰뿐 아니라 각종 기기들이 점점 IT 기능이 강화되면서 AP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고 점점 고성능 AP가 필요해지는 상황이 오고 있다. 과거의 자동차에는 AP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자율주행차 시대가 되면서 자율주행 기능을 위해 엄청나게 빠르게 데이터를 판단해서 처리할 수 있는 AP가 필요해졌다. 자율주행 상황에서 갑자기 사람이 뛰어드는 등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해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AP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성능 AP가 많이 필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이 시장을 차지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잡겠다는 것이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AP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센서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노하우를 쌓은 강한 기업들이 많은데 이 기업들을 어떻게 이겨야 하나.
“M&A도 고려해야 할 전략이다. 이미지센서 등 비메모리 기술은 오랜 기간 R&D를 해야 기술력을 쌓을 수 있는데 M&A를 하면 이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좋은 기업이 있으면 무조건 사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경쟁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총알(자본력)이 있다. 전장기업인 하만을 인수했지만 추가 M&A 여력이 충분하다. (시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센서를 개발한 벤처기업들을 찾으면 바로 사야 한다.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SSIC(Samsung Strategy and Innovation Center)라는 조직을 두고 있는데 이 조직은 좋은 기술을 갖춘 벤처기업을 사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하만도 여기서 검토해서 산 것이다.”

삼성은 이미지프로세싱, 카메라설계 분야에서 강력한 기술력을 가진 이스라엘 기업 코어포토닉스를 인수하기 위해 최종 협상 중이다. 인수가는 17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이미지센서 자체의 기술력 향상을 위한 M&A는 아니다. 또 M&A 규모가 그리 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 인수건이 향후 삼성의 이미지센서 관련 M&A 전략의 문을 열어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 전문인력들을 많이 확보했나.
“확보하지 못했다. 비메모리 반도체를 설계하는 인력이 엄청나게 부족하다. 지금까지 기술 인력들이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양성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모든 반도체 기업들의 문제다. AP 등 비메모리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술을 SoC(System on Chip)라고 하는데 미국이나 유럽은 이런 SoC 인력들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이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도 세금으로는 중소기업만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심의 반도체 회사들에는 R&D 사업 지원을 안 한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야 한다. SoC 분야라든가 반도체 소재, 장비기업들에 지원을 확대해야 우리나라의 산업이 산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인데 전체 수출액 중 20%를 떠받치고 있는 게 반도체 산업이다.”

반도체 산업이 이미 성숙했고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다는 우려 때문에 반도체학과의 인기가 사그라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반도체 산업은 아직도 많은 고급 전문인력들이 필요하고 많은 기업들이 이런 인력들을 채용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 고도로 첨단화됐다는 점에 있다. 한국 사회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석‧박사급 학위를 딸 때까지 공부하는 것을 학생도, 부모도 바라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똑똑한 공과대학 학생들은 학부만 졸업해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반도체의 산업적 중요성과 고용 창출 능력 등을 고려해볼 때 쉽게 볼 문제가 아니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인생을 길게 보고 깊이 있게 반도체를 연구하면 본인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고 국가적으로도 산업경쟁력이 생긴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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